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바마폰으로 유명했던 블랙베리...'자동차'에 탑재되는 근황
스마트폰이 등장하기 전, 현재 애플 아이폰만큼 대중적인 인기를 얻었던 휴대폰이 있었어요.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 브래드피트 등 세계적인 배우들의 사랑을 받았던 제품이기도 했죠. 오바마 미국 전 대통령이 이 휴대폰에 “중독됐다”고 말해 화제를 모은 적도 있었고요.
바로 캐나다 기업 ‘블랙베리(Blackberry)’의 휴대폰입니다. 블랙베리 휴대폰은 당시 해외못지 않게 국내에서도 엄청난 인기를 끌었어요. 박지성, 윤종신, 카라 등 유명 연예인이 블랙베리를 사용했고 기사화되기도 했죠.
그러나 블랙베리는 더이상 휴대폰을 만들지 않습니다. 대신 휴대폰만큼 우리 일상 속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다른 분야에 더 주력하고 있는데요. 나름 큰 수입과 성과도 거두고 있다고 해요. 요즘 블랙베리가 추진하고 있는 사업은 무엇일까요.
독보적인 ‘정체성’…날개 돋친 듯 팔렸던 블랙베리
블랙베리가 처음 나온 1990년대는 일명 ‘삐삐’를 사용하던 시절이었어요. 현재 삐삐는 생소한 기기일 텐데요. 사용자가 연락받을 번호를 주면 상대방은 삐삐로 암호처럼 간단한 숫자 메시지를 전송할 수 있었어요. 그러나 받은 메시지에 답장은 할 수 없었죠.
이때 삐삐의 단점을 보완한 ‘블랙베리 850’가 출시됐고 점점 사람들의 입소문을 타기 시작했어요. 메시지 수신만 가능했던 기존 삐삐와 달리 블랙베리 850은 메시지를 발신할 수 있었죠. 블랙베리 850은 날개 돋친 듯 팔려 나갔고 많은 사랑을 받았습니다.
블랙베리 850이 사랑받은 이유는 비단 메시지 수⋅발신 때문은 아니었는데요. 검은색 딸기를 연상케 하면서 편리한 쿼티(QWERTY) 자판을 탑재했기 때문이었어요. 컴퓨터 자판과 동일한 쿼티 자판으로 많은 사용자가 능숙하게 이메일을 전송하며 기기를 사용할 수 있었죠. 게다가 블랙베리 휴대폰은 현재의 카카오톡처럼 자체 메신저까지 탑재했었다고 해요. 쿼티 자판과 메신저 등 독보적인 정체성으로 블랙베리는 흥행을 이어간 것이었죠.
블랙베리 850에 처음 탑재된 자체 운영체제 블랙베리OS(BlackberryOS)도 많은 사랑을 받았는데요. 캘린더, 메모, 알람 기능 등 기본적인 기능들에다가 당시 상상할 수 없을 만큼 수준 높은 보안 체계도 갖췄다고 해요. 무엇보다 블랙베리OS 전용 앱도 있었고요.
정체성을 확보하고 흥행에 성공한 블랙베리의 인기는 계속됐어요. 2008년에는 전 세계 스마트폰 시장 점유율 20%로 1위를 기록하기도 했죠. 특히 미국에서는 44.5%에 달할 정도로 큰 성공을 거뒀어요.
치고 올라오는 안드로이드와 애플에 뒤처지다
그러나 2007년 애플의 아이폰 발표로 블랙베리는 1위 자리를 내어줄 수밖에 없었습니다. 아이폰은 무선 전화기 기능에만 초점을 맞췄던 이전 휴대폰과 달리 전면 터치식으로 모든 기능을 사용할 수 있었어요. MP3 플레이어로 음악을 듣던 시대는 갔습니다. 스마트폰 하나만으로 음악을 듣고 앱을 다운로드 받는 시대가 열렸죠.
블랙베리의 휴대폰 시장 점유율은 짧은 시간 크게 요동치기 시작했습니다. 많은 사용자가 블랙베리가 아닌 아이폰을 선택했죠. 다양한 스마트폰의 개발과 출시로 블랙베리의 인기는 더욱 식어갔습니다. 시장조사업체 컨슈머인텔리전스리서치파트너스(Consumer Intelligence Research Partners) 보고서에 따르면 2009년 미국 스마트폰 시장 점유율 과반을 차지했던 블랙베리의 2013년 시장 점유율은 0.5%에도 못미칠 정도로 급속하게 하락했어요.
블랙베리가 경쟁력을 잃었던 원인으로 지목되는 것이 몇 가지 있습니다. 쿼티 자판과 블랙베리OS 등 블랙베리 고유 정체성을 포기하지 않아 폐쇄성은 높아졌고 발전도 더뎌졌죠. 한편 다양한 기능을 탑재한 구글과 애플의 운영체제는 날이 갈수록 큰 인기를 얻기 시작했고요. 구글이 무료 안드로이드 운영체제를 배포하면서 격차는 더 벌어졌습니다.
변화 꾀한 블랙베리…그래도 잇따른 실패
블랙베리는 자체 운영체제 대신 안드로이드로 변화를 꾀하고자 했어요. 2015년 출시된 블랙베리 프리브(PRIV)는 당시 구글의 마시멜로우 6.0 운영체제를 탑재했죠. 이후 2016년에는 안드로이드 7.1 누가를 탑재한 키원(KEYone)이 출시됐고요. 그러나 블랙베리의 예상과 다르게 두 기기는 소비자들의 큰 호응을 얻는 데 실패합니다.
결국 2016년 블랙베리는 자체 스마트폰 생산을 중단해요. 대신 중국 가전업체인 TCL과 손잡아 하드웨어 라이센싱 계약을 맺기로 결정합니다. 처음에는 스마트폰의 하드웨어는 TCL이, 소프트웨어는 블랙베리가 만들어 하나의 스마트폰을 제작하는 방식이었어요.
하지만 이렇다 할 성과를 보지 못하자 블랙베리는 TCL에 블랙베리 브랜드 사업을 넘기게 되죠. 2017년 TCL은 안드로이드 운영체제를 탑재한 블랙베리 모션(Motion)과 키투(KEY2)를 출시합니다. 하지만 시장의 반응은 차가웠고 이후에도 별다른 수익을 내지 못했죠. 결국 2020년 TCL은 블랙베리 스마트폰을 더 이상 생산하지 않겠다고 발표했어요.
2020년 블랙베리는 미국 스타트업 온워드모빌리티와 파트너십을 맺고 5G 스마트폰 출시 의사를 다시 밝혔는데요. 많은 팬이 해당 소식을 접하고 응원했지만 안타깝게도 2022년 프로젝트는 실패로 돌아갑니다. 결국 블랙베리는 스마트폰 사업에서 완전히 철수했죠.
블랙베리의 선견지명…’차량 소프트웨어’ 만들다
그렇다고 블랙베리에게 갈 곳이 없었던 것은 아니었습니다. TCL에 처음 위탁생산을 맡긴 후 블랙베리는 소프트웨어 시스템으로 사업을 확장해나가기 시작했던 것이죠.
블랙베리는 차량용 소프트웨어를 개발하기로 했어요. 차량에 여러 IT 기술을 탑재한 커넥티드카와 자율주행차의 발전으로 차량용 소프트웨어 시장 규모가 더욱 커질 것으로 판단했던 것인데요. 2010년 블랙베리는 미국의 하만 인터내셔널로부터 QNX 운영체제를 사들인 후 본격적으로 차량용 소프트웨어를 개발하기 시작합니다.
하만 인터내셔널이 보유했던 QNX 운영체제는 1980년대 초부터 개발된 PC용 운영체제예요. 공장자동화나 자동차 등 여러 분야에 널리 사용됐죠. 블랙베리는 해당 운영체제를 운전자 보조시스템(ADAS)과 인포테인먼트 시스템 등 차량에 필요한 다양한 소프트웨어를 제공하는 플랫폼으로 개발하고자 했어요. 해당 운영체제를 인수한 후에는 보안에도 주력하고자 했죠. 이를 위해서 2015년에 보안 기업 인수로 차량용 시스템 보안도 강화했습니다.
워치독, 인크립션, 앳호크 등 인수한 기업만 해도 여러 곳이었는데요. 2015년부터 시작된 보안 업체 인수는 계속해서 이어졌어요. 인공지능과 사이버 보안 전문 기업 사일런스도 2019년 140억 달러에 블랙베리에 인수됐죠. 블랙베리는 여러 보안기업 기술을 보안과 자율주행차량 소프트웨어에 접목하고자 했어요.
블랙베리의 예측대로 스마트카와 자율주행 차량 시장은 커져갔고 블랙베리는 2020년 아마존웹서비스와 협력으로 블랙베리 QNX 소프트웨어를 강화해나가기 시작했어요.
두 기업은 블랙베리 QNX를 활용해 지능형 자동차용 데이터 플랫폼 블랙베리 아이비(IVY)도 개발했습니다. 블랙베리 아이비는 자동차 제조업체를 위한 클라우드 커넥티드 소프트웨어를 지원했어요. 차량 센서 데이터처럼 필요한 여러 정보를 읽기 쉽게 설계된 플랫폼이었죠. 자동차 제조업체는 이를 통해 더욱 사용자에게 적합한 차량 서비스를 만들 수 있었습니다.
아마존웹서비스와 블랙베리의 협업 관계는 현재도 유지되고 있어요. 블랙베리 QNX를 더욱 지능형 시스템으로 개발하기 위해 동분서주하고 있죠. 현재 블랙베리 QNX 시스템은 BMW, 벤츠, 혼다, 도요타, 볼보 등 다양한 차량에 탑재되고 있습니다. 올해 6월 기준 전 세계 자동차 2억 3500만대에 해당 시스템이 탑재될 정도로 큰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고 해요.
올해 10월 개최된 ‘2023 대한민국 미래모빌리티엑스포(DIFA)’에서 블랙베리는 SDV 차량에 필요한 다양한 인포테인먼트 시스템과 기능을 소개하기도 했는데요. 블랙베리QNX는 쾌적한 음향 환경을 제공하는 여러 애플리케이션을 지원합니다. 주변 소음과 음성 정확도를 개선하는 QNX 하이퍼바이저가 있고요. 음성인식과 액티브 노이즈 캔슬링 기능을 구현하는 QNX AMP의 액티브 사운드 디자인 모듈도 지원된다고 해요.
휴대폰 OS를 만들던 블랙베리가 차량용 OS를 만들고 있는 근황, 어떻게 보셨나요? 시간이 꽤 흘렀지만, 블랙베리의 운영체제는 여전히 많은 사랑을 받고 있는 것 같습니다. 휴대폰으로 유명세를 떨쳤던 블랙베리는 과연 차량용 시스템 분야에서도 1위를 거머쥘 수 있을까요.
테크플러스 최현정 기자 (tech-plus@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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