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구석구석마다 "사랑해♡"…낙서장 된 경복궁

이지현 기자, 최지은 기자 2023. 12. 21. 17: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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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서가 이렇게 많다는 건 몰랐어요. 국보급 문화재를 훼손하는 범죄는 강력한 처벌이 필요해요."

이날 여자친구와 함께 경복궁을 찾은 나모씨(25)는 "문화재가 훼손되면 복구 비용이 만만치 않을 텐데 걱정된다"며 "잘 보이지 않는 낙서도 엄한 처벌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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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일 오전 서울 종로구 경복궁 내부 벽면에 낙서가 쓰여 있다./사진= 이지현 기자


“낙서가 이렇게 많다는 건 몰랐어요. 국보급 문화재를 훼손하는 범죄는 강력한 처벌이 필요해요."

21일 오후 3시쯤 서울 종로구 경복궁에서 만난 50대 이모씨는 궁궐 곳곳에 쓰인 낙서들을 보고 놀란 표정으로 이같이 말했다. 그는 "한 명이 시작하니 또 누군가 따라 하는 것"이라며 "모방범죄가 더 나쁘다"고 덧붙였다.

지난 16일과 17일 경복궁 영추문 인근과 국립고궁박물관 벽면 등 3곳에 스프레이로 불법 영상 공유 사이트 등을 적은 이들이 경찰에 붙잡혔다. 낙서로 훼손된 범위는 44m에 달한다.

문화재청 등 관계기관은 낙서가 발견된 직후 문화유산 보존 처리 전문가 20여명을 꾸려 복구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당초 복구에는 일주일 이상이 소요될 것으로 점쳐졌으나 최근 영하권 날씨가 지속되면서 오는 25일까지 복구 작업이 중단돼 복구 작업 완료까지는 더 많은 시일이 걸릴 것으로 예상된다.

이 가운데 경복궁 내부에서도 수십여 개의 낙서가 발견됐다. 낙서는 사람이 많이 몰리는 경복궁 근정전과 사정전의 벽체와 기둥 등에 많았다. 돌로 만들어진 일부 굴뚝의 한쪽 면은 온통 낙서로 가득 찼다.

21일 서울 종로구 경복궁 내부에서도 수십여 개의 낙서가 발견됐다. 낙서는 사람이 많이 몰리는 경복궁 근정전과 사정전의 벽체와 기둥 등에 많았다. 돌로 만들어진 일부 굴뚝의 한쪽 면은 온통 낙서로 가득 찼다./사진=이지현 기자


낙서 크기는 2㎝부터 사람 손 한 뼘 크기까지 다양했다. 펜을 사용한 낙서가 대부분이었지만 손톱이나 뾰족한 물건으로 벽체나 돌판을 긁어 복구가 쉽지 않은 것들도 다수 발견됐다. 영어나 중국어 등 외국인이 한 것으로 추정되는 낙서들도 있었으나 대부분은 내국인 관광객이 한국어로 작성한 낙서였다. 낙서 중에는 욕설도 있었다.

시민들은 경복궁 내부에도 낙서가 있는 줄은 몰랐다는 반응을 보였다. 경복궁 내부 낙서를 본 직장인 이모씨(26)는 "욕설로 된 낙서를 보니 눈살이 찌푸려진다"며 "경복궁이 대국민 낙서장도 아니고 이렇게까지 하는 이유를 모르겠다"고 말했다.

이날 여자친구와 함께 경복궁을 찾은 나모씨(25)는 "문화재가 훼손되면 복구 비용이 만만치 않을 텐데 걱정된다"며 "잘 보이지 않는 낙서도 엄한 처벌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사람의 손이 닿지 않는 벽면에 신발 자국을 내거나 창호지 등을 훼손하는 경우도 있었다. 근정전 앞을 지키던 궁능유적본부 관계자는 "이런 작은 훼손들은 너무 많아 일일이 확인하는 게 쉽지 않다"며 "얼마 전에 교체한 걸로 아는데 또 훼손된 지는 몰랐다. 창호지는 1년에 한 번꼴로 바꾸며 관리하고 있다"고 말했다.

21일 오전 서울 경복궁 근정전 창호지가 훼손되어 있다. /사진= 이지현 기자


문화재보호법 제82조에 따르면 누구든지 지정문화재에 글씨 또는 그림 등을 쓰거나 그리거나 새기는 행위 등을 해서는 안 된다. 또 문화재청장이나 지방자치단체장은 훼손한 사람에게 훼손된 문화재의 원상 복구를 명할 수 있다.

문화재청 관계자는 "경복궁 내부의 작은 낙서들이 있다는 것을 파악하고는 있지만 현실적으로 모두 제거하기가 쉽지 않다"며 "CCTV(폐쇄회로TV) 추가 설치 등 문화재 훼손 방지 대책을 마련해 다음 주 중으로 발표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경찰 관계자도 "문화재 훼손 사건을 중대한 범죄로 보고 엄중하게 수사하겠다"고 밝혔다.

한편 서울 종로경찰서는 경복궁 담벼락을 훼손한 10대 임모군(17)과 20대 A씨에게 구속 영장을 신청했다. 임군과 함께 범행한 김모양(16)은 나이와 범행 가담 정도를 고려해 석방했다. 임군과 A씨에 대한 구속영장 실질심사는 오는 22일 서울중앙지법에서 실시될 예정이다.

이지현 기자 jihyunn@mt.co.kr 최지은 기자 choiji@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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