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 노후 빈곤 보고서­­­­­, 산타는 없다’···작년 ‘개인 파산 신청자’ 48%가 노인 (추적 60분)

손봉석 기자 2023. 12. 21. 18: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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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일 오후 10시 KBS1에서 방송이 될 ‘추적 60분’ 1348회는 ‘2023 노후 빈곤 보고서­­­­­-산타는 없다’가 전파를 탄다.

‘추적 60분’은 연말을 맞아, 손주들이 오면 맛있는 밥 한 끼 차려주고 손에 용돈이라도 쥐여줄 수 있는 노후를 꿈꾸던, 한때는 평범했던 그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인생의 겨울에 놓인 이들에게도 산타가 찾아올까.

서울특별시 서초구의 서울회생법원 앞. 유시일 씨(71세)는 지팡이를 짚고 힘겹게 한 걸음 한 걸음 내딛는다. 엄숙할 것만 같은 상상과 달리 법정 앞은 시끌벅적하다. 오늘은 개인 파산 신청자들에게 파산 선고를 내리는 날. 어수선한 분위기 속 자신의 이름을 확인하곤 법정에 들어서는 유 씨. 법정 안, 선고를 기다리는 이들 대부분이 유 씨와 같은 노인이다. 실제로 지난해 전국 법원에 접수된 개인 파산 신청자 중 60세 이상의 노인 비율이 약 48%나 됐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노인 빈곤율이 가장 높은 우리나라의 현주소를 여실히 보여주는 수치다.

파산을 선고받은 유 씨가 집에 돌아와 가장 먼저 한 일은 산소호흡기 착용이다. 유 씨의 폐는 서서히 굳어가는 중으로, 약값만 한 달에 300만 원 이상이 필요하다. 돈을 벌어 약도 지어먹고 대출금도 갚고 싶지만, 몸이 따라주지 않는 상황이다. 유 씨의 걸음걸이가 불편했던 건 노화 때문만은 아니다. 바지를 걷어내자 드러난 의족. 유 씨는 30년 전 뺑소니 교통사고를 당해 왼다리를 잃었다. 이후 장애인협회 사업을 운영했지만, 사업은 좀처럼 잘 풀리지 않았다. 그때 진 빚을 지금까지도 갚지 못하고 있는 유 씨에겐 독촉 전화가 계속됐다고 한다. 하지만 그 누구도 원망하지 않는다는 유 씨는 파산 선고도, 이런 노후도 담담하게 받아들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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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난한 노인들에겐 아픈 것 또한 죄처럼 느껴진다. 탑골공원에서 만난 이한성 씨(가명, 73세)는 공원에 왔지만, 그저 우두커니 앉아 있다. 무릎이 아파 몇 걸음 못 걷는 탓이다. 기초생활수급자로 하루, 한 달 먹고 사는 것도 팍팍하다는 이 씨에게 동네 병원에선 오백만 원에 달하는 수술비를 요구했다. 상상보다 큰 액수에 놀란 이 씨는 ‘생계’를 위해 지원받는 생계급여를 모으기 시작했다고 한다. 제작진과 함께 찾은 대학병원. 수술 외에는 치료 방법이 없다는 의사의 말에 이 씨는 고개를 떨군다. 이 씨는 진료실에서 나와 지갑을 펼쳤다. 그 안엔 그동안 이 씨가 모은 92만 원이 빼곡히 들어 있다. 아픈 노인들이 돈 걱정 없이 병원을 갈 수는 없을까.

“노후가 이럴 줄 꿈에도 몰랐다” 제작진이 만난 노인들은 전부 이렇게 말했다. 노인들은 어쩌다 빈곤의 늪에 빠졌을까. 강유철(가명, 75세) 씨는 지난 6월 “안전하다”는 지인의 말을 믿고 평생 모은 돈 7천만 원에 대출까지 받아 1억 3천여만 원을 한 업체에 투자했다. 해당 업체가 다단계 사기를 벌였다는 것이 드러나는 데에는 한 달이 채 안 걸렸다.

잃은 건 노후 자금만이 아니다. 지하여도 온돌바닥에 몸을 기댈 수 있던 자신의 보금자리도 잃었다. 대출 이자를 내려면 이곳, 야산 속 농막으로 이사해야 했다. 천장과 벽엔 곰팡이가 슬어 원래 벽지가 무슨 색이었는지도 알기 어려울 지경. 강 씨는 사기 피해로 한순간에 이곳까지 오게 됐다. 강 씨는 자식들에게 손 벌리지 않고 노후를 지내려 한 게 잘못이었을까 자책한다고 한다.

노부모의 이런 마음을 이용해 고령층을 속이는 사기가 늘어나고 있다. 61세 이상 노인 대상 재산 범죄는 2017년 5만 7천여 건에서 2021년 7만 9천여 건으로 4년 만에 2만 건 이상 증가했다. 이에 대해 허준수 숭실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우리나라에 안정된 노후 소득 보장 제도가 없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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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노인들에게 “60세 정년”이란 말은 멀게만 느껴진다. 신호열 씨(가명, 72세)는 50년 넘게 일하고 있다. 소싯적엔 남부럽지 않게, 오히려 남들이 부러워할 정도로 잘 살았다는 신 씨. 한 달에 5천만 원도 벌게 해 주던 사업이 기울자, 신 씨는 갖고 있던 자산들을 팔아 대출금을 갚았다. 아직도 못 갚은 빚이 1억여 원으로 매달 이자만 300만 원이 넘는다. 연금으로는 감당을 할 수 없는 금액이기에 신 씨는 아파트 경비 일을 시작했다. 주민들이 갖다 놓은 분리수거를 정리하고 음식물 쓰레기를 치워야 하는 고된 업무지만, 신 씨는 “최고의 직장”이라 말한다.

추워진 겨울, 대한민국 노인들에겐 좀 더 혹독한 추위가 들이닥쳐 있었다. ‘2023 노후 빈곤 보고서, 산타는 없다’ 편은 22일 밤 10시에 방송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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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봉석 기자 paulsohn@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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