롤러에 낀 작업자 손 빼내다 되레 손이 낀 소방관[매일 불구덩이에 뛰어드는 사람들]⑦
대형 롤러에 손목 낀 요구조자, 에어리프팅백으로 구조 성공
구조 동시에 이 소방관과 동료 손목 껴 손목뼈 골절
"소방관이라 더 위험한 상황도 뛰어들 것"...공상 지원 강화 기대감도
그들의 단련된 마음과 몸이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지킨다. 그러나 그들도 사람이다. 지난 10월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소속 기본소득당 용혜인 의원이 소방청에서 제출 받은 ‘소방공무원 건강 진단 현황’ 자료에 따르면, 2022년 소방공무원 정기 검진 실시자 6만2453명 중 4만5453명(72.7%)이 건강 이상으로 관찰이 필요하거나 질병 소견이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건강 이상자 중 6242명(13.7%)은 직업병으로 인한 건강 이상으로 확인됐다.
이상 동기 범죄 빈발, 기후 변화 등으로 인해 점차 복잡해지고 대형화되는 복합 재난 등 갈수록 흉흉하고 각박해져 가는 세상에, 매일 희망을 찾아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농연(濃煙) 속으로 주저 없이 들어가는 일선 소방관들. 평범하지만 위대한 그들의 일상적인 감동 스토리를 널리 알려 독자들의 소방 업무에 대한 이해도를 높이고 소방관에 대한 감사한 마음을 고취하고자 기획 시리즈 ‘매일 불구덩이에 뛰어드는 사람들’을 11월 9일 ‘소방의 날’을 시작으로 매주 한 편씩 약 1년에 걸쳐 연재한다.
이동 중에 세종시 소방본부 상황실과 무전을 통해 현장 상황을 파악했다. 작업자의 상태와 롤러의 종류 및 크기를 머릿속에 상상하며 대략의 구조 계획을 세웠다. 그러나 현장에서 본 롤러의 크기는 이 소방관이 생각한 그 이상이었다. 너비 약 4미터 지름 약 40cm의 롤러 두 개에 작업자의 손목이 완전히 껴 있었다. 구조 방법과 구조 장비, 피해자의 통증 완화 방법, 동료들의 안전까지, 고려해야 할 요소가 너무 많았다. 공장 관리자에게 물으니 롤러를 해체할 엔지니어를 불렀으나 약 1시간이 걸린다고 했다.
이 소방관은 구조팀장으로서 팀원들과 구조 방법을 논의했다. 엔지니어가 올 때까지 기다릴 수는 없었고, 다른 적용 가능한 장비도 없었다. 그러나 넋 놓고 있을 수도 없었다. 무엇이든 해야 했다. 낀 손을 빼내려면 롤러와 롤러 사이에 공간을 마련해야 했고, 롤러의 크기를 고려했을 때 강력한 물리력이 필요했다.
이 소방관이 사용할 수 있는 가장 강력한 장비는 에어 리프팅 백(air lifting bag)뿐이었다. 시간이 급박했다. 팀원들에게 장비를 준비시키고 이 소방관이 조작기를 잡았다. 최대 45톤을 들어올릴 수 있는 에어백을 사용해 위아래 두 롤러 사이의 공간을 확보하려고 했지만, 롤러를 고정할 방법이 없었다. 에어백이 부풀어 오르면 롤러가 회전해 에어백을 도로 밀어내 버렸기 때문이다.
다른 방법이 필요했다. 결국 두 개의 에어백을 사용하자는 데 의견이 모였다. 한 개의 에어백은 위쪽으로 다른 하나는 아래쪽으로 붙여 롤러가 회전하지 못하도록 했다. 이 작은 아이디어가 효과를 발휘하기 시작했다. 기름을 요구조자의 손에 뿌려 가며 조금씩 그의 손을 롤러에서 빼낸 끝에 약 30여 분 만에 요구조자를 구조했다.
그러나 임무를 다 마쳤다는 안도를 하던 찰나 롤러가 다시 강하게 회전했다. 그러면서 이 소방관의 손이 롤러로 순식간에 빨려 들어갔다. 요구조자의 손을 롤러 바깥으로 빼낼 공간을 만들기 위해 두 개 에어백 중 한 개를 제거할 수 밖에 없었는데, 한 개의 에어백으로만 롤러를 지지하고 있던 탓에 그 에어백 하나마저도 균형을 잃고 롤러에서 떨어져 나가 버린 것이다.
엄청난 고통이 신경을 타고 전해졌다. 이 소방관은 도저히 버틸 수 없어 온 힘을 다해 다른 한 손으로 낀 손을 잡아 뺐다. 장갑이 벗겨지며 뒤로 벌러덩 나자빠졌다. 이 소방관은 그 상황에 대해 “구조를 하러 왔는데 내가 요구조자가 될 수는 없었다. 더 위험해 질 수도 있었겠지만 일단 그 상황만큼은 피하고 싶었다”고 회고했다.
그런데 이 소방관이 고통을 뒤로한 채 간신히 정신을 차려 보니, 옆에서 이 소방관과 같이 구조 작업을 하던 한 팀원도 극도의 고통스러운 신음 소리를 내며 손을 부여잡고 있었다. 알고 보니 그 팀원 역시 이 소방관과 동시에 롤러에 손이 꼈던 것이다. 이 소방관은 좀 전에 작업자를 구조한 방식 그대로 구조 작업을 다시 시작했으나 다친 손으로 인해 단단히 맞물린 롤러 사이에 낀 팀원의 손을 빼낼 수가 없었다.
그 시간은 천년처럼 길게 느껴졌다. 팀원은 극심한 고통 속에서 발버둥치고 있었다. 이러지도 못하고 저러지도 못하는 이 소방관은 정말이지 울고 싶을 지경이었다. 천만다행으로 공장에서 급히 파견한 엔지니어가 곧 도착했다.
결국 롤러 해체 작업이 시작됐고 가까스로 팀원도 롤러에서 손을 빼낼 수 있었다. 이 소방관과 해당 팀원은 손목뼈 골절이라는 중상을 입고, 몇 개월 간 병가를 사용할 수 밖에 없었다.
나중에서야 작업자는 다친 곳이 없다는 소식을 들을 수 있었다. 이 소방관은 비록 골절상을 입었지만 구조 대상자가 무사하다는 소식을 들어 기뻤다. 임무를 완수했다는 안도감이었다.
그러나 이 같은 자긍심과는 별개로 이 소방관은 이후 한동안 외상후 스트레스장애(PTSD)에 시달려야 했다. 그는 “병가 복귀 후 약 10개월 간 내근을 하게 됐는데 비슷한 사고가 접수되면 작업자와 동료들의 안전이 우려돼 마음이 왠지 더 불안해졌어요”라고 말했다.
이연호 (dew9012@edaily.co.kr)
Copyright © 이데일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내년 예산안 656.6조원…민생경제·취약계층 지원 '방점'
- [전문]법무장관 퇴임하는 한동훈 “서민과 약자 편에 서고 싶었어”
- 배현진 "꼰대 정당 이미지 깨야…젊은 인재 전진 배치"[총선人]
- 와이더플래닛 급등에…이정재 700억원 돈방석
- ‘랜선 연인’에 3억 보냈는데…알고보니 불법체류자 사기꾼이었다(영상)
- “암 투병 어머니 돌아가시기 전 구매한 연금복권, 21억 당첨”
- 치마 올려진 채 숨진 20대 보육교사, 영원히 묻힌 진실 [그해 오늘]
- [단독]'먹태깡 대박' 농심, 이번엔 '포테토칩 먹태청양마요맛' 낸다
- 강성연 측 "김가온과 이혼…두 아이 양육 중, 상처 받지 않았으면" [공식]
- “파티 생각 없습니다” 축구밖에 모르는 이강인, 음바페 생일 파티 참석 물음에 단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