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6년만에 재개된 국보법 위반 재판...1심만 13년째 진행 중
21일 오전 수원지법 형사11단독 302호 법정. 국가보안법 위반 등 혐의로 기소된 이모(60)씨 등 3명은 모두 두툼한 등산용 점퍼를 입고서 피고인석에 앉았다. 모두 굳은 표정이었다. 이들은 자신의 직업을 ‘노동자’라고 했다. 검사가 공소 사실을 읽자 이씨 등은 모두 눈을 감았다. 중간에 답답하다는 듯한 표정을 짓기도 했다.
이씨 등의 재판은 2017년 7월 이후 열리지 않다가 6년 만에 재개됐다. 검찰은 2011년 11월 이씨를 기소했는데, 12년이 넘도록 1심 결론이 나오지 않고 있다.
본지가 전주혜 국민의힘 의원실을 통해 입수한 이들의 공소장에 따르면, 검찰은 친북성향 단체인 ‘민주노동자 전국회의’의 간부 출신인 이씨를 이적행위, 이적표현물의 제작·소지·반포·취득 등을 저질렀다 보고 기소했다. 기소 당시 검찰은 국가보안법 7조 1항과 5항을 위반한 혐의를 적용했다. 2012년 12월엔 이씨와 공모한 혐의를 받는 전국회의 간부 출신 김모(49)씨와 백모(52)씨 등 3명을 추가 기소했다.
검찰에 따르면 이씨는 2006년 11월 민주노동자 전국회의 경기지부 조직원 A씨로부터 ‘사람중심의 철학’ ‘한국사회 성격론 : 식민지반자본주의론 연구’ ‘대중활동가론’ ‘또 하나의 투쟁’ 등 문서 4건을 이메일로 전달받은 혐의(이적표현물 취득‧소지)를 받는다. 이 문서들은 북한의 통치이념인 ‘김일성 주체사상’의 내용, 노동운동가들의 현장 활동 지침 등을 담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특히 ‘또 하나의 투쟁’ 문서는 우리나라를 ‘미 제국주의의 파쇼통치를 받는 식민지’로 규정하고, 국가보안법위반 혐의로 검거될 경우 수사, 재판, 수감 과정을 투쟁의 장으로 삼을 것을 선동하는 내용이라고 한다. 이씨는 이렇게 취득한 북한 관련 문서를 이메일로 다시 배포한 혐의(이적표현물 반포 혐의)도 있다.
이씨의 이적표현물 취득‧반포 행위는 계속 이어진 것으로 조사됐다. 이씨는 2009년 1월 민주노동자 전국회의 제26차 중앙위원회에 참석해 자료집을 취득했는데, 이 자료집은 북한의 대남혁명 3대 과제인 자주‧민주‧통일 노선을 전제로 우리나라에서의 반제계급투쟁 선동, 현 정부 타도 및 민중 집권‧연방제 통일 달성 등 이른바 ‘민족해방민중민주주의혁명(NLPDR)론’을 그대로 담고 있다고 한다. 또 그해 5월엔 이러한 친북 내용을 담고 있는 ‘2009 노동대학 자료집’을 직접 제작해 반포한 것으로 조사됐다.
이들은 재판을 받던 중인 2017년 6월 법원에 국가보안법 7조 1항과 5항에 대한 위헌법률심판 제청을 신청했다. 국가보안법 7조 1항은 ‘국가의 존립·안전이나 자유민주적 기본 질서를 위태롭게 한다는 정을 알면서 반국가단체나 그 구성원 또는 그 지령을 받은 자의 활동을 찬양·고무·선전 또는 이에 동조하거나 국가 변란을 선전·선동하는 자는 7년 이하의 징역에 처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또 7조 5항은 1항이 정한 행위를 할 목적으로 문서·도화 기타의 표현물을 제작·수입·복사·소지·운반·반포·판매 또는 취득할 경우 처벌할 수 있다고 정한다. 이씨 등은 위헌법률심판 제청을 신청하면서 “(해당 조항이) 헌법상 표현의 자유, 양심의 자유 등을 부당하게 침해하고 죄형법정주의에 위배된다”고 주장했다. 당시 이씨 등의 재판을 심리한 김도요 판사는 “국가보안법 7조 1‧5항의 위헌 여부가 재판의 전제이고, 위헌이라고 인정할 만한 상당한 이유가 있다”며 이들의 신청을 받아들였다. 해당 조항이 죄형법정주의와 명확성의 원칙, 과잉금지 원칙에 위배하여 표현의 자유와 양심의 자유를 침해한 것으로 볼 여지가 있다는 것이다. 이에 따라 이씨 등의 재판은 헌재 결정이 나올 때까지 정지됐다. 현행법에 따르면 법원이 위헌법률심판을 헌법재판소에 제청했을 때에는 헌재가 위헌 여부를 결정될 때까지 해당 재판이 정지된다.
헌재는 지난 9월 26일 국가보안법 7조 1항과 5항 중 이적 표현물 ‘제작·운반·반포’에 대해선 재판관 6(합헌) 대 3(위헌) 의견으로 합헌 결정했다. 다만, 5항 중 이적 표현물 소지·취득 부분에 대해선 4(합헌) 대 5(위헌)로 위헌 의견이 더 많았지만 위헌 결정 정족수인 6명에 1명이 모자라 합헌 결정이 났다. 검찰은 지난 10월 법원에 재판 재개를 신청했고, 법원은 이를 받아들였다.
이씨 등은 6년 5개월만에 열린 재판에서 혐의를 부인했다. 이들은 자신이 갖고 있던 문서에 대해 이적표현물이 아니라고 주장했다. 12년 전 기소될 때부터 이들이 유지한 입장이다.
이씨는 최후 진술에서 “이적표현물로 지목된 것은 책방에서 구한 것”이라며 “갖고 있었다는 사실만으로 국보법을 위반했다 생각하지 않는다”고 했다. 김씨는 “소지한 문서들이 이적표현물일 수 없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이모(56)씨는 “노동운동을 25년간 해오면서 어렵게 생활하는 노동자들을 자랑스럽게 생각했다”며 “갑자기 이적활동으로 매도하는 것에 대해 많은 감정이 든다”고 했다. 검찰은 이들에게 각각 징역 2년과 자격정지 2년을 구형했다.
이날 재판을 맡은 김수정 판사는 “오래 전 재판이라 기록 검토를 미처 다 하지 못한 상황”이라며, “추후 선고기일을 정하겠다”고 했다.
Copyright © 조선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마지막 여성 광복군’ 오희옥 애국지사 별세…향년 98세
- 野 ‘검찰 특경비 전액 삭감’에...법무부, 일부 사용 내역 제출
- ‘솜주먹’으로 279억 번 타이슨
- 개가 얼굴 물었는데 “잘못 없다”… 목줄 안한 견주 벌금 500만원
- 美 에너지 장관 된 ‘석유 재벌’... 친환경 정책 줄폐기 예고
- [만물상] 머스크식 ‘주80시간 근무’
- 야탑역 살인 예고범, 경찰·장갑차 출동비 수천만원 물어낼 판
- ‘李 위증교사’ 선고 앞둔 23일도 野 도심집회
- BTS 첫 제대 ‘진’... 3800명 아미 앞에서 솔로 쇼케이스
- ‘이강인 스승’ 하비에르 멕시코 감독, 관중이 던진 캔 맞아 출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