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위 환경 평가로 삽 뜬 개발 사업에 을숙도·노자산 생태 훼손됐다
무분별한 개발사업으로 자연환경이 망가지는 것을 막기 위한 환경영향평가제도가 환경 훼손을 막기는커녕 오히려 면죄부 구실을 한다는 비판이 거세다. 이런 움직임은 최근 환경영향평가서 허위 작성 혐의로 환경영향평가업체 대표와 연구원들이 유죄판결을 받은 부산 등 낙동강권역에서 두드러진다.
원종태 ‘노자산지키기 시민행동’ 대표는 21일 한겨레에 “경남 거제 노자산에 골프장 등을 건설하려는 거제남부관광단지 조성사업, 부산 낙동강하구 문화재보호구역을 관통하는 대저대교 건설사업 등 논란을 빚는 많은 사업이 거짓 환경영향평가만 아니었다면 시작하지도 못했을 것”이라며 “현행 환경영향평가제도를 전면적으로 뜯어고쳐야 한다”고 말했다. 앞서 ‘노자산지키기 시민행동’과 ‘습지와 새들의 친구’ 등 낙동강권역 환경단체들은 지난 18일 경남 창원 낙동강유역환경청 앞에서 현행 환경영향평가제도의 전면 개선을 요구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환경단체들은 내년 1월 말을 목표로 ‘환경영향평가 제도개선 전국연대’ 출범도 준비하고 있다. 낙동강권역과 제주도의 15개 환경단체가 모인 ‘환경영향평가 제도개선 전국연대 준비위원회’(전국연대)는 일단 개발사업자가 환경영향평가서 작성의 주체가 되는 현행 시스템을 개선하는 데 집중할 계획이다. 지금의 시스템은 개발사업자가 환경영향평가업체에 조사를 맡겨 환경영향평가서를 만든 뒤 지방환경청과 관할 지자체에 제출하는 방식인데, 이럴 경우 평가업체는 개발사업자가 원하는 방향으로 조사결과와 평가서를 내놓게 될 우려가 크기 때문이다.
환경단체들이 제시하는 대안은 평가의 비용은 개발사업자가 그대로 부담하되, 현장조사와 환경영향평가서 작성은 지방환경청 등 국가기관에 맡기는 방식이다. 환경단체들은 나아가 현장조사 과정에 시민단체 등 외부전문가 참여를 보장하고, 환경영향평가서 작성 이후 외부전문가가 참여하는 평가·검증 위원회를 운영할 것도 요구하고 있다.
환경단체들이 이런 요구를 전면에 내걸게 된 데는 최근 부산지법에서 있었던 재판 결과가 크게 영향을 미쳤다. 부산지법 형사12단독(판사 지현경)은 지난 14일 환경영향평가서와 평가기초자료를 허위 작성한 혐의(환경영향평가법 등 위반)로 재판에 넘겨진 환경영향평가업체 ㅎ연구소 대표에게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 ㅎ연구소에 벌금 1천만원을 선고했다. 대표의 지시를 받고 불법행위를 저지른 같은 연구소 연구원 3명은 벌금 400만~200만원을 선고받았다.
판결문을 보면, ㅎ연구소는 더 많은 용역사업을 진행해 경제적 이익을 얻고, 낙동강유역환경청 등 관계기관의 환경영향평가서 심사를 통과할 목적으로 2017년 2월21일부터 2019년 9월18일까지 2년7개월 동안 122차례에 걸쳐 환경영향평가서와 조사결과표를 거짓 작성했다. 이들은 주로 현장조사에 참여하지 않은 조사자를 마치 조사에 참여한 것처럼 현지조사표를 허위로 꾸미거나, 현장조사를 하지 않거나 일부만 하고도 제대로 한 것처럼 보고서를 조작하는 방법을 주로 썼다. 이 과정에서 차량통행권 등 조사 증빙자료를 조작하기도 했다.
무엇보다 큰 충격을 준 것은 이들이 민간사업은 물론 부산도시철도 건설사업, 부산·진해 경제자유구역 개발사업, 경남 마산로봇랜드 조성사업, 방사선의과학 일반산업단지 조성사업, 석유화학 복합시설 건설사업, 창원중앙역 역세권 종합개발사업, 을숙도 철새도래지 개선사업 등 정부나 지자체가 추진하는 사업도 가리지 않고 거짓·부실 환경영향평가서를 작성했다는 사실이었다. 이 사업들은 모두 환경영향평가 승인 절차를 무사히 통과하고, 현재 공사를 진행하거나 이미 완료한 상태다.
이 재판에 대해 전국연대는 “이번 환경평가서 작성 업체에 대한 유죄판결은 평가업체를 관리·감독하고, 평가서를 검토 후 동의해준 환경부와 낙동강유역환경청에 대한 유죄판결이자 지금의 환경영향평가제도 자체에 대한 유죄판결”이라고 논평했다.
최상원 기자 csw@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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