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제노역 등 만행' 형제복지원 첫 배상…인정 근거는

김진아2 기자 2023. 12. 21. 17: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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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진화위 결정 이후 첫 사법 판결
국가 측 시효완성 주장 등 완전히 배척
피해자들 "인권유린 판시에 의미" 평가
내년 1월 선고 앞둔 사건들 영향 기대도
[서울=뉴시스] 과거 부랑인을 선도한다는 명목으로 강제노역과 학대를 자행했던 형제복지원 수용 피해자들에 대한 국가 배상을 인정하는 사법부 판단이 21일 나왔다. 사진은 형제복지원 피해자협의회 회원들이 지난해 10월14일 오후 서울 중구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진실화해위)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있는 모습. 2022.10.14. livertrent@newsis.com


[서울=뉴시스] 김진아 기자 = 과거 부랑인을 선도한다는 명목으로 강제노역과 학대를 자행했던 형제복지원 수용 피해자들에 대해 국가 배상을 인정하는 사법부 판단이 나왔다.

법원은 수용 근거가 됐던 박정희 정권 당시 훈령의 위법성을 지적하며, 국가 개입에 따른 불법행위로 피해를 본 26명에게 145억원에 달하는 위자료를 지급하라고 명시했다.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진실화해위)가 이 사건 피해를 공식적으로 인정한 이후 나온 첫 법원 판결에 피해자들이 고무적인 반응을 내놓으면서, 형제복지원 피해자들의 추가 재판에 대해서도 긍정적 영향을 미칠지 관심이 쏠린다.

진실화해위 인정 후 첫 판결…法, 소멸시효 주장 배척

부산 북구에 위치했던 형제복지원은 1975년 박정희 정권이 부랑인 단속 및 수용을 위해 제정한 내무부 훈령 410조에 의해 만들어진 시설이다.

형제복지원은 1960년부터 1992년까지 운영됐는데, 부산시와 '부랑인 수용보호 위탁계약'을 체결한 1975년부터 1986년까지 입소자는 총 3만8000여명에 달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사망자 수는 기존에 알려진 552명보다 10여명 늘어난 657명으로 집계됐다.

1987년 형제복지원의 만행이 처음으로 알려지면서 검찰은 박인근 원장을 특수감금 등 혐의를 적용해 기소했다. 하지만 대법원은 박 원장의 행위가 정부 훈령에 따른 부랑자 수용이었다며 특수감금 혐의에 대해 무죄를 선고했다.

2018년 4월 검찰 과거사위원회는 훈령의 위헌성을 지적하며 검찰에 사건 재조사를 권고했고, 문무일 당시 검찰총장이 비상 상고했지만 대법원은 이를 끝내 기각했다.

이후 지난해 8월 진실화해위가 형제복지원 사건을 '국가폭력에 따른 인권침해 사건'으로 인정하고 국가가 피해자와 유가족에게 공식 사과할 것을 권고했다.

이번 판결은 진실화해위 결정 이후 나온 첫 법원 판결이라는 의미가 크다.

법원은 이번 선고를 통해 하모씨 등 피해자 26명에게 국가가 총 145억8000만원의 위자료를 지급하라고 명시했다. 특히 복지원 운영 근거가 됐던 훈령의 위법성을 짚고, 이에 따른 강제수용 역시 불법행위라는 점을 판시했다.

재판부는 "이 사건 훈령은 법률유보 원칙, 명확성과 과잉금지 원칙, 적법절차와 영장주의 원칙에 위반하기에 위헌·위법하다"며 "훈령 발령 및 적용·집행에 이르는 일련의 국가작용은 전체적으로 공무원이 직무를 집행하며 주의 의무를 소홀히 해 직무행위에 대한 정당성이 상실됐다"고 짚었다.

특히 과거사 사건에 대해서 정부가 내세우는 주된 주장인 소멸시효 완성에 대해서는 성립이 불가하다는 점도 명시했다. 국가 개입으로 이뤄진 불법행위에 대해 소멸시효 완성을 주장하는 것은 신의성실 원칙에 어긋난다고 본 헌법재판소 등의 판단을 재차 상기한 것이다.

재판부는 "이 사건은 중대한 인권침해에 해당한다"며 "법리에 따라 손해배상 청구권에는 소멸시효가 적용되지 않기에 피고 측 주장은 이유 없다"고도 명시했다.
[서울=뉴시스] 백동현 기자 = 형제복지원 피해자협의회 회원들이 지난해 10월14일 오후 서울 중구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진실화해위)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형제복지원 피해자 진실화해위 결정문' 수령과 관련한 입장을 밝히고 있다. 2022.10.14. livertrent@newsis.com

피해자들 "법원 판결 환영"…남은 재판에 영향 기대도

판결 직후 이번 사건 원고들은 고무적인 반응을 내놓고 있다.

재판에 출석했던 원고 중 박모씨는 "지금이라도 사법부가 국가가 저지른 인권 유린 사건에 대해 이를 파헤쳤다는 데 큰 의미를 두고 싶다"고 했다. 또 다른 원고 이모씨는 이번 판결을 두고 "아픈 기억만 갖고 살던 우리에게 살아갈 바탕을 만들어 준 것"이라고 평가했다.

원고들은 이번 판결에 정부가 항소하지 말 것을 호소하기도 했다.

박씨는 "한동훈 법무부 장관은 인권 문제에 있어서는 진영논리가 있어서는 안 된다고 했다"며 "40년 전 고통에 비하면 아무 것도 아니지만 부디 정부가 항소하는 등 기다려야 하는 고통을 주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했다.

법조계에서는 이날 원고 측이 일부 승소하는 결과를 얻어내면서 진행 중인 다른 소송에 대해서도 영향을 미칠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현재 같은 법원 민사합의14부(부장판사 서보민)에서는 내년 1월31일 형제복지원 피해자들이 제기한 2건의 사건에 대해 각각 선고를 앞두고 있다.

특히 김모씨 등 13명이 제기한 국가배상 소송의 경우 형제복지원 관련 제기된 첫 소송으로, 소송 소가가 80억원 상당에 달한다.

이 사건은 법원이 국가에게 25억원 배상을 하라며 강제조정을 결정했음에도 법무부 측 이의제기로 조정이 결렬돼 다시 정식재판에 회부됐다.

박씨는 "오늘 선고가 소송을 제기한 원고 26명에 국한하지 않고 진실화해위 결정을 받은 이들, 또 아직 조사가 진행 중인 이들을 포함해 그들에게도 좋은 판결을 이끌어낼 수 있는 판결이라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공감언론 뉴시스 hummingbird@newsi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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