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도 박정희?’ 최악 불황에도 추모관 건립에 500억 더 쓰는 구미시

김현수 기자 2023. 12. 21. 16: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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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모관 좁다” 尹 발언에 건립 ‘급물살’
“막대한 혈세” 구미시 세금 낭비 논란
부정 여론 의식해 계획 비용 절반 줄여
경북 구미 상모사곡동 박정희대통령역사자료관. 경향신문 자료사진

경북 구미시가 박정희 전 대통령을 추모하는 숭모관 건립 사업에 500억원을 투입하기로 했다. 당초 사업비에서 절반 정도 줄인 규모지만, 이미 박 전 대통령 추모 시설이 많은 상황에서 ‘혈세 낭비’라는 지적을 피할 수 없을 것으로 보인다. 현재까지 구미시가 박 전 대통령 기념사업에 투입한 예산은 1200억원을 훌쩍 넘는다.

구미시가 지난 8월 발주한 ‘박정희 대통령 기념사업 추진 타당성 조사 및 기본계획 수립용역’에서 기념사업 관련 사업비를 500억원 가량 편성한 것으로 21일 확인됐다. 해당 용역에는 기념시설·광장·주차장의 규모와 관람객 동선, 기존시설 활성화 방안 등이 담겼다. 구미시는 용역 결과를 바탕으로 내년 하반기 실시설계에 들어갈 예정이다.

구미시는 지난 1월 “박 전 대통령을 기리고 추모객들에게 품격 있는 공간을 제공하기 위해 1000억원을 들여 숭모관 건립을 본격 추진한다”고 밝혔다. 박 전 대통령 생가와 붙어 있는 추모관이 너무 비좁다는 이유였다.

그로부터 한달 후 윤석열 대통령이 박 전 대통령 생가를 찾았다가 “추모관이 좁다”고 말하면서 숭모관 건립은 급물살을 타게 됐다. 박정희 숭모관 건립은 김장호 구미시장의 공약이기도 하다.

구미시가 원래 계획했던 숭모관 건립 비용을 절반 가량 줄인 것은 박 전 대통령 관련 기념시설에 대한 부정적 여론을 의식했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윤석열 대통령이 박정희 전 대통령 서거 43주기를 하루 앞둔 지난 10월25일 서울 동작구 국립서울현충원을 방문해 박 전 대통령 묘역을 참배하고 있다. 대통령실 제공

구미지역에는 박 전 대통령 기념사업으로 현재까지 1200억원 넘는 예산이 투입됐다. 박정희 추모관 등을 짓기 위한 생가 주변 공원화 사업비 312억원(2023년 실시계획 변경고시 기준), 새마을공원 건립비 907억원 등이다. 이들 시설의 인건비 등 운영비로도 매년 25억원 이상이 쓰인다.

숭모관 건립 추진 발표 이후 구미경실련은 “구미시는 고물가·고금리로 시민들이 힘든 시기에 난방비 보조금부터 챙겨야 한다”며 “굳이 하고 싶으면 주민투표로 결정하라”고 지적했다.

민족문제연구소 구미지회도 “박정희 체육관, 박정희 등굣길 등 관련 시설물이 차고 넘친다”며 “또다시 막대한 혈세를 들여 숭모관을 건립한다는 건 어처구니없는 계획”이라고 비판했다. 구미 YMCA도 숭모관 건립 반대 성명을 냈고 구미시 홈페이지에도 반대 게시물들이 올라왔다.

최악의 경기 불황 성적표를 받은 상황이어서 구미시의 세금 낭비 논란은 더욱 거세질 전망이다.

지난 10월 말까지 구미세관을 통과한 총수출액은 204억8900만달러로 지난해 같은 기간(249억1500만달러)보다 17.8% 줄었다. 올해 총수출액은 250억달러 문턱을 겨우 넘을 것으로 보여 최근 2년(2021·2022년)간 기록한 수출액 300억달러에도 한참 못 미친다.

경북 구미 상모사곡동 박정희대통령역사자료관 2층에서 관람객들이 전시물을 둘러보고 있다. 경향신문 자료사진

통계청이 발표한 올해 상반기 실업률에서도 구미시는 4.6%를 기록했다. 이는 전국 9개 도 154개 시·군 중 최고 수준이다. 고용위기 지역으로 지정된 경남 거제시(4.3%)보다도 높다. 구미상공회의소가 조사한 올해 4분기 구미산단 기업경기실사지수(BSI) 역시 기준치(100) 아래인 84로, 지난해 1분기(100) 이후 7분기 연속 기준치를 밑돌고 있다.

구미시 부채도 2019년 1854억원에서 2020년 2098억원으로 역대 최고를 기록했다. 2021년에는 2065억원으로 소폭 감소했지만, 여전히 예산 대비 채무 비율이 10.55%에 달한다.

박찬문 민족문제연구소 구미지회장은 “숭모관 건립은 일종의 정치쇼”라며 “계속 추진할 경우 시민들의 저항이 상당할 것”이라고 말했다.

구미시는 비판 여론 잠재우기에 애쓰고 있다. 앞서 새마을운동 테마공원 조성에 사용된 907억원은 박 전 대통령 기념사업이 아니라는 것이다. 숭모관이라는 명칭 대신 ‘미래교육관(가칭)’으로 변경하는 방안도 고려하고 있다.

구미시 관계자는 “동남아 등으로 수출되는 새마을 운동을 기념하기 위한 공원을 박 전 대통령 기념사업으로 보는 것은 무리가 있다”며 “새마을테마공원·생가·추모관 등을 연계하는 사업인 만큼 새로운 명칭을 검토 중”이라고 말했다.

김현수 기자 khs@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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