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세기, 기록의 기억] (102) 명동 밤 풍경

기자 2023. 12. 21. 20: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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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떼’엔 연말연시 청춘들의 해방구…지금도 ‘야경’ 핫플
명동의 밤 풍경. 1971년 셀수스 협동조합 제공
명동의 밤 풍경. 2023년 셀수스 협동조합 제공

며칠 뒤면 크리스마스다. 산타클로스의 선물을 기다리는 어린아이를 비롯해 벌써 마음이 설레는 사람이 많을 것이다.

1970년대에는 지금보다 크리스마스를 기대하는 젊은이들이 훨씬 많았다.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무엇보다 크리스마스이브에는 밤새도록 친구, 연인과 마음 놓고 즐길 수 있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에는 1945년 9월부터 1982년 1월까지 ‘야간통행금지’라는 제도가 있었다. 치안 및 공공질서 유지, 청소년 보호 등을 명목으로 국가가 국민이 밤에 다니는 것을 법으로 막았다. 1961년부터 이 제도가 폐지된 1982년까지 자정부터 새벽 4시까지 사람들의 통행을 금지하였다. 만약 이를 위반하여 적발되면, 가까운 파출소에서 지내다 통행금지가 해제될 무렵에 즉결심판을 받고 벌금을 낸 후 풀려났다.

그런데 이 야간통행금지가 일시적으로 해제되는 때가 있었으니, 야간에 통행이 많아지는 연말연시와 크리스마스이브 그리고 부처님오신날이었다. 부처님오신날은 종교의 형평성 차원에서 포함된 것으로 짐작된다. 그래서 크리스마스이브에는 벼르고 벼르던 젊은이들이 거리로 쏟아져 나와 해방감을 만끽하였는데, 이들이 가장 많이 모인 곳이 바로 명동이었다.

크리스마스이브의 명동은 명동성당과 영락교회 등 유서 깊은 대형 종교시설에서 성탄 미사와 예배를 드리려는 신자들과 젊음을 즐기려는 인파로 넘쳐났다. 특별한 일이 없어도 사람 구경하러 명동에 나가는 이가 많았다. 방송국은 명동에 중계차를 보내 사람들로 북적이는 거리 풍경을 생중계하는 것이 연례행사였다. 간혹 명동의 술집에서는 바가지요금을 적은 크리스마스용 메뉴판을 내놓아 문제가 되었다.

두 사진은 1971년과 2023년의 명동 밤거리 풍경이다. 사진 왼쪽에 살짝 보이는 높은 건물이 1967년 준공되어 명동의 랜드마크 역할을 해온 유네스코회관이다. 이 건물은 2022년 ‘국가등록문화재’로 지정될 정도로 변함없는 모습으로 자리를 지키고 있으나, 주변 건물들의 간판에서는 많은 변화가 나타났다. 1971년에는 한글과 화려한 네온사인을 이용한 비어홀과 다방·병원의 간판이 대부분이었다. 이에 비해 2023년에는 외국인 관광객의 70% 이상이 명동을 찾는다는 통계에 어울리게 한글 간판을 찾기 어려우며, 화장품·관광기념품·식품을 파는 가게와 환전소가 많아 명동의 변화상을 짐작할 수 있다.

정치영 한국학중앙연구원 인문지리학전공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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