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뒷걸음질에 ‘일회용컵 없는 제주’ 무너질 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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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도 분들은 좋겠어요. 다회용컵도 많이 쓰고, 일회용컵 보증금제도 시행되고, 나도 제주 살고 싶어요!" 지난봄, 서울에서 온 아무개 환경단체 간사로부터 들은 얘기다.
보증금제는 일회용컵 재활용률을 높이는 데서 나아가 각 업체가 다회용컵 사용으로 전환하게 만드는 동기를 부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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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냐면] 한정희 | 예비사회적기업 푸른컵 대표
“제주도 분들은 좋겠어요. 다회용컵도 많이 쓰고, 일회용컵 보증금제도 시행되고, 나도 제주 살고 싶어요!” 지난봄, 서울에서 온 아무개 환경단체 간사로부터 들은 얘기다.
“더 이상은 못해요. 보증금제에 참여하는 곳만 계속 피해를 보잖아요. 하려면 다 같이 해야죠.” 이건 며칠 전, 제주도의 한 카페 사장님이 쏟아 놓은 하소연이다.
필자는 2년 전 ‘일회용컵 없는 제주’를 꿈꾸며 다회용컵 공유 사업을 시작했다. 그 뒤 적잖은 변화를 목격했다. 제주도의 차량이나 사무실에서는 유명 커피 브랜드의 흰색 재사용(리유저블) 컵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필자가 운영하는 업체로는 대형 이벤트는 물론, 작은 마을 행사에서도 다회용컵을 빌려 쓸 수 있냐는 문의가 들어온다. 여전히 일회용컵 사용 비중이 크지만, 의지만 있다면 ‘일회용품 지옥’을 피할 수 있는 인프라가 제주도에 갖춰져 있는 셈이다. 그러나 그 인프라가 무너질 위기다.
환경부는 지난 9월 일회용컵에 담아 파는 음료 가격에 보증금을 포함하고, 소비자가 사용한 컵을 반납하면 보증금을 돌려주는 보증금제 시행 여부를 지자체 자율에 맡기는 ‘자원재활법’ 개정안을 논의 중이라고 밝혔고, 지난달에는 매장 안에서 종이컵을 사용하는 것도 허용했다. 정부는 “자율성”과 “소상공인 고충”을 이유로 내세웠다. 하지만 이는 힘겹게 이뤄 온 자원순환 사회로의 진전을 뒤엎는 근시안적 결정이다. 일회용품 없는 세상을 만들기 위해 악전고투해 온 기업들에게 폐업 권고나 다름없는 소식이다.
제주도는 세종시와 함께 지난해 12월부터 일회용품 보증금제를 시범으로 시행했다. 제도가 정착돼 가는 과정은 결코 순탄치 않았다. 보증금제에 의무적으로 참여하는 대형 카페는 한동안 고객들의 불만에 시달려야 했다. 대놓고 제도를 보이콧하는 카페도 있었다. 그러나 초기 10%대에 머물렀던 컵 반환율은 이제 80%대까지 올라왔다. 녹색연합과 제주환경운동연합이 지난달 제주도민 567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인식 조사 결과를 보면, 일회용컵 보증금제 취지에 “적극 공감한다”는 응답자가 58%, “공감하는 편”이라고 답한 응답자가 24%에 달했다.
하지만 정부의 뒷걸음질로 인해 현실은 과거로 되돌아가고 있다. 보증금제 대상 업체들이 속속 제도에서 이탈하는 중이다. 10월 첫째주 18만 개였던 일회용컵 회수량은 10월 마지막 주에는 12만 개에 그쳤다. 친환경 사업을 운영하는 기업들도 “계약서 쓰기 전으로 돌아가고 싶다”며 패닉에 빠진 모습이다.
한 가지 희망적인 것은 제주특별자치도가 ‘플라스틱 제로 섬’의 의지를 꺾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제주도의회는 지난 11일 보증금제 적용 대상을 대형 프랜차이즈로 한정해 발생하는 형평성 논란을 해소하기 위해, 각 지자체가 조례로 대상 사업자를 확대할 수 있도록 ‘자원재활용법 시행령’을 개정하라는 결의안을 통과시켰다. 사실 정부도 이러한 취지에 공감해 올초 개정안을 입법예고까지 했으나, 뚜렷한 이유 없이 진전시키지 않고 있다.
보증금제는 일회용컵 재활용률을 높이는 데서 나아가 각 업체가 다회용컵 사용으로 전환하게 만드는 동기를 부여한다. 얼마 전 막을 내린 제28차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COP28)는 “화석연료에서 벗어나는 전환”에 합의했다. 탈 플라스틱은 거스를 수 없는 세계적 흐름이다.제주도가 플라스틱 제로 섬을 향해 나아갈 수 있도록, 관련 시행령을 조속히 개정할 것을 정부에 촉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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