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소민의 그.래.도] 미국 운디드니와 팔레스타인 가자
[김소민의 그.래.도][이스라엘-하마스 전쟁]
김소민 | 자유기고가
그날은 크리스마스 나흘 뒤였다. 1890년 아메리카 원주민 추장 ‘큰발’과 그를 따르는 200여명은 운디드니에서 미군에게 학살당했다. 눈밭에 방치된 주검은 뒤틀린 채 얼어버렸다. 이 원주민들은 ‘망령의 춤’ 때문에 연행됐다. “내년 봄이면 위대한 정령이 오시리라. 죽은 인디언은 모두 다시 살아나 젊은 사람같이 튼튼해지리라.” 미국 정부는 이 춤을 금지하고 ‘소요 주동자’ 리스트에 몇명 남지 않은 추장들의 이름을 올렸다. ‘큰발’도 그중 하나였다. ‘망령의 춤’은 원주민들이 기댈 수 있는 유일한 희망이었다.
1866년 샤이엔족 일부가 쫓겨났던 고향 땅으로 돌아왔다. “살든 죽든 이곳에 있겠다.” 전사 매부리코가 중심이었다. 미군은 매부리코와 남은 사람들을 죽였다. 귀향했던 원주민 중 일부는 아칸소 남부를 향해 다시 떠났지만, 미군은 이들도 죽였다. 코만치 추장 토사위는 셰리던 장군을 찾아가 자신을 가리키며 “좋은 인디언”이라고 했다. 셰리던 장군은 “내가 본 좋은 인디언은 다 죽었다”고 답했는데 이 말은 이후 “좋은 인디언은 죽은 인디언뿐이다”로 바뀌어 유행했다. 크리스토퍼 콜럼버스가 아메리카 대륙을 ‘발견’한 뒤 유럽 이주민들은 이 땅을 다스리는 것이 신의 뜻이자 “명백한 운명”이라고 했다. 그 명분 아래 아메리카 원주민 90%는 전염병과 학살로 사라졌다. 그렇게 원주민을 몰아내고 ‘정착민 식민지’는 완성됐다. (‘나를 운디드니에 묻어주오’, 디 브라운 지음, 길출판사)
“땅 없는 민족을 위한 민족 없는 땅.” 이 문구는 팔레스타인에 유대인 정착을 지지했던 영국 정치가들이 먼저 썼고, 이후 시온주의자들의 캐치프레이즈가 됐다. 그 땅은 이미 중동의 인구밀집 지역이었는데 말이다. 1948년 이스라엘은 팔레스타인 사람 75만명을 고향에서 쫓아냈다. 이후 불법점령지에서 팔레스타인 마을을 지우고 정착촌을 확장해왔다. 1967년, 1980년 유엔은 이스라엘이 불법점령지에서 철수할 것을 요구하는 결의안을 잇따라 내놨다. 이스라엘-팔레스타인 분쟁에 관한 유엔 결의안만 200건이 넘는다. 이스라엘과 미국은 이를 모두 무시했다.(‘팔레스타인 현대사’, 홍미정·마흐디 압둘 하디 지음, 서경문화사) 지난달에 이어 지난 13일 유엔 총회는 “가자지구 즉각 휴전”을 다시 결의했고 미국은 또 반대했다.
두달 전 이스라엘은 공격을 시작하며 가자 민간인들에게 남쪽으로 대피하라고 했다. 가자지구 남부 최대 도시 칸유니스의 인구는 원래 40만명인데 난민이 몰려 120만명으로 늘었다. 가자 인구 230만명 가운데 190만명이 난민이 됐다. 이스라엘은 남부에 폭탄을 퍼붓고 있다. 이들은 어디로 가야 하나? 두달 동안 팔레스타인 사람 1만9천여명이 숨졌다. 실종자는 포함하지 않은 수치다. 사망자의 70%는 여성과 어린이다. 부상자 5만명을 치료할 병원이 없다. 상하수도는 파괴됐다. 100만명이 굶고 있다. 감염병이 창궐한다. 이 와중에도 이스라엘은 불법점령지인 동예루살렘에서 정착촌을 확장하는 계획을 승인했다고 비정부기구 ‘피스나우’가 밝혔다.(한겨레 보도)
지난 4일 존 커비 백악관 국가안보회의 전략소통조정관은 이스라엘이 가자에서 벌이고 있는 군사작전을 두둔하며 “(이스라엘과 같은 입장이라면) 우리도 그렇게 행동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미국은 이미 아메리카 원주민들에게 ‘그렇게’ 했고 ‘성공’했다.
혹한이 몰아친 지난 16일 칼바람에 볼이 벌게진 500여명이 광화문에 모였다. ‘팔레스타인에 연대하는 사람들’이 연 집회다. 차미경 ‘아시아의 친구들’ 대표는 가자 주민 ‘임마누엘’에게서 받은 편지를 읽었다. “이 편지가 한국에서 낭독되는 순간, 저는 살아 있을까요? 이 글을 쓰는 게 무슨 소용이 있을까요?” 광화문에서 출발한 시위대는 명동 번화가로 들어섰다. 크리스마스 장식들 사이로, 팔레스타인 아이의 주검을 상징하는 흰 천으로 싸맨 인형을 안고 행진했다. 나는 놀랐다. 아무도 통행을, 장사를 방해한다고 시위대를 비난하지 않았다. 한 중년 남자는 시위대를 향해 손뼉을 쳤다. “프리(free) 프리 팔레스타인.” 지금은 19세기가 아니라 21세기, 가자는 홀로 ‘망령의 춤’을 추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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