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 ‘종노릇’ 발언에 2조 내놓은 은행···차주 간 형평성 시비는 불가피
윤석열 대통령의 지난 10월 ‘자영업자·소상공인이 은행의 종노릇을 하는 것 같다더라’는 은행의 ‘이자 장사’ 질타 발언은 은행권이 차주(대출받은 사람)에게 2조원을 되돌려주는 ‘민생금융 지원 방안’으로 이어졌다.
민생금융 지원은 은행이 고금리를 틈타 벌어들인 이익을 사회에 환원한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그러나 지원 대상이 자영업자에 편중돼 있다는 점, 정부가 은행에 2조원 헌납을 사실상 강요했다는 점 등에서 차주 간의 형평성 시비나 관치금융 논란은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야당을 중심으로 한 횡재세 도입요구도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김주현 금융위원장은 21일 서울 명동 은행회관에서 이복현 금융감독원장, 은행연합회, 은행장들과 개최한 ‘은행권 민생금융 지원 방안’ 간담회에서 “총 지원액 2조원은 지금까지 민생경제를 지원하기 위한 은행권의 사회적 기여에 있어 가장 큰 규모”라며 “여러 측면에 큰 의미가 있다”고 말했다.
국책은행을 제외한 18개 은행은 이날 자영업자·소상공인에 대한 이자 환급 1조6000억원을 포함한 2조원 규모의 민생금융 지원 방안을 발표했다. 이번 지원 방안은 윤 대통령이 ‘은행의 종노릇’을 언급하고, 곧이어 김 위원장이 지난달 금융지주 회장들을 만나 “국민이 체감할 수 있는 충분한 수준의 지원”을 주문한 데 따른 결과물이다.
김 위원장은 “금리도 많이 오르고 물가도 올라 (소상공인들에게) 필요한 지원이 굉장히 크다”며 “100% 만족은 절대 못 시키겠지만 내년 경기가 조금 더 괜찮아지고 금리도 조금 더 안정될 것이란 기대가 있으니 이 고비를 넘기는 데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번 지원 대상은 2023년 12월20일 이전 은행에 개인사업자 대출이 있는 소상공인·자영업자다. 소상공인·자영업자가 아닌 차주, 2금융권 대출이 있는 차주 등에겐 혜택이 돌아가지 않아 차주 간에 형평성 문제가 제기된다.
김 위원장은 “2금융권은 상황이 썩 좋지 않다”며 “(이번 방안은) 많은 자영업자가 어려운 가운데 이자를 냈는데 은행권이 그것으로 많은 이익을 냈다는 개념으로 접근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KB·신한·하나·우리금융지주의 올해 3분기 누적 당기순이익은 총 13조6049억원에 이른다.
정부가 자영업자·소상공인을 재정으로 지원하는 대신, 은행을 압박해 재원을 내놓게 했다는 점도 줄곧 ‘관치금융’의 하나로 지적된 부분이다. 당초 일부은행은 1000억원선에서 지원하겠다는 입장을 밝혔지만 금융당국은 그정도로는 부족하다는 분위기가 감지됐다.
김 위원장은 “은행권 같은 모델로 가긴 어렵지만 예산안에 3000억원 정도가 이자 차이 보전 예산으로 배정됐다”며 “(2금융권 차주 등의) 7% 이상 고금리를 저금리로 바꾸는 신용보증기금 프로그램의 대상과 혜택을 확대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라고 말했다.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은 이날 간담회에서 “2조원 지원 방안은 규모도 크지만, 고금리를 부담한 차주들에게 직접 이자를 환급함으로써 실제 체감도를 높일 수 있다는 점에서 의미가 매우 크다”고 말했다.
이번 지원 방안이 은행에 배임 소지가 있고, 은행의 주주 환원이 약화될 수 있다는 지적 등에 대해 이 원장은 “고객을 어렵게 하는 방식으로 돈을 벌어선 안 된다. 그건 중장기 주주 이익 관점에서도 바람직하지 않다”고 답했다.
다만 제2금융권을 이용중인 자영업자·소상공인은 별도의 이자 지원책을 이용할 수 있다고 정부가 밝혔다. 이날 국회 본회의에서는 2024년도 예산에 2금융권 자영업자·소상공인 차주의 금리부담 경감을 위한 3000억원의 예산이 반영됐다.
이에따라 제2금융권에서 5% 초과 7% 미만의 금리로 대출을 받은 자영업자와 소상공인은 납부한 이자 중 일부를 환급받을 수 있게 됐다. 제2금융권에서 7% 이상 금리를 이용하고 있는 자영업자·소상공인의 경우 저금리 대환프로그램을 이용해 최대 연 5.5% 이하 금리의 상품으로 갈아탈 수 있다. 금융위 관계자는 “언제 시행될 지, 어떻게 지원될 지 등 구체적인 지원방안은 향후 구성될 태스크포스(TF)에서 결정될 예정”이라고 말했다.
최희진 기자 daisy@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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