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중소기업협동조합 공동사업 활성화 법안' 국회 통과를 기대한다
지난 달 3일 유엔은 제47차 전체회의에서 2025년을 '세계협동조합의 해'로 지정하는 결의안을 채택했다. 자본 접근성, 자율성, 경쟁력 등에서 협동조합 성장과 설립에 도움이 되는 환경을 만들어야 한다고 권고하고 있다.
같은 시기 국내에서는 대·중소기업간 양극화를 해소하고 중소기업을 지원하기 위한 '중소기업협동조합법' 개정안이 여야 합의를 거쳐 국회 상임위 문턱을 넘었다. 개정안 골자는 협동조합(이하 협동조합)의 공동사업 추진 관련 소비자 이익침해 금지 단서의 소비자를 소비자기본법의 최종소비자로 명확히 한정하고, 소비자 이익침해 우려가 있는 조합의 기준을 시장점유율 50% 이상으로 구분한 것이었다. 현재는 구매대기업도 소비자로 볼 수 있다는 해석 때문에 조합은 납품가격 결정을 통한 판매사업을 추진하기가 어려웠다. 중소기업계는 개정안이 통과되면 그간 실효성이 낮았던 조합의 공동 판매사업이 활성화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예컨대 주택가구조합은 공동브랜드 부착 제품에 대해 조합이 결정한 판매가격을 조합사에 권장하는 형태의 공동판매 사업을 추진할 수 있게 된다. 펌프조합은 조합 단체표준 및 공동상표 인증제품에 대해 조합이 일정한 권장가격을 제시하되, 조합사는 설치비와 기대이윤 등을 감안하여 자율적으로 판매가격을 결정하는 방식의 공동판매 사업을 수행할 것으로 예상된다. 조합의 공동사업 허용범위를 넓혀 상대적으로 열악한 협동조합의 인적·물적자본의 한계를 극복하고 경쟁력을 강화할 수 있는 토대를 마련했다는 데 의의가 있다.
그러나 중소기업계의 기대에도 불구하고, 개정안이 법사위와 본회의를 통과하는 데까지는 진통이 예상된다. 중소기업간 협업 촉진, 협상력 강화를 두고, 무분별한 공급단가 인상의 신호탄으로 해석하는 우려 때문이다. 공정위는 조합의 시장점유율이나 최종소비자 기준과 관계없이 공동사업을 통해 개발한 제품에 대해 조합이 권장가격을 제시하거나 결정하는 행위는 조합사간 가격경쟁을 제한하는 담합에 해당한다는 부정적 견해를 보이고 있다.
개정안 통과 이후 이러한 공정위 우려가 현실화 될 가능성은 얼마나 될까? 현재도 중기부가 허가한 적격조합은 조합사를 대표해 경쟁입찰에 참여해 조합사의 제품이나 서비스에 대해 가격제시를 하고 있다. 하지만, 이들 조합 때문에 공공조달 물품 가격이 급격히 인상되었다는 소식은 듣기 어렵다. 오히려 인상단가를 납품가에 반영하지 못해 어려움을 겪는 조합 관련 뉴스를 찾는 것이 쉬울 것이다. 기본적으로 공기업이나 대기업으로부터 원료를 구매해 생산단계를 거쳐 정부 또는 대기업에 납품하는 조합은 가격결정권을 갖기 어려운 시장 구조다.
민간시장도 상황은 유사하다. 온라인과 오프라인 경계가 사라지고 급변하는 시장 환경에서 조합이 가격 협상이라는 전략을 이용해 시장을 교란하기란 불가능에 가깝다. 오히려 자금력을 갖춘 대기업의 계열화, 수직통합, 전략적 제휴 등에 대응하기에도 버거운 것이 현실이다.
조합이 가격을 정하고 이를 조합사 전체에 강제할 수 있다는 우려도 조합 운영원리에 대한 이해부족에서 비롯된 것이다. 조합은 가입과 탈퇴가 자유로운 사업체이며 결사체다. 조합사마다 상이한 가격경쟁력을 무시하고, 조합이 원칙없는 기준과 무리한 가격을 조합사에게 강요하여 불이익을 준다면 조합사의 이탈과 함께 조합의 생존마저 위협받게 될 것이다.
중소기업협동조합은 주식회사와 달리 중소기업의 경제적 지위 향상과 국민경제의 균형 발전을 도모하기 위한 비영리법인이다. 영리법인에 맞춰진 기준을 조합에 기계적으로 적용해서는 안 된다. 중소기업과 소상공인의 균형성장을 이루기 위해서는 조합의 지속적 성장이 필요하다. 법 개정이 조합의 공동사업을 촉진하고 조합을 발전시키는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
장승권 성공회대 교수(전 한국협동조합학회장) serijang@skh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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