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헌 칼럼] 가계부채 연착륙, 금융 선진화의 첫걸음
윤석헌 | 전 금융감독원장
한국 경제의 뇌관으로 불리는 가계부채가 증가세를 지속한다. 지난 14일 한국은행은 ‘금융권 가계대출이 지난해 9월 이후 완만한 감소세를 이어갔으나 올해 4월 증가세로 전환한 후 7월부터는 증가폭이 확대되었다’고 밝혔다. 그래서인지 1년 전 국정과제 점검회의에서 ‘수요규제를 풀어 집값 하락을 막겠다’던 정부가 지난 10월 말에는 ‘가계부채 위기는 1997년 외환위기의 몇십배 위력’이라며 관리 쪽으로 정책 전환을 발표했다.
지난 10월18일 싱가포르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토마스 헬브링 국제통화기금(IMF) 아태 부국장은 현재 한국의 국가채무 수준은 적정하지만 가계부채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상위 그룹 중에서도 높아 거시건전성 정책 수립이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대내외적으로 한국의 가계부채 증가세에 대한 우려가 크고 관리 필요성을 지적받는 것은 과다한 가계부채의 두가지 부담 때문이다. 첫째, 과다한 가계부채 원리금 상환 부담이 가계의 소비여력을 줄이고 웬만한 투자는 포기하게 하여 성장잠재력을 낮춘다. 둘째, 수출 부진이나 무역수지 악화 등 해외발 충격이 가세하면 고용이 감소하고 내수가 위축되어 가계의 채무 불이행 위험이 확대된다. 이것이 부동산경기 침체와 엮이면 가계부채발 금융위기도 가능하다.
이런 상황에서 가계부채의 두가지 특성에 주목한다. 첫째는 하방경직성인데, 이는 정부 부동산 정책과 은행 천수답 경영의 합작품이다. 경제가 어려울 때 정부는 경기부양을 위해 주택담보대출을 불쏘시개로 사용하는데, 경제가 개선되었다고 상환을 요구하진 않는다. 박근혜 정부의 ‘빚내서 집 사라’ 정책이 대표적이다. 은행들도 정부 정책에 발맞춰 주담대 증가세를 쌍끌이했다. 은행들은 저비용 예금과 담보대출 위주의 천수답 경영을 확대하여 수익 창출에 힘써 왔다. 이런 상황에서 가계부채는 증가는 쉽지만 축소는 어려워 하방경직성을 띠게 된다. 그래서 ‘끓는 물주전자 속 개구리’처럼 위험을 인식하지 못하다가 치명적 위기에 처하게 된다. 연착륙 조기 추진을 위해 시스템적 대응이 필요한 이유다.
둘째는 가계부채를 둘러싼 이해관계의 복잡성이다. 가계부채는 가계, 금융, 건축, 사회복지 등 여러 부문의 이해가 복잡하게 얽혀 있어 해결책 마련이 쉽지 않다. 이에 정부 주도가 당연한 듯싶지만, 정부 부처 간에도 이해가 엇갈린다. 기획재정부는 경기부양을 위해 가계부채 확대를 원하고, 금융당국은 위험관리를 위해 축소를 원하며, 국토교통부는 주거환경 개선을 위해 확대를 원하는 식이다. 결국 이들의 다양한 이해를 조율하여 공동목표를 설정하고 연합 대응하는 총체적 접근이 필요하다.
어떻게 할 것인가. 가계부채 연착륙을 위해서는 은행의 가계대출 축소를 통해 가계부채의 총량 증가세를 억제해야 하는데, 이를 위해 차주의 상환역량(affordability) 개념이 유용하다. 이는 ‘갚을 수 있는 만큼만 빌려주고 빌려 가라’는 취지로 신용위험 관리는 물론 규모의 통제에도 효과적으로 쓰일 수 있다. 금융당국의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 규제가 그에 해당한다. 현재 대출금 1억원 초과 차주를 대상으로 대출금이 소득의 40%를 넘지 못하도록 규제한다.
한편 개별 은행의 가계별 대출금 전체를 총합하면 은행의 가계 대출금 총액이 산출되고, 같은 방식을 전체 금융사에 적용하면 가계부채 총량이 산출된다. 따라서 금융당국은 은행의 가계별 대출금 결정에 적용하는 디에스알 규제를 가계부채 총량관리에 적용하여 거시건전성 위험관리 수단으로 사용할 수 있다. 예컨대, 금융당국은 현재 40%인 디에스알 기준을 하향하여 개인별 대출금 축소를 유도함으로써 가계부채 총량의 연간 증가율이 경제성장률(명목 GDP 증가율) 목표(예, 5%)에 접근하도록 이끌 수 있다. 이에 관한 구체적인 목표와 경로는 금융당국이 선택할 수 있으며, 증가율 목표에 따라 디에스알 기준을 조정하면 은행은 새로운 기준을 가계별 소득에 적용하여 가계별 대출금 한도를 산출하게 된다.
이러한 총량관리 기본 틀을 전제로 가계부채 연착륙의 성공을 위해서 한은, 금융권 및 정부의 연합 대응이 필요하다.
우선 한은은 기준금리 인상에 좀 더 적극적일 필요가 있다. 한은의 기준금리 인상은 은행의 조달금리 및 대출금리 인상으로 이어져 신규대출 수요를 감소시켜 가계부채 연착륙에 기여할 것으로 기대된다.
가계부채 연착륙의 성패는 결국 은행 가계대출의 효과적 축소에 달려 있다. 은행은 기업대출 대비 가계대출 금리를 올려 가계대출 수요를 줄이고 기업대출 확대를 시도할 수 있다. 한편 한은의 기준금리 인상 때 은행이 연동형 가계대출 적용금리를 인상하면 기존 대출의 조기 상환을 유인하여 가계부채 감소 효과가 예상된다. 그러나 이는 최근 횡재세 논의에서 지적되듯, 은행이 자신의 기회비용 증가를 대출 고객에게 떠넘겨 이익을 취하는 것으로 바람직해 보이지 않는다. 결국 은행은 이제껏 누려온 천수답 경영의 기득권 일부를 포기하고 그 대신 고객의 니즈를 충족하는 대체 수익원 개발에 나서 대출 축소 및 이자이익 감소의 보완을 도모하는 게 상책이다.
금융당국은 은행권의 이러한 가계대출 축소를 지원하기 위한 금융개혁안 마련에 나서야 한다. 금융감독 대안으로는 은행의 주담대 유인을 축소하기 위하여 국제결제은행(BIS) 자본비율 계산 때 주담대에 시스템 리스크 위험가중치 부과를 고려할 수 있다.
재정의 역할도 빼놓을 수 없다. 은행의 가계대출 축소는 가계 및 자영업자한테 자금 경색을 초래할 수 있어 정부의 재정자금을 이용한 보완이 필요하다. 디에스알 규제 도입으로 거절 내지 미충족되는 저소득층의 자금 수요에 대한 지원도 필요하고, 국채 발행 등 정부자금에 의한 공공임대주택 건설도 바람직하다. 한국은 선진국 대비 가계부채 비율이 높지만 정부부채 비율은 낮은 상황에서 전자를 줄이고 후자를 늘려 국가의 총체적 부담을 줄이는 방안을 고민할 필요가 있다.
가계부채 연착륙 과정에서 부동산으로 흘러가던 돈이 생산활동으로 흘러가는 것은 한국 금융 선진화의 첫걸음이 될 것이다. 이를 위해 국회 산하에 정부 관련 부처들과 민간이 공동 참여하는 가계부채 연착륙 티에프(TF) 설치·운영을 제안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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