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년 예산 656.6조 국회 통과…최장 지각 피했지만 밀실 합의 비판도(종합2보)
R&D 6천억·새만금 3천억↑…지역화폐 3천억 반영
4.2조 감액…ODA 2500억·기재부 예비비 8천억↓
작년보다 사흘 빨리 통과…"밀실에서 졸속 합의"
[서울=뉴시스] 이승재 정성원 조성하 기자 = 656조6000억원 규모의 내년도 예산안이 21일 국회 문턱을 넘었다. 법정 시한을 3주가량 넘긴 지각 처리다.
쟁점이었던 연구개발(R&D)과 새만금 관련 예산은 각각 6000억원, 3000억원 늘었다. 지역화폐 예산도 3000억원을 새로 반영했다.
거대 양당이 밀실 합의를 통해 예산안 통과를 서둘렀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민생경제가 어려운 상황에서 여야 공히 윤석열 대통령과 이재명 대표 대선 공약 예산 챙기기에 급급했다는 이유에서다.
여야는 이날 오후 국회 본회의에서 재석 259명 중 찬성 237명, 반대 9명, 기권 13명으로 '2024년도 예산안 수정안'을 의결했다.
총지출 규모는 656조6000억원으로 올해 본예산과 비교해 2.8% 늘었다. 이는 2005년 이후 최저 증가율로 정부의 건전재정 의지를 반영한 것으로 풀이된다.
앞서 지난 9월 국회에 제출된 정부안과 비교하면 4조2000억원이 감액됐고, 3조9000억원이 증액됐다. 결과적으로 3000억원 깎인 것으로 지난해에 이어 2년 연속 국회 심사 과정에서 총지출 규모가 순감했다.
국가채무 규모는 정부안과 비교해 4000억원 감소한 1195조8000억원이다. 이에 따라 관리재정수지 적자 규모도 91조6000억원으로 4000억원 개선됐다.
여야는 집행 가능성이 낮거나 사업 계획이 미흡한 사업 등을 감액하고, 사업 간 우선순위를 조정해 예산을 추가 반영했다는 입장이다.
정부안에서 대거 삭감됐던 연구개발(R&D) 지원 예산은 6000억원을 순증해 26조5000억원 규모로 책정했다.
정부는 R&D 예산이 2018년부터 매년 10%씩 5년간 10조원 이상 늘어난 데 대해 '중복 지원과 나눠먹기식 낭비 구조개혁'의 필요성을 강조하며 내년 예산을 전년 대비 5조2000억원 삭감한 25조9000억원을 편성한 바 있다.
그러나 R&D 현장과 야당의 반발이 이어지자 여야는 현장 연구자 고용 불안 해소와 차세대 원천기술 연구 보강, 최신·고성능 연구장비 지원 등에 사용할 목적으로 순증했다.
구체적으로 고용불안 해소를 위해 기초연구 과제비 추가 지원(1528억원), 박사후연구원 연구사업 신설(450억원), 대학원생 장학금·연구장려금(100억원), PBS 비중이 큰 출연연구기관 인건비 보강(388억원), 기업 R&D 종료과제 내 인건비 한시 지원(1782억원) 등을 추가했다.
슈퍼컴퓨터·중이온가속기·양성자가속기 등 최신형 고성능 대형장비 운영·구축 비용 지원 확대에 434억원이 늘었다. 달탐사와 6G 통신, 한국형 도심항공교통(K-UAM)과 같은 모빌리티 등 차세대 기술에 188억원, 원전 안전성과 부품 경쟁력 강화 등을 위한 원천기술 투자에는 148억원을 순증했다.
야당에서는 R&D 지원 예산이 여전히 적은 수준이라는 비판도 나온다.
조승래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이날 토론자로 나와 "2023년은 대한민국 과학기술계의 깊은 상처로 남게 될 것"이라며 "다시는 권력이라는 이름의 선무당이 과학기술과 연구현장을 짓밟지 못하도록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야당이 상임위 심사 과정에서 전액 삭감했던 원전 관련 예산은 정부안대로 1814억원 전액 복원했다. 민주당이 전액 삭감했던 혁신형 소형모듈원자로(i-SMR) 기술 개발 사업을 비롯해 원전 첨단 제조기술 및 부품장비 개발, 원전 수출보증 등 예산 등이 이에 해당한다.
정부가 삭감했던 새만금 관련 예산은 입주기업과 민자 유치 지원을 위한 사업을 위주로 3000억원 증액했다.
정부안에는 지난 여름 '잼버리 사태' 여파로 대폭 삭감된 1479억원만 반영됐는데, 여야 합의에 따라 4479억원으로 늘었다.
구체적으로 고속도로(1133억원), 신항만(1190억원), 신공항(261억원), 지역간 연결도로(116억원), 핵심광물 비축기지(187억원) 등에 필요한 예산을 추가했다.
이른바 '이재명표 예산'으로 불리는 지역화폐(지역사랑상품권) 발행 지원을 위한 예산도 3000억원 새로 반영했다. 정부안에서 전액 삭감됐고, 이에 반발한 민주당이 7053억원 증액을 요구했는데, 이 중 42.5% 정도만 수용됐다.
출퇴근 시간 혼잡도가 높은 수도권 대중교통 이용 개선을 위해 관련 예산 118억원을 더 투입하기로 했다. 이를 통해 서울 4·7·9호선과 김포골드라인에 전동차를 추가 편성하고 광역버스도 하루에 91회를 증차하게 된다.
전세사기 피해자를 위한 주택융자 공급 규모도 1800억원 확대한다. 기존 정부안에 반영된 피해주택 매입 지원(5000호)과 함께 대부분의 피해자가 매입 또는 융자를 통한 지원을 받을 수 있다.
이외에 2520억원을 투입해 영세 소상공인을 대상으로 전기요금 인상분의 일부를 지원한다. 소상공인 금리 부담을 완화하기 위한 취약차주 대출이자 일부 감면 사업 예산도 3000억원 늘었다.
국방 분야에서는 보라매(KF-21) 전투기 양산과 레이저 대공무기 등 첨단전력 구축 사업에 2426억원을 신규 반영했다.
반대로 감액된 사업들을 보면 외교 분야 공적개발원조(ODA) 예산이 야당의 요청대로 2500억원 줄었다. 기획재정부 예비비(8000억원), 소상공인·자영업자 채무 지원(4300억원), 청년도약계좌 기여금 지원(1300억원) 예산도 깎였다.
또한 공군 차세대 전투기(F-X) 2차 사업 관련 예산 2300억원과 한국형 차기 구축함(KDDX) 예산 500억원도 줄었다.
내년도 예산안은 법정 시한(12월 2일)을 19일 넘겨 처리됐다. 국회 선진화법이 시행된 이후 최장 처리 기록인 지난해(12월24일)와 비교해 사흘 빨랐다.
내년 총선을 앞두고 2년 연속 늑장 처리 불명예를 우려한 거대 양당이 통과를 서둘렀다는 시각도 존재한다. 실제로 일부 의원들은 내년도 예산안이 '밀실 합의'를 통해 통과됐다고 불만을 표출하기도 했다.
장혜영 정의당 의원은 토론자로 나서 "국회는 무력했다. 민주당은 부자감세를 저지하기는커녕 더 많은 부자감세에 합의하고, 총지출을 늘리기는커녕 3000억원을 삭감하는 데 합의했다"며 "당초 정부안보다 더욱 긴축된 예산이라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비민주적 과정은 비민주적 결과를 낳을 뿐이다. 이런 예산으로는 기후, 민생, 미래, 약자 그 무엇도 지킬 수 없다"며 "밀실에서 이뤄진 이런 졸속적인 예산안 합의는 극히 소수 정치인의 과두적 합의일 뿐 국민의 합의가 될 수는 없다"고 비판했다.
정부는 오는 26일 국무회의에서 '2024년도 예산안의 국회 증액에 대한 동의 및 예산공고안'과 '2024년도 예산 배정계획안'을 상정해 의결할 예정이다.
추경호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재정이 아무리 어려워도 약자 보호와 미래 준비, 국민 안정과 같이 국가가 해야 할 일에 대한 투자를 소홀히 할 수는 없다"며 "필요한 재원은 손쉬운 국가채무 증가가 아닌 원점 재검토를 통한 재정지출 구조조정으로 어렵게 마련해 조달했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정부가 추구하고 있는 건전재정은 단순하게 지출을 줄이는 것이 아니고 국민의 세금이 낭비 없이 꼭 필요한 곳에 꼭 필요한 만큼 사용되도록 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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