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경데스크] 되풀이되는 교육 정책 혼선

이호승 기자(jbravo@mk.co.kr) 2023. 12. 21. 17: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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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대 대한민국 정부가 내놓은 교육정책·대책이 박수받았던 적 있었나? 기억이 없다.

보수정권은 건전한 경쟁과 수월성 교육, 진보정권은 교육 공동체 회복과 아이들이 행복한 교육을 이상으로 내걸었지만 헛된 꿈에 불과했다.

"수능에서 킬러문항을 배제하세요." 시험 6개월 전 갑자기 떨어진 대통령의 오더(실제 지시는 연초 였다고 하나 몇 개월 차이에 불과하다)에 교육당국은 초비상이 걸렸다.

사교육이 날이 갈수록 번성하는 1차적인 이유는 부실한 공교육과 정권마다 널뛰기하는 입시·교육제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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킬러문항·사교육 카르텔 혁파
수능 6개월 전 밀어붙이기
역대급 불수능·사교육 '날개'
교육개혁은 멀고도 험한 길
우선 일관성이라도 유지하라

역대 대한민국 정부가 내놓은 교육정책·대책이 박수받았던 적 있었나? 기억이 없다.

보수정권은 건전한 경쟁과 수월성 교육, 진보정권은 교육 공동체 회복과 아이들이 행복한 교육을 이상으로 내걸었지만 헛된 꿈에 불과했다. 피 말리는 경쟁 속에 학생들을 내몰든지, 심각한 학력 저하를 불러오든지. 대부분 예상치 못한(혹은 알면서도 무시한) 부작용만 낳았다.

이번에도 어김없이 교육 참사가 되풀이됐다. '킬러문항 배제·사교육 카르텔 혁파' 말이다.

"수능에서 킬러문항을 배제하세요." 시험 6개월 전 갑자기 떨어진 대통령의 오더(실제 지시는 연초 였다고 하나 몇 개월 차이에 불과하다)에 교육당국은 초비상이 걸렸다. 준비가 안 됐으니 당연히 6월 모의평가에서 지침은 이행 안 됐다. 교육부 대입 담당 국장이 경질되고 한국교육과정평가원장은 물러났다. 그래도 정부는 킬러문항도 없애고 적정 난이도도 유지하겠다고 약속했다.

공교육만 착실히 받은 학생들이 무난히 풀 수 있는 문제가 출제됐을까. 올 수능은 역대급 불수능으로 평가받았다. 킬러문항을 없앴다지만 그에 준하는 준킬러 문항들이 빈자리를 가득 채웠다. '사교육 없이는 수능 고득점 받기 힘들다'는 인식은 재확인·강화됐다.

사교육 카르텔이 궤멸되고 학원 의존도는 낮아졌을까. 당국은 수능 출제 경력이 있는 교사들과 대형 사교육 업체 간의 유착 고리를 밝혀냈고, 관련 수사도 진행 중이다. 검은 커넥션을 잡아낸 것은 잘한 일이지만 거기까지였다.

사교육은 오히려 날개를 달았다. 수능 몇 개월 전에도 출제 방향이 얼마든지 뒤집힐 수 있다는 것, 그나마 결과물조차도 실망스러웠다는 것, 이 모든 과정을 지켜본 학생, 예비 수험생들은 더 큰 불안감과 혼란만 얻었다. 그들이 기댈 곳은 역시나 학원이다.

올 수능이 끝난 뒤 강남 학원가에서 만세 소리가 울려퍼졌다는 농담은 농담처럼 안 들린다. 만점자와 최고득점자 모두 강남의 유명 입시학원 출신이다. 월 수백만 원 입시학원과 컨설팅 업체는 이미 풀부킹이다. 의대 광풍으로 갈수록 늘어나는 N수생들이 향하는 곳 역시 대치동 학원가다. 이러나저러나 결국 승자는 사교육이다.

킬러문항 배제와 사교육 카르텔 혁파에 반대할 국민은 없을 것이다. 하지만 통치권자의 지시 하나에 준비 없이 밀어붙인 게 패착이다. 핀셋으로 집어내듯 킬러문항을 들어내고, 검찰 수사하듯 칼을 휘두르면 사교육 문제가 풀릴 것으로 본 발상은 너무 순진했다.

사교육이 날이 갈수록 번성하는 1차적인 이유는 부실한 공교육과 정권마다 널뛰기하는 입시·교육제도다. 학교에서 배운 것만으론 입시에 대비할 수 없고 언제 어떻게 바뀔지 모르는 입시는 막막하고 불안하니 사교육을 찾는 것이다. 일관성 있고 정권이 변하더라도 지속되는 교육제도가 필요한 이유다. 공교육이 안정돼 있고, 급변하는 제도에 대한 불안감만 없어도 사교육 의존은 어느 정도 줄어들 수 있다.

물론 더 근본적인 이유는 학벌 우선주의와 대학 서열화, 노동시장 이중구조다. 연간 26조원이 넘는 사교육비 부담은 저출산 위기로도 직결된다. 한국경제인협회는 얼마 전 발표한 보고서에서 사교육비 증가가 출산율 하락에 26.0%가량 영향을 미친다고 분석한 바 있다. 교육은 교육만의 이슈가 아니라 사회 전체의 문제다. 이런 어마어마한 작업은 10년, 20년 이상의 그랜드플랜을 그려 준비할 일이다. 교육개혁의 대업 완수가 당장 불가능하다면, 우선 입시제도가 조변석개하진 않는다는 믿음 하나라도 줘야 한다.

[이호승 콘텐츠기획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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