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동칼럼] 진실은 어렵다
지난 5일 윤석열 대통령 주재로 ‘부산시민의 꿈과 도전’ 간담회가 열렸다. 부산 엑스포 유치 실패 이후 열린 이 간담회에서 윤 대통령은 ‘부산 글로벌 허브 도시 조성을 위한 특별법’ 제정을 통해 남부권 거점화 추진에 차질이 없도록 하겠다고 다짐했다. 구체적으로는, 가덕도신공항 적시 개항, 트라이포트(항공·항만·육상) 물류 플랫폼 진행 및 북항 재개발 신속 추진을 약속했다. 또한 기업 대표로 간담회에 참석한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 최재원 SK 수석부회장, 구광모 LG 회장 등도 부산의 거점도시 발전에 동참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그런데 윤 정부와 재계의 이런 약속은 엑스포 유치 실패를 덮으려고 똑같은 실수를 반복하는 셈이다. 엑스포 유치 실패는 막연한 기대와 불리한 정보를 듣지 않으려는 리더십이 불러온 참사이다. 윤 정부가 투표 직전까지 박빙의 승부를 거론하며 대역전극을 기대한 것과 달리, 11월28일 프랑스 파리에서 열린 제173차 국제박람회기구(BIE) 총회 1차 투표에서 부산은 투표국 165개국 중에서 29표만을 획득했고 119표로 3분의 2 이상을 득표한 사우디 리야드가 개최지로 확정되었다.
가덕도신공항이나 트라이포트 물류 플랫폼 역시 경제성이 없는 막연한 희망사항일 뿐이다. 일본 간사이 공항 사례를 보더라도, 가덕도신공항이 경제성을 가질 것이라 믿는 전문가는 없을 것이다. 충분한 수요의 부재와 건설 및 유지관리비용뿐만이 아니라, 환경파괴 문제 역시 심각하다. 또한 이른바 트라이포트 물류 플랫폼이 어떤 이점을 가질지도 불분명하다. 선박을 통해 수출하는 물품과 항공을 이용하는 물품은 아예 다르기 때문이다. 수도권 공장에서 생산한 반도체를 인천공항이 아닌 육로를 이용해 운송한 후 가덕도신공항을 통해 수출한다는 것이 합리적인가? 엑스포를 전제로 한 북항 재개발 계획을 현실적으로 수정해 해운 물류 허브로 부산을 육성하는 안을 신속히 마련하는 게 그나마 할 수 있는 최선이다.
그러나 이 또한 동남권에 산업공동화가 발생한다면 아무런 의미가 없는 계획일 뿐이다. 대한상공회의소가 2022년에 국내 300개 기업을 조사한 결과, 해외 거래처에서 재생에너지를 사용해 제품을 만들어 달라는 요구를 받은 기업이 이미 30%에 육박하고 있다. KOTRA의 ‘해외 기업의 RE100 이행요구 실태 및 피해 현황 조사’에 따르면, BMW, 볼보 등 유럽 자동차 기업들이 한국 부품회사에 RE100 이행을 요청하면서 계약을 잇따라 취소하고 있다. 또한 글로벌 기업이 국내 반도체 기업에 주문을 할 때 재생에너지 이용을 조건으로 내거는 사례가 급증하고 있는데, 글로벌 서버 1위인 델테크놀로지스와 MS는 2030년까지 부품 공급업자들에게 적용되는 스코프3 배출량을 각각 45%와 50% 감축할 계획이고, 애플과 아마존웹서비스(AWS)는 각각 2030년, 2040년까지 스코프3에서도 RE100을 선언했다.
그러나 국내 중소기업들은 말할 것도 없고, 삼성전자조차 2021년 현재 국내 전력 수요의 2.7%만 재생에너지로 사용하고 있는 실정이다. 삼성전자는 전 세계적으로는 전력 수요의 20.5%를 재생에너지로 사용하는데, 미국과 중국 사업장에선 이미 RE100을 실현하고 있다. 텍사스 오스틴에 파운드리 공장을 운영 중인 삼성전자는 텍사스 테일러에 신규 공장을 건설 중이고, 향후 20년간 미국 텍사스에 반도체 공장 11곳을 신설할 계획이다. 결국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그리고 전기차 배터리 회사들은 미국이나 유럽에 공장을 짓는 방식으로 RE100 요구를 충족시킬 것으로 예상된다.
한국의 재생에너지 비중은 2022년 현재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유일하게 10%가 안 되는 8.95%로, OECD 평균인 31.8%의 4분의 1 조금 넘는 수준이다. 그런데 더 어처구니없게도, 원전 중심의 전력계통체계로 인해 그나마 설치해 둔 태양광이나 풍력 같은 재생에너지원들을 전력망에 제대로 접속시키지 못하고 있다. 예를 들어, 영광 태양광 발전은 2023년 6월 기준으로 27GW의 설비용량을 갖추고 있으나, 70%가 전력시장 외부에 존재하고 있다. 분산형 전력망으로 전력공급망을 재편하지 않고서는 재생에너지를 확대하는 것도 어려운 실정이다.
동남권 산업지대의 ‘러스트 벨트’화를 막고 지역 소멸 문제도 해결하려면, 재생에너지가 풍부하고 분산형 전력망을 이용하기 쉬운 남해안에 ‘RE100 클러스터’를 유치해야 한다. 특히 전력·용수 공급에 대한 현실적인 계획이 없고 RE100은 더욱 요원한 용인 지역이 아니라, 남해안에 반도체 클러스터를 만들어야 한다. 진정으로 부산과 동남권의 미래를 생각한다면, 이에 대한 진지한 정치적 논의와 구체적 정책 집행이 이뤄져야 한다. 진실은 어렵다.
박상인 서울대 행정대학원 교수
Copyright © 경향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윤 대통령 ‘외교용 골프’ 해명에 김병주 “8월 이후 7번 갔다”···경호처 “언론 보고 알아
- “남잔데 숙대 지원했다”···교수님이 재워주는 ‘숙면여대’ 대박 비결은
- 최현욱, 키덜트 소품 자랑하다 ‘전라노출’···빛삭했으나 확산
- 이준석 “대통령이 특정 시장 공천해달라, 서울 어떤 구청장 경쟁력 없다 말해”
- “집주인인데 문 좀···” 원룸 침입해 성폭행 시도한 20대 구속
- 윤 대통령 골프 라운딩 논란…“트럼프 외교 준비” 대 “그 시간에 공부를”
- 한동훈 “이재명 당선무효형으로 434억원 내도 민주당 공중분해 안돼”
- “그는 사실상 대통령이 아니다” 1인 시국선언한 장학사…교육청은 “법률 위반 검토”
- 또 아파트 지하주차장 ‘벤츠 전기차 화재’에…주민 수십명 대피
- [단독]“일로 와!” 이주노동자 사적 체포한 극우단체···결국 재판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