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유정의 영화로 세상읽기] 공감 지능과 연민의 능력
미국의 법철학자 마사 C 누스바움의 <혐오에서 인류애로>는 소수자들의 인권투쟁을 다룬다. 부제는 ‘성적 지향과 헌법’인데, 예상하다시피 성적 지향에 대한 차별이나 금지를 헌법 차원에서 바로잡으려는 노력들에 집중한다. 이 책의 서문에서 누스바움은 한국에 성적 지향에 따른 차별금지를 포함한 포괄적 차별금지법이 없다고 지적한다.
영화 <괴물>(사진)에 대한 인터뷰 중 연출을 맡은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은 일본이 대한민국보다 성적으로 좀 더 개방된 문화이지만 “동성 관계에 대해 법적으로 인정하고 있지 않고 다양한 가족의 형태, 사랑의 형태에 대해서 정치적으로 사회적으로 매우 좁게 허용하고 있다”고 말했다. 고레에다 히로카즈 인터뷰에서 더 흥미로웠던 건, “그렇긴 하지만 영화 <괴물>을 통해 일본의 제도를 비판하고자 한 건 아니었다”며 극구 설명을 덧붙였다는 사실이다.
한국이나 일본에서 성소수자들은 차별받지 않는다. 차별이라 따지고 부를 객관적 기준이나 법이 없는 것이다. 법외 존재로서 아예 그 존재를 인정하려 들지 않는 것이다. 영화의 제목이기도 한 “괴물”은 그런 의미에서, 함께 살아가고 곁에 있으나 같은 인권을 나눠 가진 자로 보지 않으려는, 암묵적 차별의 상징이다. 그들은 달라,라고 괄호 밖으로 내쫓으며 인권, 평등, 자유와 같은 평범한 인간의 타고난 권리로부터 멀리 떼어 놓는 것이다.
돌이켜보면, 윤석열 정부 이전엔 차별금지법에 대한 뜨거운 논의라도 있었다. <괴물>은 인간의 내면이나 혹은 사회의 구조적 억압 내지는 ‘남자다운’과 같은 형용사가 주는 폭력을 질문한다. 아름답고 섬세한 문제를 다루는 <괴물>이 애틋하고도 부럽다. 우리 사회는 그사이 <서울의 봄>과 같은 커다란 악의 문제에 더 집중해야 하는 환경으로 뒷걸음쳤다. 윤석열 정부 이후 우리 사회는 30여년 전에 매듭지어졌다고 생각했던 사회적 합의에 대한 동요를 경험하고 있다. 표현의 자유와 사법적 평등, 정당의 자율성과 삼권 분립과 같은 기본적 전제 사항들이 흔들리기 시작한 것이다.
영화 <괴물> 속 아이들은 “괴물은 누구인가”라며 묻는다. 누가 괴물인가가 아니라 괴물이 누구냐가 중요하다. 영어로 몬스터(monster)라 불리는 괴물은 어원상 경고를 내포하고 있다. 아이들의 질문은 우리 사회가 차별하고, 혐오할 괴물을 찾아 만들어낸다는 걸 짐작하게 한다. 누군가 괴물이 되어야, 지목받지 않은 다수의 사람들이 정상인 척 살아갈 수 있다. 본능적 감정이라 우기지만 혐오와 차별은 사회적 합의이며 학습의 결과다.
누군가에게 영향을 받는 투사적 혐오는 사회적 기준에 의해 형성된다. 이는 사회적 합의를 바꾸면 괴물도 사라진다는 것을 뜻한다. 역사학자 린 헌트는 18세기 현대 소설의 대중적 인기 덕에 인권선언이 가능했다고 말한 바 있다. 차별받지 않을 권리, 마땅히 벌 받아야 할 사람에 대한 역사적 평가 역시 마찬가지이다. 그것이 사회 구조의 근본적 변화와 인식의 전환을 통해 가능하다면 서사적 몰입 즉 연민과 공감이 촉매가 될 수 있다. <괴물>의 허구적 인물들에 대한 공감이 만연한 차별을 흔들고, <서울의 봄>에 대한 공분이 유사 독재에 대한 민감도를 높인다. 연민은 개발되는 능력이며 공감은 지능이다. 연민과 공감을 통해 편견이 사라지고 정의의 단초가 마련될 수 있는 것이다.
이야기로 실제 인물을 구원하거나 구할 수는 없다. 하지만 공감과 연민을 통해 우리와 다른 삶을 살아가는 사람을 발견하고 긍정함으로써 권력자의 거짓말을 간파하고 더 나은 삶을 마련할 수는 있다. 영화로 세상을 읽지만 이미 세상은 영화 안에 들어와 있다. 진실은 편견과 프레임 그 바깥에 있다.
‘강유정의 영화로 세상 읽기’를 꽉 찬 10년 동안 써왔다. 그사이 우리의 이야기가 세계의 중심 서사가 되는 광경을 목격하기도 했다. 여러 지면을 통해 독자들을 만나왔지만 ‘강유정의 영화로 세상 읽기’는 매번 앓아가며 치열하게 매달렸던 글쓰기 공간이었다. 고마움과 아쉬움을 표할 수 있어 다행이다. 그동안 함께해준 독자들과 편집자에게 감사드린다.
강유정 강남대 교수·영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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