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콩카과로의 첫 걸음, 학교 뒷산을 뛰어 오르다
아콩카과 YB(재학생) 원정팀를 꾸린 건 올해 9월이었다. 원래 비행기 값부터 만만치 않게 비싸고, 재학생 시험 기간과 원정 기간이 겹쳐, 현실적으로 갈 수 없었다. 하지만 동아대산악회 18학번 조현세 선배를 중심으로 "재학생도 가자"는 목소리가 커졌다.
직항이 아닌, 경유 노선을 택해 저렴한 비행기편으로 원정비용을 줄이고, 시험기간을 피해서 재학생 원정대만의 일정을 잡아 YB원정팀이 꾸려졌다. 대원 모집 소식을 듣고 나와 동기인 21학번 이수지, 재학생 회장인 19학번 이호선 선배가 동참했다. 반가운 손님인 영남대 탐험대 18학번 문기빈 선배가 합류하면서 원정대가 만들어졌다. 조현세 선배를 대장으로 4명의 대원으로 구성되었다.
원정대가 처음 꾸려질 9월의 날씨는 쌀쌀하지 않았다. 가을이라고 하기엔 더운 날씨였다. 비행기를 예약하면서도 12월은 멀게만 느껴졌지만 공기가 점점 차가워졌다. 원정이 점점 다가오고 있었다. 12월 1일, 조현세 대장이 고소 적응 차 먼저 남미로 떠났다.
"진짜 시작이구나!"
한국에 남은 대원들은 동아리방에서 꾸준히 장비를 점검했다. 챙길 것이 많다보니 점검할 때마다 부족한 것들이 보였다. 꾸준하게 하지 않으면 뭐 하나는 꼭 빠뜨릴 것만 같다. 늦은 시간까지 점검을 마친 후 학교 뒷산인 승학산을 올랐다.
발이 시렵지 않으려 신는 신발이 따로 있다. 이것을 이중화라 부르는데 일반 중등산화보다 더 무겁고 딱딱했다. 걸을 때 불편하여 적응하려 계속 이중화를 신고 산을 올랐다. 처음에는 이중화를 신고 발을 디디면 내 발 같지가 않았다. 불편하고 어색해 그리 마음에 들지는 않지만 내 발을 동상으로부터 지켜줄 든든한 친구라 생각하기로 했다.
어두우니 앞서 간 대원이 헤드랜턴 불을 끄고 뒷사람이 오기를 기다렸다가 깜짝 놀래키는 장난을 서로 반복한다. 해가 지고 어두운 산길을 걸으면 바람 소리조차 소름 돋게 무서울 때가 있다. 주변이 잔잔하고 짙은 어둠에서 나밖에 없다고 생각했는데 누가 튀어나온다면 안 놀랄 수가 없었다. 장난과 아무 말을 주고받을 대원들과 함께하니 정상은 금방 도착했다.
혼자 산에 다니는 것도 나름 생각 정리하기 좋았고, 혼자만의 페이스로 갈 수 있어서 좋았다. 하지만 훈련차 무거운 배낭을 지고 혼자 걸으면 평소보다 배낭이 더 무겁게 느껴졌다. 침묵 속에서 오직 내 거친 숨소리만 들렸다. 산행 시간도 두 배가 되는 기분이다.
정상에 도착해 정상 부근에 텐트를 쳤다. 허기진 배를 전투식량으로 채우고 침낭을 덮고 누웠다. 정상부라 바람이 많이 불었다. 밖에서는 파도 같은 바람소리가 들리고, 텐트가 바람에 흔들려 시끄럽게 운다. 시끄러워서 도저히 잠을 잘 수 없었다.
"아콩카과는 여기보다 더 춥고 바람이 많이 불려나? 가서 잠을 잘 못자면 어쩌지?"
자다 깨다를 반복하다 보니 오만 잡생각이 들었다. 머릿 속이 시끄러워 도저히 잠을 잘 수가 없었다. 혼자 새벽에 일어나 화장실도 갈 겸 텐트에서 나와 깜깜한 길을 홀로 걸었다. 밤하늘을 보니 달빛이 환했다. 하늘에는 별빛이 반짝였다. 도시에선 도시 불빛에 가려져 있던 별빛이 고요한 산에 올라오니 보였다. 도시에서는 볼 수 없는 것들을 또 하나 발견했다는 뿌듯함을 느꼈다.
12월 6일, 졸업한 OB 선배 두 팀과 우리까지 세 팀의 원정대 남극 빈슨매시프에 도전하는 조벽래 선배는 이미 출국했다. 인터넷을 통해 올라오는 선배의 근황을 볼 때마다 흥미롭고, 사진 속 밝은 얼굴을 보니 마음이 놓였다.
남극으로 가려면 마젤란 해협과 맞닿아있는 푼타아레나스라는 도시로 가야한다. 푼타아레나스는 칠레 최남단 중심도시이자 남극으로 가는 첫 관문기지다. 선배님도 남극으로 가기 위해 푼타아레나스에 머무르고 있다.
'내일 아침 출발할 수 있으니 준비를 마치고 대기하라는 연락을 받았습니다. 마젤란 동상에서 조금 걸으면 육분의가 있고 그 뒤로 그의 이름을 딴 해협이 보입니다. 바람이 거세게 붑니다. 그 너머 어디엔가 남극 대륙이 있겠지요.'
선배가 적은 글과 사진을 보니 원정의 시작이라는 느낌이 들어 나 또한 설랬다. 설레는 마음 반대편에는 걱정도 크다. 원정을 도전하는 사람의 열정과 용기도 대단하지만 뒤에서 지지해주는 가족들의 걱정 또한 대단히 크다. 우리 엄마도 "응원한다"는 말만큼 "걱정된다"는 말을 많이 한다. 이런 엄마를 보면 '내가 괜히 욕심 부려서 가는 건 아닐까'하고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하지만 이런 마음에도 내가 원정을 포기 하지 않고 하는 걸보면 부모님께 좋은 딸은 못될 듯하다.
12월 11일, 나는 이번 원정에서 식량을 담당하게 되었다. 어디서 뭘 먹고, 얼마나 먹을 건지 계획했다. 준비하는 동안 원정보고서들을 읽었다. 보고서를 읽으면 그 속에 어디서 뭘 먹었는지 파악할 수 있기 때문이다. 동아대산악회 원정보고서를 읽으면 재미있는 요소가 많다. 반가운 선배님들의 얼굴이 많기 때문이다.
젊은 시절 선배님들 모습을 엿볼 수 있다. 마치 옛날 앨범을 꺼내 보는 기분이다. 보고서를 보면 이분들은 어떤 마음으로 가서 무슨 고생을 하고 왔을까하는 궁금증이 생긴다. 이런 궁금증들이 원정보고서의 큰 장점이라고 생각한다. 동아대 산악회에 입부하고 나서 선배님들의 원정을 보고 듣게 되면서 나또한 원정에 대한 궁금증이 생기고 자연스럽게 원정의 꿈을 가지게 되었다. 내가 그랬듯 원정에 대한 기록을 통해 다른 사람들이 원정을 조금이라도 느끼고 궁금증을 가지는 것이 다른 원정의 또 다른 시작점이 될 수도 있겠다 싶었다. 기록에 대한 의미가 중요하다는 걸 깨달았다.
식량을 준비하면서 처음엔 별거 없을 거라고 생각했지만 하나하나 입맛이 다른 대원들의 입맛을 고려하고, 원정 경험이 부족하다보니 식단을 정하는 것이 어려웠다. 결국 이리저리 힘을 많이 빼앗겼다. 훈련이든 식량준비든 부족한 나와 마주하게 될 때 이겨내기가 쉽지 않다.
호선이형(대학산악부는 남녀 상관없이 선배를 형이라 부르는 문화가 있다)과 둘이 학교 뒷산을 뛰어오르는 훈련을 했다. 나는 분명 뛰고 있는데 걷는 것과 별반 차이 없는 속도였다. 가파른 오르막을 뛰려니 진짜 죽을 맛이다. 뛰다가 걷는 걸 반복한다. 거의 마지막 구간에서 호선이형이 뒤에서 내가 멈추지 못하도록 내 등을 밀면서 뛰었다.
등을 미는 호선이형이 너무 미웠다. 숨이 넘어갈 듯이 힘들지만 멈추지도 못하고, 마음처럼 따라가지 못하는 내 몸뚱이가 밉고, 멈추지 못하게 하는 호선이형이 미워서 속에서 울컥했다. 그런데 아마 뒤에서 밀어주지 않았으면 끝까지 못 뛰고 중간에 포기했을 것이다. 정상까지 도착하자마자 밉다고 생각했던 게 조금 미안했다. <다음주에 계속>
글 사진 여정윤 부산 동아대산악회 아콩카과 원정대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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