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글살이] 여보세요?
전체 맥락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본문 보기를 권장합니다.
휴대전화는 예전엔 안 하던 고민을 하게 만든다.
유선전화는 누구 전화인지 알고 싶으면 무조건 받아야 했다.
목화솜이불을 닮은 나는 전화를 끊지 못해 계속 들어주다 미안함만 쌓인다.
광고전화는 "여보세요?"라는 말에 "반갑습니다, 고객님!", "안녕하세요, ○○○ 고객님 맞으신가요?"라고 말한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말글살이]
김진해 | 한겨레말글연구소 연구위원·경희대 교수
휴대전화는 예전엔 안 하던 고민을 하게 만든다. 유선전화는 누구 전화인지 알고 싶으면 무조건 받아야 했다. 하지만 휴대전화는 액정화면에 ‘아는 사람’과 ‘모르는 번호’를 또렷이 구분해 보여준다. 모르는 번호면, 모르는 사람일 텐데…. 받을까 말까 망설이게 된다. 대부분 보험 가입을 권하는 광고전화. 목화솜이불을 닮은 나는 전화를 끊지 못해 계속 들어주다 미안함만 쌓인다.
그렇긴 하지만, 모르는 번호로 걸려 온 전화가 광고전화라는 걸 언제 아는가? 생각보다 빠르다. 딱 첫마디! 두번째도 아닌 첫번째. 당신도 마찬가지일 테지.
광고전화는 “여보세요?”라는 말에 “반갑습니다, 고객님!”, “안녕하세요, ○○○ 고객님 맞으신가요?”라고 말한다. 처음 통화하는 사람이 주고받으며 채워나가는 대화의 쌍을 완성하지 못하기 때문에 광고전화라는 걸 쉽게 들킨다.
우리는 전화를 받으면 “여보세요?”라고 말한다. 그러면 상대방도 십중팔구 “여보세요?”라고 대답한다. 첫마디가 뭐냐에 따라 내 답이 달라진다. 전화받는 사람이 “네, ○○부 홍길동입니다”라고 말하면 나도 “네, 저는 누구누구입니다”라고 말하게 된다. 자기 이름만 말했지만, 나도 내 이름을 밝히게 된다. 자기 이름을 밝히는 건 전화 건 사람도 이름을 밝혀달라는 메시지이다. 전화받는 사람이 “네, ○○부입니다”라고만 말하면, 나도 내가 누구인지 밝히고 싶지 않다.
비록 전화를 통해서지만, 우리는 대화를 하지 대본을 읽는 게 아니다. 말의 질서는 무척 섬세하고 교묘하다. 빈자리를 귀신같이 알아차린다. 우리의 대화는 암묵적이면서도 명시적이다. 아는 형이 전화해 “저녁에 뭐 해?”라고 묻는다면 이유는 뻔하다.
Copyright © 한겨레신문사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재배포, AI 학습 및 활용 금지
- 윤 대통령, 법무장관 면직안 즉시 재가…‘한동훈 비대위’ 손발 착착
- 한동훈 법무부 떠나며 “저는 잘 하고 싶었습니다” [전문]
- 개인사업자, 이자 돌려받는다…횡재세 압박에 은행권 ‘상생’ 생색
- “제 처지만, 논문 빼어나” 송미령 후보 추천서, 남편이 썼다
- 대전 국방과학연구소 화약저장실서 폭발 사고…직원 1명 사망
- 신원식 “시간없어 ‘서울의 봄’ 안 봐…쿠데타 운운 유감”
- [단독] 안덕근 세금 꼼수…연말정산 땐 ‘부양’, 재산공개 땐 ‘독립’
- “제발 살려 주십시오”…‘아내와 추억’ 분실한 70대의 호소
- “아버지께서 오늘 별세”…부고 문자에 경찰도 당했다
- “이순신 장군 욕되게 하지 마라…한동훈은 잘못하면 원균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