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이 간여해선 안 되는 국제상거래도 있다

한겨레 2023. 12. 21. 19: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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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 대통령이 11월29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에서 2030년 세계박람회(엑스포) 유치 실패에 대해 사과하는 대국민 담화문을 살펴보고 있다. 연합뉴스

[왜냐면] 윤덕균 | 한양대 산업공학과 명예교수

윤석열 대통령은 “대한민국 1호 세일즈맨”을 자처하며 ‘경제 대통령’으로 기억되길 바란다. 그러나 부산 엑스포 유치 실패에서 보여준 바와 같이 그렇게 성공적이지 못하다. 그 이유는 국제상거래에서 대통령의 간여가 필수인 경우, 불가한 경우, 무용한 경우를 구분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대통령 간여가 필수적인 경우는 상거래 당사자가 국가일 때다. 그 대표적 사례가 1993년 미테랑 프랑스 대통령이 케이티엑스(KTX)를 수주하려는 자국 테제베(TGV)에 힘을 실어주기 위해 방한한 것이다. 이 방한은 독일 이체(ICE), 일본 신칸센 등 3파전에서 테제베가 승리하는 데 결정적 역할을 했다.

대통령 간여가 불가한 경우는 무기 상거래다. 무기는 적정 가격 없이 로비로 결정된다. 그래서 무기의 국제상거래는 흑역사의 연속이다. 케이(K)–방산만 해도 1993년 율곡사업 비리부터 1996년 린다 김 로비 사건, 2014년 통영함 비리까지 추문이 이어졌다. 일본의 다나카 가쿠에이 전 총리는 일본 정치사상 최대 추문 가운데 하나인 록히드 사건으로 1976년 유죄판결을 받았다. 록히드는 일본 말고도 네덜란드 왕족, 독일·이탈리아 정치인, 홍콩·사우디아라비아 고위층에 10년 이상 뇌물을 제공했다. 이같이 무기 거래는 전 세계를 통해서 불법이 난무하는 분야여서 대통령이 간여해서는 안 된다.

지난해 124억 달러의 1차 계약을 체결한 이후 올해 2차 계약까지 본궤도에 오른 ‘케이-방산’의 폴란드 수출을 보면 대통령의 간여가 얼마나 위험한지를 여실히 보여준다. 2023년 12월11일 폴란드 총리가 교체됐다. 차기 국방장관으로 내정된 브와디스와프 코시니아크카미시는 “한국 기업과 체결한 방산·군비 계약을 다시 검토할 것”이라고 한다. 이같은 정치 상황보다 더 심각한 것이 폴란드에 대한 무차별 자금지원이다. 대통령이 간여하다 보니, 지난해 수출입은행은 이례적으로 12조 원에 달하는 정책자금을 지원했다. 올해 2차 계약에 대한 금융지원으로 수출입은행의 금융지원액이 한도에 이르자 정부는 5대 시중은행에 ‘공동 대출’ 형태의 금융지원 방안을 강요하고 있다. 이는 전형적인 관치금융이다. 1990년 노태우 대통령 시절 14억7천만 달러의 차관을 북방외교라는 명분으로 옛 소련에 제공했다. 옛 소련이 붕괴하고 러시아가 승계했으나 재정난으로 상환하기 어려워지자 1995년부터 4년 동안 4억5천만 달러 상당의 방산 장비로 대납했다. 아직 10억 달러가 미상환 상태다.

대통령의 간여가 무용한 경우는 에이에스엠엘(ASML)-삼성전자 계약과 같은 개별기업의 상거래다. 개별기업의 상거래에 대통령이 간여하게 되면 정경 유착과 과잉 대응의 비효율이 있다. 세계적인 기업들의 국제상거래는 당사자에게 맡기는 것이 최선이다. 대통령이나 대통령실 행정 관료의 노하우가 세계적인 기업의 노하우를 넘어설 수 없다. 이건희 삼성전자 선대 회장은 1995년 “기업은 이류, 행정은 삼류, 정치는 사류”라고 평했다. 대통령은 기업 간 상거래에 수저를 얹지 말고 한국에 투자가 이뤄지도록 기반을 구축해야 한다.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인플레이션감축법(IRA) 첨단제조생산세액공제(AMPC) 잠정 가이던스’를 통해 미국에 생산시설을 구축한 기업에 큰 수혜를 주는 투자 인프라를 만들어 세계 기업이 미국 투자에 나서게 하는 것처럼 말이다.

부산 엑스포 유치 실패에서 보듯이 열심히 하는 것만이 능사가 아니다. 윤 대통령은 아세안 정상회의, 인도 20개국 정상회의, 유엔 총회 등에서 67개국 정상을 만나 지지를 호소하는 릴레이 세일즈 외교를 폈다. 기네스북 신기록에 도전할 정도의 강행군 탓에 코피를 쏟는 해프닝까지 벌어졌다. 그러나 결과는 119대 29의 참패였다. 전략 없는 강행군 정치의 예견된 결과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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