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관이 들여다본 '교복 학교 주관 구매 제도'의 문제점은?
"4대 브랜드 점유율 유지 정책도 원인…제도 구조적 문제 뚜렷"
(광주=뉴스1) 최성국 기자 = 지속적인 입찰담합 행위를 벌인 교복업자들이 벌금형을 선고받은 가운데 해당 사건을 면밀히 들여다본 법관이 '교복 학교 주관 구매 제도'에 대한 현실적 문제점을 지적해 교육당국의 제도적 보완이 요구되고 있다.
광주지법 형사7단독 전일호 부장판사는 21일 입찰방해, 독점규제 및 공정거래에 관한 법률 위반 혐의 등으로 기소된 교복업자 29명에게 벌금 300만원에서 최대 1200만원을 각각 선고했다.
이들은 2021년부터 올해초까지 3년간 광주지역 초·중·고등학교 147개교의 교복 구매 입찰에서 161억원 규모의 입찰담합 행위를 한 혐의로 기소됐다.
업체들은 학교별로 낙찰 예정업체를 자체 선정한 뒤 나라장터 교복 입찰에서 낙찰 예정자보다 높은 가격에 낙찰 희망가를 적어내는 식으로 관행적인 담합을 했다.
검찰은 교복업체 관계자들의 담합 방식을 크게 4가지로 구분했다.
교복 업체들이 이른바 '들러리 업체'를 입찰에 참여시켜 최저가로 낙찰 받는 방식, 업체 대표자가 가족들의 명의로 여러 사업자를 등록한 뒤 함께 입찰하는 방식, 학교의 교복선정위원회의 심사에 참여한 교복업체가 다른 업체의 제품이나 서비스가 좋지 않다고 지적해 부적격 탈락시키는 방식, 특정 업체만 생산할 수 있는 원단을 교복 사양으로 제시하는 '스펙 받기 방식'이다.
이날 선고를 받은 교복업체 관계자들은 대부분 첫번째나 두번째 방식으로 범행했다.
2015학년도부터 실시된 교복 학교 주관 구매 제도는 입찰 공고, 조달청, 나라장터 온라인 투찰, 학교 교복 선정위원회의 적격 심사, 최저가 낙찰 등의 순으로 이뤄진다.
재판부는 담합 자체는 범죄행위지만 이 과정에서 담합을 하지 않는다면 업체들이 고스란히 피해를 입을 수 있다는 우려도 내비쳤다.
전일호 부장판사는 "각 시도교육청은 교육부가 제시한 교복 권고가격을 바탕으로 자체적으로 교복비 상한가를 책정한다. 이 때 권고 가격과 소비자 물가 상승률을 고려하고 있다"며 "학생 수 감소에 따른 채산성 악화, 원자재 가격 상승 등 교복시장의 특수성과 최저임금 상승 등을 고려한 교복 업체들의 교복비 상한가 상승 요청은 직접 반영되지 않았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2015년부터 2022년까지 교육부 공급가격은 해마다 1%대 인상되거나 동결되는 데 그쳤다"면서 "해당 사건의 낙찰 담합 업체는 개별 학교가 공고한 기초 금액에서 최소 3%를 차감한 가격으로 수찰했다"고 덧붙였다.
전 판사는 "낮은 투찰가로 인해 손해를 보기는 하지만 업체는 보유하고 있는 해당 학교의 교복 원단 재고를 소진할 수 있고, 향후 적격심사에서 낙찰 실적을 인정받을 수 있기 때문"이라며 "입찰 담합을 한 업체라도 교육부의 권고 가격, 교육청의 상한 가격, 개별 학교의 기초 금액에 못 미치는 투찰이기에 낙찰가는 소비자 물가 상승률도 반영하지 못하는 수준"이라고 설명했다.
또 "고등학교의 경우 매년 12월에 신입생이 배정되고 3월부터 교복 착용이 이뤄지는데 신입생 배정일부터 입학일까지의 기간에 원단 발주, 교복 제작 등의 과정이 이뤄지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며 "교복업체는 낙찰자 결정 직후 재학생 수를 전체로 50~60%를 일반 치수로 선제작한다. 선주문한 치수와 실제 측정 치수가 달라 판매하지 못한 물량은 그대로 교복 업체의 손실이 돼 버린다"고 말했다.
재판부는 4대 브랜드를 제외한 광주지역 일반 교복업체들의 폐업 상황도 분석했다.
전 판사는 "4대 브랜드 교복 업체는 소속된 업체 대리점에 기존 점유율을 유지할 것을 압박하면서 우수 대리점에 대해선 저가 입찰에 따른 손실을 일부 보존해 주기도 했다"며 "4대 브랜드 본사의 매출, 점유율 유지 정책도 광주지역 일반 교복업체들의 폐업과 규모 축소에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고 강조했다.
이같은 상황에 지난해부터 진행된 입찰 담합은 교복업체들이 과도한 수익을 보장 받기보단 '과다경쟁으로 인한 손실'을 줄이려는 측면에서 이뤄졌다는 판단이다.
전일호 부장판사는 "교복업체들이 교복 판매가를 자율적으로 결정하거나 결정 과정에 참여할 방법이 없는 현 상황에서 피고인들의 입찰 담합으로 인한 중대한 사회적 폐해가 발생했다고 단정하기 어렵다"며 "피고인들에 대한 비난가능성은 크지만 교복 학교 주관 구매제도에 일부 구조적인 문제점이 있고, 이로 인해 피고인들이 범행에 이르게 된 점 등을 종합해 형을 정한다"고 말했다.
stare@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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