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한데 사랑스럽네···핀란드에서 온 로맨틱 코미디 ‘사랑은 낙엽을 타고’[리뷰]
2023년은 유독 은퇴를 번복한 거장이 많은 해였다. 일본의 미야자키 하야오는 <그대들은 어떻게 살 것인가>를 내놨고 영국의 켄 로치는 <나의 올드 오크>로 또 한 번 칸국제영화제를 찾았다. 칸의 레드카펫을 밟은 거장은 또 있었다. 핀란드의 거장 아키 카우리스마키는 6년 만의 신작이자 은퇴 번복작 <사랑은 낙엽을 타고>로 심사위원상을 거머쥐었다. 이 영화는 20일부터 한국 관객과 만나고 있다.
‘일단은’ 로맨틱 코미디 영화다. 주인공은 헬싱키에서 홀로 사는 마트노동자 ‘안사’(알마 포위스티)와 건설노동자 ‘홀라파’(주시 바타넨)이다. 단조로운 생활을 하며 살아가던 두 사람은 어느 날 노래주점에서 우연히 만난 뒤 서로를 의식하게 된다.
카우리스마키 감독의 작품을 처음 본 관객이라면 가장 먼저 당황스러움을 느낄 것이다. 배우들의 얼굴은 무표정함을 넘어 퉁명스럽다. 시큰둥한 표정으로 툭툭 내뱉는 대사는 늘 일정한 톤으로 유지된다. 빈티지한 색감의 화면과 등장인물들의 옷차림, 살림살이만 놓고 보면 1980년대가 배경일 것 같은데 벽에는 2024년 달력이 떡하니 걸려 있다. 시대 배경을 짐작하게 하는 단서는 딱 하나. 안사의 집 라디오에서 끊임없이 흘러나오는 러시아 전쟁 소식뿐이다. 이 시대의 불안은 러닝타임을 줄곧 지배한다.
불안은 안사와 홀라파의 일상에 조금씩 침투한다. 유통기한이 지난 식품을 배곯는 사람에게 나눠주다 발각된 안사는 일자리를 잃는다. 집에 돌아와 켠 라디오에선 미사일이 우크라이나 마리우폴의 어린이병원을 파괴했다는 뉴스가 나오고, 안사는 라디오 콘센트를 뽑아버린다. 홀라파는 음주 상태로 일하다 해고되어 갈 곳을 잃는다. 실직과 고독, 알코올 중독 같은 가난한 도시민의 암울함이 떠돈다.
이 고통 한가운데 사랑이 피어난다. 일반적인 로맨틱 코미디 영화가 주인공들을 사랑에 빠지게 하는 방식과는 딴판이지만, 이들의 이야기는 이상하게 따뜻하고 또 사랑스럽다. 배우들이 표정 변화도 없이 뻔뻔하게 내뱉는 대사에 관객의 입꼬리는 속수무책으로 올라간다.
카우리스마키 감독은 <천국의 그림자>(1986), <아리엘>(1988), <성냥공장 소녀>(1990) 등을 통해 노동자 계급의 소박한 이야기를 그려왔다. 노동자 계급에 대한 그의 애정은 이번 영화에서도 드러난다.
12세 이상 관람가. 러닝타임은 81분이다. 카우리스마키 감독은 어떤 영화도 90분을 넘겨선 안 된다는 신념을 가진 것으로 알려졌다.
최민지 기자 ming@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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