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인권, 왜 어른들끼리 좌지우지하나요”
“학생인권조례가 존재해 반인권적인 학교생활 규정을 지적하고, 국가인권위원회에 진정을 넣을 수 있었습니다. 그 결과 서울교육청에서는 용의복장 규제에 대한 컨설팅을 진행했고, 제가 재학했던 학교의 학칙개정이 실시되는 등 학생인권조례가 존재했기에 가능했던 변화들이 있었습니다.”
고등학생 오모양(18)은 21일 서울 중구 서울시의회 앞에서 열린 학생인권조례 폐지 반대 촛불문화제를 찾아 이같이 발언했다. 오양은 “학생인권조례로도 학생 인권 실현을 이루기 역부족한 이 시점에 조례를 폐지하려는 움직임은 명백한 민주주의의 퇴보”라며 “서울시가 학생인권을 포기하겠다는 선언과 같다”고 말했다.
전국 각 지자체·지방의회가 학생인권조례를 없애거나 개정하려는 움직임을 보이는 가운데 청소년들이 학생인권조례 폐지 반대에 적극적인 목소리를 내고 있다. 이들은 “학생 당사자의 목소리는 배제됐다”며 폐지 과정에서 학생들의 의견도 적극적으로 수렴할 것을 촉구했다.
이날 청소년과 학부모, 교사 등이 모인 ‘서울 학생인권조례 지키기 공동대책위원회(공대위)’ 등은 서울시의회 앞에서 촛불문화제를 열고 “서울시 학생인권조례는 학생의 인간으로서 존엄과 가치를 실현하고자 2012년 9만7000여명 시민의 염원을 담아 주민발의로 만들어졌다”며 “조례 폐지 논의를 즉각 중단하라”고 밝혔다.
친구들과 함께 문화제에 참석한 고등학생 수영(활동명·16)은 “학교의 권위적 문화 속에서 체벌 등 인권침해 사례가 아직도 일어나고 있다. 학생인권조례는 인권을 위한 최소한의 가이드라인”이라며 “조례를 통해 인권을 알아야 친구들과 선생님 모두에게 인권적으로 대하는 방법도 알 수 있다”고 말했다.
지역에서도 학생인권조례 폐지 반대 움직임이 이어지고 있다. 전북 전주시에 사는 정모양(18)은 지난 15일 충남 예산군 충남도의회로 ‘원정 방청’에 나섰다. “전북에도 학생인권조례를 폐지하려는 사람들이 있어 남의 일이 아닌 것 같고, 충남 청소년과 연대하고 싶다”는 이유에서였다.
정양은 당시 한 시의원으로부터 “조례에 성적 지향, 성 정체성, 임신·출산 등에 따른 차별을 받지 않을 권리가 포함돼있어 올바른 가치관을 형성할 중요한 시기의 학생에게 잘못된 인권 개념을 추종하게 하고 있다” 등 발언을 들었다고 했다.
정양은 이날 통화에서 “인권을 모르는 이가 학생인권조례를 살릴지 말지 좌우하는 현실이 어이없었다”라며 “학생인권조례로 인해 가장 큰 영향을 받는 대상은 학생인데, 학생의 발언권 하나 없는 자리에서 조례 폐지가 결정되는 것이 모순적”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시·도의회는 조례 폐지 과정에서 학생 의견을 제대로 수렴하지 않고 있다. ‘어른들이 해결할 거니까 학생은 공부만 열심히 하면 된다’는 식의 태도”라고 했다.
충남도의회는 지난 15일 전국 최초로 학생인권조례 폐지 조례안을 통과시켰다. 서울시의회에는 학생인권조례 폐지·개정안이 각 한 건씩 계류 중이다. 지난 3월 김현기 서울시의회 의장이 주민 청구에 따라 학생인권조례 폐지안을 발의했지만, 법원이 지난 18일 시민단체가 제기한 집행정지 신청을 인용하면서 제동이 걸린 상태다. 하지만 폐지안이 새로 발의될 여지도 있다. 이상욱 국민의힘 서울시의원은 지난 8월 “교사의 정당한 방어권을 확보하고자 학생의 권리만을 부각하고 책임을 외면한 현재 서울특별시 학생인권 조례를 개정하고자 한다”며 학생인권조례 일부개정안을 발의했다.
윤기은 기자 energyeun@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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