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예타면제 10조도 모자라 … 총선 표심 노리고 80조 남발
윤석열 정부의 건전재정 기조에도 불구하고 올해 들어 10월까지 예비타당성조사(예타)를 면제받은 사업 규모가 10조원을 넘기면서 정치권 포퓰리즘에 예타가 무력화되는 일이 반복되고 있다. 경제성 논란이 끊이지 않았던 달빛고속철도 사업도 결국 표심에 기댄 정치권의 선심성 행보에 예타 '허들'을 넘게 됐다. 달빛고속철도 사업은 2년 전 국토교통부 사전타당성조사에서 비용·편익(B/C) 수치가 0.483에 그쳤다. 일반적으로 B/C 수치가 1보다 커야 경제성이 있는 것으로 간주하는데, 달빛고속철도 사업은 절반에도 미치지 못했다.
이처럼 경제성이 보장되지 않는 상황에서 막대한 국민 세금이 투입되는 대규모 사업이 추진되는 것을 막는 것이 원래 예타 제도의 본질이다. 그러나 예타 면제로 지역 개발사업에 날개를 달아주면 표가 된다는 인식이 정치권에 팽배해 있는 점이 문제다.
20일 주호영 국민의힘 의원이 기획재정부에서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올해 1~10월 예타를 면제받은 사업 규모는 총 10조6000억원으로, 2년 전인 2021년 연간 면제 규모(10조5000억원)를 벌써 넘겼다. 지난해에는 총 17조2000억원에 달하는 사업들이 예타를 면제받았다.
국회에 따르면 올해 들어 특별법이 심사 중이거나 통과된 예타 면제 사업의 총 규모는 90조원에 육박한다. 달빛고속철도(최소 6조429억원)와 서울지하철 5호선 철도 김포 연장(3조원), 1호선 등 도심철도 지하화(45조2000억원), 수원 군공항 이전(20조원), 대구경북(TK)신공항 건설(민간·군공항 통합, 11조4000억원)이 포함됐다. 이 중 TK신공항은 특별법이 본회의까지 통과한 상태다.
예타는 국가 재정이 투입되는 대형 사업을 진행해도 좋을지를 미리 파악하기 위해 1999년 도입됐다. 국가재정법에 따르면 총 사업비가 500억원 이상이면서 국가 재정 지원이 300억원 이상인 사회간접자본(SOC) 건설·정보화·국가 연구개발(R&D) 사업은 예타를 받아야 한다.
하지만 예외도 있다. 법령상 의무 추진 사업, 지역균형발전을 위한 사업, 예타 필요성이나 실익이 낮은 사업, 국가 정책적 추진 사업 중 사업 계획이 구체화됐거나 국무회의를 거친 사업은 예타 없이도 착수가 가능하다. 예타 면제 여부는 기재부 재정사업평가위원회가 결정한다.
정치권은 면제 조건 중 법령상 의무 추진 사업에 집중하는 경우가 많았다. 여야가 국가 재정을 들여 특정 사업을 의무적으로 추진한다는 내용을 담은 특별법을 통과시키면 예타 면제가 가능했기 때문이다. 이 규정에 따라 발의된 특별법은 예타 면제 조항을 담은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가덕도신공항 건설 사업이 대표적인 사례다. 이 사업은 경제성이 낮다는 지적에도 불구하고 여야가 예타 면제 조항을 넣은 가덕도신공항 특별법을 통과시키면서 지난해 4월 예타가 면제됐다. 가덕도신공항 총 사업비는 13조원을 넘을 것으로 추산됐다.
김정식 연세대 경제학부 교수는 "국회의원은 재선 여부를 가장 중시하기 때문에 국가보다는 자신의 이익을 위해 입법권을 행사하기도 하는데, 예타 면제 특별법이 그 예"라고 꼬집었다.
표심을 겨냥한 예타 면제는 정권을 불문하고 이어져왔다. 기재부에 따르면 문재인 정부 5년간 예타 면제 사업 규모는 120조1000억원에 달했다. 박근혜 정부 때는 25조원 수준이었지만, 직전 이명박 정부에서는 총 61조1000억원의 사업들이 예타를 면제받았다.
무분별한 예타 면제로 향후 재정건전성 악화를 우려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여야는 SOC·R&D 사업의 예타 대상 기준을 총 사업비 1000억원, 국가 재정 지원 500억원으로 올리는 방안을 추진 중이다. 이 방안이 현실화하면 예타 면제 기준이 완화돼 정부 재정에 더 큰 구멍이 뚫릴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된다.
정치권에 의한 선심성 예타 면제를 막기 위해서는 정부가 예타 외 타당성 평가를 따로 진행해야 한다는 의견이 나온다. 특별법이 국회 문턱을 넘더라도 정부의 별도 심사 트랙을 거쳐야만 최종적으로 예타 면제를 받을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다.
추경호 경제부총리 겸 기재부 장관도 지난 10월 국정감사에서 "1차로 관계부처에서 사업 타당성을 먼저 보고 예산을 제출하는 중간 과정을 두려고 한다"고 설명했다.
[이희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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