고통보다 아팠다, 고립이…손가락보단 손길을, 시작은 ‘연결’부터[아듀 2023 송년 기획-상처 난 젊음, 1020 마음건강 보고서]

김태훈·민서영 기자 2023. 12. 21. 2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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② ‘온라인’ 위안일까 위험일까
SNS로 부정적 감정·경험 습득
서로 모방·학습 확산 우려에도
온라인서도 ‘동료 전문가’ 활동
완화 방법 공유 등 순기능 많아
팬데믹 이후 온라인 의존 심화
현실에서의 단절부터 해소 필요
일본선 자원봉사자 방문 서비스
전문가 “정부, 대응기구 마련을”
일러스트 김상민·그래픽 현재호 기자

신체 일부에 난 상처가 선명하게 찍힌 사진이 있다. 그 사진에 달린 해시태그는 ‘#자해전시’. 함께 게시한 글로 추정하면 청소년이 학교에서 자신의 몸에 스스로 상처를 낸 것으로 보인다. 여러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서 ‘자해계’(자해 계정)나 ‘우울계’(우울 계정)를 검색하면 끝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비슷한 사진이 이어진다.

SNS를 비롯한 온라인 공간은 정신건강 문제를 경험한 10~20대에겐 ‘두 얼굴의 공간’이다. 우울과 불안 증상을 호소하며 몸에 낸 상처와 자살 생각을 그대로 적어놓은 온라인 게시물은 이제 너무 “흔하다.” 이 게시물들은 ‘구조를 요청하는 신호’인 동시에 ‘자극제’로 자칫 위험이 될 수 있다. 다른 한편에선 정신건강 어려움을 함께 이겨내자며 지지와 공감에 기반한 ‘극복계’(극복 계정)도 공존한다.

경향신문 기자들이 지난달 15~16일 인터뷰한 청소년과 청년들도 정신건강 문제로 온라인 공간에서 소통한 경험이 있었다. 이들도 온라인 공간에서 마음의 아픔을 겪은 이들과 공감·지지를 주고받았다고 했다. 한편으론 정신건강 문제에 대한 온라인상 왜곡된 인식, 잘못된 언급 방식 등도 이야기했다.

최승훈군(18·가명)은 중학교 1학년 때 SNS를 통해 자해를 접했다. “제가 처음 자해를 했을 땐 이렇게까지 (온라인상 자해 게시글이) 번지진 않았을 때였고 그 이후에 청소년 자해·자살 관련 키워드가 (사회적으로) 떠오르면서 사람들이 많이 놀라고 그랬어요. 많이 놀란다고 해서 청소년들이 (당장) 바뀌는 건 아니에요. ‘저렇게 힘들구나’라는 걸 알아주셨으면 좋겠어요. 그다음 ‘너의 고민을 들어줄 수 있다’는 식으로 좀 안정감을 형성하는 조기 개입을 해주는 게 중요할 것 같아요.”

김혜미양(17·가명)은 SNS에 상반된 성격이 공존한다는 점을 체감한 적이 있다. 스스로 목숨을 끊겠다고 SNS에 예고 글을 올린 이름 모를 이용자와 접촉했던 경험이다. “SNS 게시글로 한 분이 ‘나는 몇시 몇분쯤에 죽을 거다’라는 식으로 올렸더라고요. 일면식도 없고 연락도 거의 안 해본 사람이었는데, 무작정 DM(메시지)을 보냈거든요.” 김양은 “연락이 끊겨 걱정이 컸지만 며칠 만에 상대방이 깨어났다며 ‘나한테 그렇게 얘기해주는 사람이 없었는데 정말 고마웠다’고 했다”면서 “그때 우울계가 꼭 나쁜 것만은 아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온라인 공간을 일종의 도피처로 찾았다가 오히려 더 부정적인 영향을 받는 예도 있다. 이민솔양(18·가명)은 자해 게시물이 가뜩이나 심리적으로 힘든 이들을 더 자극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이양은 “ ‘이 사람은 이렇게까지 심하게 (자해)하는데 너는 이것도 못해?’ 같은 괜한 오기가 생기기도 했다”고 말했다. 타인의 고통이 전해지면서 감정적 부담이 더욱 증폭되기도 했다. “우울계·자해계를 운영하다 보니 다른 사람들 힘든 내용이 막 올라와서, 그걸 보면 그 힘듦이 제 것이 되는 듯한 느낌도 드는 거예요. 이 사람이 힘들다는 것을 인식하고 거기서 끝낸 뒤 나와는 분리하는 게 아니라 같이 몰입돼서 나까지 힘들어지는 거죠.”

최근엔 온라인 커뮤니티나 동영상 공유 플랫폼 등을 통해 자해나 자살 시도를 ‘중계’하는 극단적인 사례도 있었다.

전문가들은 우울계와 자해계가 일종의 소규모 집단의 성격을 띠면서 부작용이 더 심각해질 수 있다고 경고한다. 임명호 단국대 심리학과 교수는 “우울계나 자해계가 일종의 동조집단이 되면 타 집단과는 다른 점들을 보여주기 위해 배타적인 방식으로 집단 내부 결속력을 높이는 현상이 만연해진다”며 “특히 청소년이나 청년은 기성세대보다 동조심리가 많이 나타나다 보니 서로를 모방·학습하는 작용도 더 많이 보일 수 있다”고 말했다.

반면 최근 SNS에서는 정신건강 증상을 나누면서도 증상 완화법이나 치료 방법을 공유·조언하는 극복계도 눈에 띈다. 인터뷰에 응한 청년과 청소년들은 비영리단체 ‘멘탈헬스코리아’에서 ‘피어 스페셜리스트’(Peer Specialist·아픔을 경험한 동료 전문가)로서 또래와 함께하는 상담·강연·모임 등에 참여하고 있다. 현실과 온라인에서 극복계 활동을 하는 것이다.

“제가 ‘10대 우울증’과 관련해 메신저 오픈채팅방을 운영했거든요. 상담기관을 알려주기도 하고 제 경험을 이야기해주기도 했죠. 진짜 힘들 때는 아무 말 없이 들어주는 것만으로도 힘이 날 때가 있잖아요. 들어주는 것, 그런 식으로 상담을 되게 많이 했었어요.”(최승훈군)

이들은 최근 온라인 공간에서 많이 쓰이는 ‘패션 우울증’이란 표현에 대해선 신중해야 한다고 했다. 패션 우울증(정신병)은 우울증 등 정신건강 문제를 유행으로 소비하는 사람 또는 행동을 지칭하는 인터넷 신조어다. 남들의 관심을 받기 위해 자신이 우울증 때문에 고통받는다고 포장하는 패션 우울증 현상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한편으론 바로 그 표현 때문에 진짜 우울증을 겪는 사람들이 가려질 수 있다고 염려한다.

정수연씨(22·가명)는 지난해까지 SNS에 우울계를 만들어 일기를 쓰듯이 떠오르는 생각들을 글로 올렸다. 정씨는 “글이라도 쓰면 내가 살아 있다는 느낌을 받으니 이렇게라도 해야겠다는 마음”이었다고 말했다. 지금은 우울계 계정을 없앴다. 진심으로 올리는 마음의 기록조차 패션 우울증이란 오해를 받거나 SNS에서 오가는 피상적인 평가의 대상이 되는 것이 싫다고 했다. 정씨는 “진짜 힘든 사람들이 있는데 괜히 패션 우울증이란 단어 때문에 자해 사진을 올리는 사람들에 대해 더욱 편견이 생기고 그냥 ‘관종’으로만 생각되는 것은 싫다”고 말했다.

이들은 온라인 공간이 패션 우울증으로만 차 있다고 생각되거나 ‘자해의 온상’으로 인식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고도 덧붙였다. 이들의 마음건강을 크게 위협한 원인은 온라인이 아니라 현실에 있었다. 마음을 먼저 다친 이들이 돌파구를 찾다 못해 자해·자살 시도까지 하게 됐고, 이후 온라인에서 자신과 비슷한 경험이 있는 사람들을 발견한 셈이다.

전문가들도 온라인 공간을 고립시키기보다 오프라인과 연계해 정신건강 위기 청년·청소년에게 실질적인 지원을 해야 한다고 말한다. 앞서 일본에서는 2017년 자살 생각을 하고 있던 피해자 9명을 SNS 게시물 등으로 유인해 살해하는 사건이 일어났다. 피해자는 모두 10~20대였다. 이후 일본에선 민간 영역이 주축이 되어 온라인 공간에 위험을 호소하는 글을 올린 사람에게 자원봉사자가 찾아가는 서비스를 하고 있다.

백종우 경희대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청소년과 청년들이 온라인에서 자살에 관한 생각과 계획을 말하지만, 양가감정이 있어서 그것은 동시에 살려달라는 신호이기도 하다”면서 “일본에선 이런 호소에 대해 실질적인 도움을 주는 서비스가 없었다는 사회적 반성이 뒤따랐는데, 국내서도 비슷하게 청년·청소년들이 범죄의 대상이 되는 경험을 했지만 대처가 충분치 못한 형편”이라고 말했다.

1020세대의 온라인 의존도가 높아지고 현실에서의 고립 정도 역시 심해진 계기가 코로나19 팬데믹이었다는 점을 고려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있다. 현실에서의 관계가 상당 부분 단절된 상태에서 온라인을 통한 소통이 비약적으로 늘었기 때문에 발생한 부작용이므로 지금이라도 개선책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이해국 가톨릭대 의정부성모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1020세대 가운데 팬데믹 시기 집 안에 갇혀 가족 간 갈등은 늘고 외부 인간관계는 끊어진 비율이 매우 높은데, 이들이 결국 온라인과 미디어에 의존하며 영향을 크게 받았다”고 말했다. 이 교수는 이어 “온라인 의존도가 높아져 나타난 도박·마약 중독 증가 현상처럼 정신건강 위기 문제 역시 하나의 원인이 작용한 결과이므로 정부가 일원화된 대응기구를 수립해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태훈·민서영 기자 anarq@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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