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추가 승소한 강제동원 피해자에게도 일본 기업 대신 ‘제3자 변제’ 추진
수용하더라도 배상금 재원 마련이 관건
한국 기업 기부금에만 의존한 해법 한계
정부는 21일 일제 강제동원 피해자들에게 일본 기업이 손해 배상해야 한다는 2건의 대법원 확정판결이 나오자, 지난 3월 발표한 ‘제3자 변제안’에 따라 판결금과 지연이자를 지급하겠다고 밝혔다. 피해자와 유족들의 수용 여부도 미지수지만, 수용하더라도 이미 고갈된 것으로 알려진 배상금 재원 추가 마련이 관건이다. 추후 비슷한 소송 판결이 줄줄이 대기하고 있는 상황에서 한국 기업 기부금에만 의존한 정부 해법의 한계가 더 뚜렷해지고 있다.
임수석 외교부 대변인은 이날 정례브리핑에서 “오늘 판결에 대해서도 지난 3월 발표한 정부 입장에 따라 ‘일제강제동원피해자지원재단(재단)’이 원고들에게 판결금과 지연이자를 지급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제3자 변제안은 행정안전부 산하 재단이 한국 기업 등 민간 기여를 통해 재원을 마련, 배상 확정판결을 받은 피해자들에게 일본기업 대신 배상금과 지연이자를 지급하는 방식이다. 3월 발표 당시에는 2018년 대법원 판결에서 승소한 15명(원고 기준 14명)을 대상으로 했는데 이날 승소한 11명에 대해서도 이를 적용하겠다는 것이다.
임 대변인은 “재단과 함께 피해자와 유가족 한 분 한 분을 직접 뵙고 다양한 방식으로 정부 해법에 대해 충실히 설명드리고 이해를 구하는 진정성 있는 노력을 지속적으로 경주해 나가겠다”고 설명했다.
정부의 제3자 변제안을 피해자와 유족들이 수용할지는 미지수다. 제3자 변제안 발표 당시에도 가해자인 전범 기업의 배상 참여와 일본 정부의 사과가 포함되지 않았다는 점 때문에 반발이 거셌다. 결국 15명 중 4명은 제3자 변제를 여전히 거부하고 있다. 정부는 이들에 대한 배상금을 공탁하려 했으나 법원이 무더기 불수리 결정을 내려 제동이 걸린 상태다.
만약 정부 해법을 받아들인다고 해도 재원 마련이 쉽지 않을 전망이다. 이날 판결로 미쓰비시와 일본제철은 피해자 한 명당 1억~1억5000만원의 배상금과 지연손해금을 지급해야 한다.
일본 전범기업을 대상으로 한 한국 내 소송은 60여건으로 알려졌다. 이중 현재 대법원에 계류 중인 소송은 5건 정도다. 원고 측 변호인은 향후 남은 대법원 계류 사건의 승소 가능성을 높게 보고 있다. 남은 소송 결과도 제3자 변제 방식으로 해결하려면 상당한 재원이 필요한데 추가 출연이 요원하다. 당초 배상금 재원은 1965년 한·일 청구권협정의 수혜를 받은 포스코, 한국전력, KT 등 16개 한국 기업으로부터 기부금을 받아 충당한다는 계획이었다. 그러나 이미 40억원을 출연한 포스코 외에 상당수 기업들은 출연 계획이 없다고 밝혔다.
이와 관련해 외교부 당국자는 “재원은 민간의 자발적 기여에 바탕하고 있어 정부 차원에서 독촉할 수 없다”면서 “다만 정부 차원에서 다양한 방법을 논의하고 있다”고 말했다. 재원 마련이 요원한 상황에서 제3자 변제안이 일본 강제징용 해결법으로 지속 가능한지에 대한 의문이 커질 수밖에 없다.
일본은 이날 판결에 대해 “매우 유감이고 결코 받아들일 수 없다”면서도 한국 정부가 대응할 것이라고 공을 넘겼다.
일본 정부 대변인인 하야시 요시마사 관방장관은 이날 열린 정례 기자회견에서 3자 변제안을 언급하면서 “다른 (강제동원 피해자 관련) 소송도 원고 승소로 판결되면 한국의 재단이 지급할 예정이라는 취지를 표명한 것으로 안다”며 “이에 맞춰서 한국 정부가 대응해갈 것으로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날 나마즈 히로유키일본 외무성 아시아대양주 국장이 김장현 주일 한국대사관 정무공사를 초치해 항의했다. 교도통신에 따르면 소송 피고 기업인 일본제철과 미쓰비시중공업도 자신들에게는 배상 책임이 없다는 입장을 밝혔다.
결국 물컵의 반 잔을 먼저 채우면 일본이 남은 반 잔을 채울 것이라고 했던 정부의 기대와는 달리 계속 늘어나는 일본 기업의 배상금 부담만 우리 기업이 떠안게 됐다.
일본제철 사건을 대리한 임재성 변호사는 이날 기자회견에서 “정부는 우리가 먼저 문제를 풀어가면 일본이 사과든 기금 참여든 할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결국 제3자 변제 해법 9개월 후인 오늘, 일본 기업의 채무를 한국 정부가 감당해야 한다는 요구를 받았다”면서 “한국 외교가 얼마나 실패했는지 다시 한번 확인하는 시점”이라고 지적했다.
박은경 기자 yama@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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