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세희의 정치사기] 고구려 `을파소 길` 가는 한동훈의 정치 운명은?
고구려 고국천왕 13년 여름, 왕비 우씨의 친척인 어비류와 좌가려 등이 반란을 일으켰다. 왕이 이들의 비위를 적발하고 목을 베려하자, 무리를 모아 공격을 감행했다. 왕은 일당을 목베고 귀양 보내며 일단 급한 불을 껐다. 그러나 생전 처음으로 반란을 경험한 왕은 큰 충격을 받았다. 곧바로 충직한 인물을 추천하라는 명을 내렸다.
"근래의 일은 과인이 현명하지 못하여 일어난 것이다. 4부는 각기 현명하고 어질면서도 지위가 낮은 데 있는 자를 천거하라."
이에 4부가 함께 동부의 안류를 천거했다. 왕이 그를 불러 국정을 맡기려고 하자 안류는 다른 사람을 추천했다. 서압록곡 좌물촌에서 농사를 지으며 살고 있는 을파소라는 인물이다. 안류는 "대왕께서 만약 나라를 다스리고자 하신다면, 이 사람이 아니고서는 어렵다"고 강변했다.
을파소는 등장하자마자 파격적인 행보를 했다. 왕은 을파소를 중외대부에 임명하고 관작까지 더했지만, 그는 받지 않았다. 받은 관직이 국사를 다스리기에 부족하다고 여겨서다. 왕은 그 뜻을 알고 을파소에게 고구려 최고위 관직인 국상을 제수했다. 왕실의 친척들과 조정 신하들의 반발이 만만치 않았으나, 왕은 "귀천을 막론하고 국상을 따르지 않는 자는 멸족시키겠다"고 압박했다.
왕의 선택은 '신의 한수'였다. <삼국사기>는 을파소에 대해 "지극한 정성으로 나라를 받들고 정교(政敎)를 밝게 하고 상과 벌을 신중하게 하니, 인민이 편안하고 나라의 안과 밖이 무사했다"고 평했다. 재난이나 흉년이 든 해에 어려운 백성에게 나라의 곡식을 꾸어주던 '한국 최초의 복지제도' 역시 을파소가 재상으로 있을 때 시행됐다고 전해진다.
국민의힘은 내년 총선 운명을 한동훈 법무부 장관에게 맡겼다. 위기 상황에 구원투수로 등판한다는 점과 그 과정에서 여러 논쟁과 의견이 오간 것을 보면, 을파소가 국상에 임명되는 과정과도 비슷하다. 당내 비대위원장과 선대위원장 역할론을 두고 갑론을박이 지속되자 한 장관은 비토의사를 내비쳤고, 윤재옥 당 대표 권한대행 겸 원내대표가 의견수렴 절차를 거쳐 비대위원장 추대로 여론을 모아가자 직을 수락했다. 국민의힘 전국위원회는 오는 26일 비상대책위원회를 설치하고 한 장관을 비대위원장으로 공식 임명할 계획이다.
당내에서 '서울 6석' 분석이 나오는 등 위기감이 심화된 국민의힘에서 볼 땐 한 장관은 매력적인 인물이다. 윤석열 대통령의 최측근으로 '윤석열 아바타'라는 비판도 있지만 스타일 등에선 상반되는 점이 많아서다. 윤 대통령과 달리 술도 좋아하지 않고, 보스형보다는 관리형 리더십을 선호한다. 장관의 차 문을 대신 열거나 닫는 의전을 없애고, 단체 사진을 찍을 때면 가장자리에 서는 등 탈권위적 연출도 능하다. 오십을 갓 넘었지만, 외모와 패션 덕분에 '꼰대'보단 '젊은 오빠' 분위기를 보인다. 팬카페 회원수가 1만5000명이 넘고, 가는 곳마다 지지자들이 셀카를 요청할 정도로 인기도 많다. 최근에 나온 차기 대선 선호도 여론조사에선 야권 대선주자인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와 오차범위 내 접전을 보이기도 했다.
다만 앞에 쌓인 난제도 만만치 않다. '이준석 신당' 창당 디데이가 임박해 있고, 민주당은 '김건희 특검법'을 띄우면서 압박하고 있다. 좀처럼 오르지 않은 윤 대통령 지지율도 한 장관이 돌파해야 한다. 무엇보다 현재 여권 위기의 본질이라는 수직적 당정 관계를 어떻게 풀지가 최대 관심사다.
무엇보다 '정책적 책임론'도 피해갈 수 없다. 한국형 제시카법 도입, 이민청 설립, 법무행정 선진화 등 다양한 정책 드라이브를 걸다가 정치권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큰 성과 없이 말잔치에 끝났다는 비판도 피해갈 수 없다.
이같이 많은 난제들을 극복하고 성공적인 정치인으로 발돋음할지, '용두사미'로 끝날 지 두고 볼 일이다.
김세희기자 saehee0127@d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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