혹한에도 푸른 잔디, 겨울 골프 성지로
폭염 버티는 한국잔디 위에
추위 강한 라이그래스 식재
웰링턴·제주 테디밸리 등
덧파종 기법 골프장 늘어
"동래베네스트가 원래 양잔디 코스예요? 몇 달 전에는 한국잔디인 금잔디가 깔린 페어웨이에서 샷을 한 것 같은데."
최근 찾은 '남쪽 골프장' 동래베네스트GC 페어웨이는 한파에도 파랗게 물오른 양잔디 '라이그래스'가 깔려 있었다. 원래 이곳의 기본 잔디는 고려지. 이른바 금잔디로 불리는 한국잔디다. 당연히 이맘때에는 생장을 멈추고 잿빛으로 말라버린 잔디가 깔려 있어야 했다. 그런데 영하에 가까운 날씨에도 양잔디가 그 자리를 대체해 초록을 뽐내고 있었다.
김도진 지배인은 "잔디도 생물이고 종류마다 생장 시기, 환경 등 까다로운 조건을 만족시키지 못하면 건강하게 자라지 못한다"며 "최근 한국도 폭염, 폭우, 한파 등 예전과 다르게 자연환경이 변했다. 이에 각 계절에 맞는 최적의 코스를 만들기 위해 5년간 노력했고 '덧파종(Overseeding)' 기법을 완벽하게 안정화했다"고 설명했다.
마스터스가 열리는 오거스타 내셔널 골프클럽의 경우 봄여름에는 벤트그래스 코스로 운영하다 가을겨울에는 추위에 강한 라이그래스 코스로 탈바꿈한다. 하지만 동래베네스트GC처럼 한국잔디와 양잔디의 묘한 조합은 찾아보기 힘들다.
핵심은 기술력이다. 기존 잔디 위에 또 다른 잔디 씨앗을 뿌리기만 하면 될 것 같지만 5년 만에 두 가지 종류의 잔디가 완벽하게 공존하는 방법을 찾은 것은 이례적라고 평가받을 정도다.
고려지 코스에서 양잔디 코스로 바뀌는 시점은 10월. 일단 9월 말에 기존 잔디를 적정한 길이로 자르고 분석된 평균 기온을 고려해 라이그래스 씨앗을 뿌려야 한다. 이후 물을 주는 주기, 양, 비료 종류까지 최적의 조합을 찾는 작업이 바로 기술력이다. 또 덧파종한 라이그래스가 여름에 원래 코스의 장점을 해치지 않게 생육을 억제하는 것도 중요한 포인트다. 자칫 봄에 남아 있는 라이그래스 때문에 기존의 잔디 생육이 방해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든든한 지원군이 있어 가능했다. 삼성물산 리조트 부문 골프사업팀이 운영하는 잔디환경연구소는 신품종 잔디를 개발하고 한국프로축구 23개 축구장의 잔디 관리 컨설팅을 할 정도로 '잔디 박사'들만 모인 곳이다.
그들의 기술력에 사계절 푸른 잔디 골프장으로 변신했다. 살짝 공이 떠 있는 한국잔디와 공이 바닥에 달라붙어 찍어 쳐야 하는 양잔디 골프장을 한 코스에서 느낄 수 있는 점도 매력이다.
하지만 비용이 만만치 않다. 매년 덧파종을 위해 들어가는 라이그래스 씨앗, 비료, 관리비 등은 수천만 원을 훌쩍 넘는다. 그래도 그만큼 차별화를 줄 수 있어 회원제골프장의 가치를 증폭시킬 수 있다.
이러한 덧파종 기법은 미국 플로리다주 남부 지역의 명문 골프장에서 주로 사용한다. 국내에서는 웰링턴CC, 제주 테디밸리, 크라운, 중문CC등이 겨울에 라이그래스를 덧파종해 운영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덧파종 효과는 겨울의 초록 골프장뿐만이 아니다. 1월에도 다른 잔디에 비해 밀도가 4배나 높아져 골프를 위한 최적의 환경이 조성된다. 동래베네스트GC의 1월 예약률이 100%인 이유다.
급격한 기후변화로 인해 골프장들은 잔디 공부에 몰두하고 있다. 최근 국내 골프장들은 양잔디에서 한국잔디로 교체하는 곳이 늘고 있다. 여름에 폭염과 폭우 기간이 길어지며 양잔디가 버티지 못하고 녹아내리는 경우가 많아졌기 때문이다.
또 생육환경이 악화되며 병충해 관리 비용도 늘었다. 최근 몇 년 새 골프장 농약 사용량이 증가한 이유다. 이 때문에 제주 더 시에나, 아난티 CC 김녕 등은 기존 양잔디를 걷어내고 폭염에도 잘 버티는 '난지형 잔디'인 한국잔디로 교체했다. 또 양잔디 코스 관수 비용(물값)은 한국잔디 골프장에 비해 최대 10배까지 높다. 경제적인 측면에서도 한국잔디가 더 유리하다.
남부지방의 한 골프장 대표는 "겨울 최저기온을 체크하면서 장기적으로 코스 잔디를 중지로 교체하고 덧파종하는 것을 고려하고 있다"며 "각종 비용과 관리 문제 등을 따지면 덧파종에 들어가는 비용을 충분히 뽑고도 남을 수 있다. 또 겨울에도 푸른 잔디에서 골프를 친다는 점은 고객 유치에도 도움이 된다"고 설명했다.
[부산 조효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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