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병 부담 줄인다...건보 적용 병동 늘리기로
서울 영등포구의 김모(58)씨는 최근 30년 넘게 다닌 회사를 퇴직하려고 한다. 지난 6월 뇌출혈로 쓰러진 노모를 요양 병원에 모셨는데, 간병비가 눈덩이처럼 불고 있기 때문이다. 김씨는 “한 달 390만원씩 간병비로 쓰고 있는데 월급 대부분”이라며 “이대로 가면 ‘간병 파산’을 할 것 같아 새해에는 회사를 그만두고 노모를 직접 보살필 계획”이라고 했다.
빠른 고령화로 노인 인구가 급증하면서 간병비 부담에 고통 받는 환자와 보호자가 늘고 있다. 개인 간병비는 건강보험이 적용되지 않아 하루 11만~16만원인 간병인 비용을 환자 측이 모두 부담해야 하기 때문이다. 한 달이면 400만원에 육박한다. 서울대 연구에 따르면 지난해 쓴 사적 간병비가 10조원에 달한다. 2008년 3조6000억원, 2018년 8조원에서 급증했다. 노후 자금이나 가정 목돈이 간병비로 소진되고 있다. 최근 윤석열 대통령은 “간병 부담은 ‘간병 지옥’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심각하다”며 대책 마련을 지시했다.
정부와 여당은 21일 ‘국민 간병비 경감 방안’을 발표했다. 2027년까지 4년간 예상되는 국민 간병비 40조 중 25%(10조6800억원)가량을 줄이는 게 목표다. 먼저 당정은 ‘간호·간병 통합 병동’(통합 병동) 이용자를 지난해 198만명에서 2027년 400만명까지 늘릴 계획이다. 통합 병동은 간병인 없이 간호사와 간호조무사가 환자를 돌보는 시스템인데 건강 보험이 적용된다. 환자 측은 2만원 정도만 내면 된다. 개인 간병인의 6분의 1 수준이라 수요가 많다. 그러나 현재는 상급 종합병원이 병원당 네 병동만 통합 병동으로 운영할 수 있다. 정부는 이 제한을 풀기로 했다. 2026년부터 수도권의 상급 종합병원 22곳이 병원당 최다 여섯 병동까지 만들 수 있다. 비수도권의 상급 종합병원 23곳은 병동 수 제한이 없다.
당·정은 중증 수술·치매 등을 전담하는 ‘중증 환자 병실’도 늘리기로 했다. 이런 병실은 손이 많이 간다는 이유로 병원이 꺼리고 있다. 현재 일반 병동에는 간호사 1명이 환자 7~10명을 담당하는데, 중증 병실에선 간호사 1명이 환자 4명을 돌보게 된다. 보호자가 병실에 있어도 간호사와 간호조무사가 간병을 맡는 것이다. 중증 환자 전담 병실은 500병상 이상 대형 병원이 대상이다.
지금 거동이 불편한 노인 환자들은 주로 요양 병원에 머무르고 있다. 요양 병원은 ‘통합 병동’이 없어 간병에 건강보험이 적용되지 않는다. 간병비 전액을 환자 측이 부담해야 한다. 정부는 내년 7월부터 요양 병원 10곳의 환자 600명을 대상으로 예산 85억원을 들여 간병 지원 시범 사업을 시작한다. 건보 적용은 아니다. 혼수 상태, 인공호흡기 부착, 사지 마비 등 상태가 심각한 환자부터 지원할 방침이다. 2027년 전국의 요양 병원으로 확대하는 것이 목표다.
그러나 요양 병원 간병비 지원을 대폭 늘리기 위해 건강보험을 연계할 경우, 현재 건보 재정으로는 감당이 어려울 것이란 지적이다. 복지부에 따르면 요양 병원 간병비에 건보를 적용하면 연간 최대 15조원이 필요하다. 그러나 건보 재정도 보험료를 올리지 않으면 내년부터 적자로 돌아서 2028년이면 적립금이 바닥을 드러낼 것으로 추산된다. 막대한 돈이 필요한 만큼 국민적 합의가 필요하다는 견해가 적지 않다. 요양 병원 간병비에 건보를 적용하면 ‘불필요한 경증 환자의 입원’이 늘어날 수 있다는 우려도 있다.
의료계 관계자는 “국민 상당수가 간병비를 부담스러워하고 건보 적용을 바라지만 문제는 돈”이라며 “내년 총선을 앞두고 여당도, 야당도 간병비 지원을 늘리겠다고 하지만 구체적 재원 조달 방법은 말하지 않고 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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