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전진단 전에도 절차 돌입하게… 주택정비 패러다임 변화 [재개발·재건축 규제완화]

박세준 2023. 12. 21. 18: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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尹 “안전진단기준 원점 검토” 의미는
시설 노후로 생활 불편한 수준 땐
구조상 안전성 문제 없어도 가능케
30% 비중 구조안전성 대폭 하향
안전진단 규제 아예 폐지 관측도
시장활기·사회적 비용절감 기대
부동산 침체… 즉각적 효과 미지수

윤석열 대통령이 21일 재개발·재건축 사업절차를 ‘노후성’ 위주로 전면 재검토하겠다는 방침을 밝히면서 도심 내 주택공급이 활성화될 것으로 전망된다. 다만 부동산 경기가 침체된 데다 원자재 가격 급등으로 단기간에 시장 변화를 체감하긴 어려울 것이란 분석이 나온다.

윤 대통령이 밝힌 구상은 재건축 등 정비사업을 추진할 때 위험성을 따지는 현행 방식에서 벗어나 노후성을 착수 기준으로 바꾸는 등 패러다임에 변화를 주겠다는 복안이다.
윤석열 대통령과 원희룡 국토교통부 장관(왼쪽 두 번째)이 21일 서울 중랑구 모아타운 사업지를 방문해 오세훈 서울시장(오른쪽)의 사업 설명을 듣고 있다. 윤 대통령은 이날 주민 간담회에서 “재개발·재건축 착수 기준을 (위험성에서) 노후성으로 완전히 바꿔야 할 것 같다”며 규제 완화를 시사했다. 이재문 기자
현행 정비사업의 경우 도로를 비롯한 기반시설 정비를 목적으로 공공적 성격을 띠는 재개발은 노후도 조건(30년 이상 건축물 연면적 기준 60% 이상)을 충족해야 한다. 민간이 주가 되어 아파트 단지 단위로 추진하는 재건축은 안전진단에서 일정 기준을 통과해야 다음 절차를 밟을 수 있다.

안전진단 규정을 도입한 것은 멀쩡한 주택을 무작정 헐고 새로 짓지 못하도록 제한하기 위한 취지다. 구조안전성, 주거 환경, 시설 노후도, 비용편익 등의 항목을 종합 평가해 일정 수준을 충족하지 못하면 안전진단을 통과하는 방식이다. 하지만 정부와 지자체 등이 재개발 차익을 위한 투기 수요를 차단하고, 집값 상승을 억누르기 위한 규제 수단으로 활용하기도 했다. 이에 따라 문재인정부 때였던 2018년 3월 안전진단 규정이 대폭 강화된 이후 지난해까지 약 5년간 안전진단을 통과한 단지는 전국 65곳에 그쳤다.

정비업계에서는 윤 대통령이 정비사업 절차의 원점 재검토 필요성을 강조한 만큼 현행 안전진단 기준을 대폭 완화하거나 폐지할 수도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건물의 구조상 안전성에 문제가 없더라도 비가 새거나 녹물이 나오는 등 주거 환경·시설이 열악하면 재건축 추진 절차에 돌입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이에 따라 안전진단 중 배점 30%인 구조안전성의 비중을 대폭 낮추는 방안이 거론된다.
정부는 올해 1월부터 안전진단 중 구조안전성 비중을 낮추고 조건부 재건축 범위도 조정하는 완화된 규정을 적용하고 있다. 이에 따라 지난 5년간 65건이었던 안전진단 통과 건수가 올 한 해만 163건으로 대폭 늘었다.
일각에서는 재건축 안전진단 규제를 아예 폐지하거나 재개발의 노후도 조건 중 30년 이상 건축물 비중 등도 조정할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재건축 추진절차 중 안전진단 규제가 사라지면, 곧바로 조합 설립 전 단계인 추진위원회 구성 등에 나설 수 있게 된다. 재개발의 경우 현재는 30년 이상 된 건축물이 60% 이상이어야 하는데, 연면적 비중을 낮추거나 아예 30년 기준을 삭제하고 주거 환경·시설 수준을 평가하는 항목을 도입할 수 있다는 것이다.
윤석열 대통령이 재개발·재건축 착수기준에 ''위험성''이 아닌 ''노후성''에 중점을 두어야 한다고 발언한 21일 오전 서울 여의도 63아트 센터에서 바라본 서울 아파트 단지 모습. 연합뉴스
이와 별개로 재건축·재개발 절차를 간소화해 정비사업에 소요되는 기간을 단축하는 방안도 추진될 전망이다.

전문가들은 안전진단을 포함한 규제 완화가 재개발·재건축 사업 동력을 끌어올리는 데 도움을 줄 것이라면서도 실제 주택공급 확대로 이어질 수 있을지는 미지수라고 평가했다.

서진형 공정경제포럼 공동대표(경인여대 교수)는 “도로가 좁고, 주차공간이 부족해 주거여건이 상당히 나쁜데도 안전진단에 탈락해 재건축하지 못하는 경우도 많았다”며 “정비사업 추진이 전반적으로 원활해지는 효과가 있고, 사회적 비용도 줄일 수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다만 “지금은 시장이 침체된 상황이라 단기간에 체감할 변화가 나오진 않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권대중 서강대 부동산학과 교수는 “안전진단 문턱을 넘더라도 수익성이 나지 않으면 당장 재건축을 빠르게 추진하기는 어렵다”면서 “윤 대통령의 구상은 향후 1기 신도시 정비사업을 염두에 두고 안전진단을 비롯해 사업 속도를 끌어올리기 위한 방안을 다각도로 구상하겠다는 의도인 것 같다”고 분석했다.

지난 8일 국회 본회의를 통과한 노후계획도시 특별법(1기 신도시 정비사업 특별법)은 택지조성사업 완료 후 20년 이상 경과한 100만㎡ 이상 지구가 대상이다. 현재 재건축 연한인 30년보다 10년이나 짧다. 특별법에는 안전진단 절차를 면제·완화하거나 용적률을 대폭 상향하는 등의 혜택을 부여하는 내용도 포함돼 있다.

박세준 기자 3jun@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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