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객 ‘호갱’ 만드는 통신3사 독과점, 정부가 ‘결자해지’하라

김재섭 2023. 12. 21. 1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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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용산구 전자상가 내 3개 이동통신가입 대리점 앞 모습. 신소영 기자 viator@hani.co.kr

‘통신3사 콘크리트 독과점’ 구도 깨줄 ‘제4 이동통신 사업자’, 이번엔 등장할 수 있을까.

28㎓ 대역 5세대(5G) 이동통신 주파수 할당 신청이 마감됐다. 21일 과학기술정보통신부에 따르면, 세종텔레콤·스테이지엑스·마이모바일컨소시엄 등 3개 법인이 신청서를 접수해, 제4 이동통신 사업자에 도전장을 냈다.

세종텔레콤은 통신 3사 다음 규모의 기간통신사업자다. 무선 쪽에선 ‘스노우맨’이란 브랜드로 알뜰폰 사업을 하고 있다. 알뜰폰협회 회장사이기도 하다. 스테이지엑스는 카카오 계열 알뜰폰 사업자 스테이지파이브와 신한투자증권 등이 주주로 참여한 컨소시엄이다. 마이모바일은 미래모바일 주도로 꾸려진 컨소시엄이다.

과기정통부는 전파법과 전기통신사업법에 따라 이들을 대상으로 통신 사업자로서 결격 사유가 없는지 등을 심사한 뒤, 심사를 통과한 법인을 대상으로 주파수 할당 경매를 진행한다. 신청 법인의 적격 여부 심사는 최장 1개월 정도 걸린다.

‘찐’ 제4 이동통신 사업자 등장할까

세 신청 법인 모두 이동통신 시장에 대한 도전 의지가 크다. 이번에는 새 이동통신 사업자를 허가하겠다는 과기정통부 의지도 강하다. 부족한 부분에 대해서는 잣대를 낮춰주고, 사업계획 보완 기회를 주며, 추가 지원 방안을 보태서라도, 이번에는 어떻게든 제4 이동통신 사업자를 선정할 것이란 전망이 나오는 이유다.

물론 이들이 주파수를 할당받아 제4 이동통신 사업자 지위를 얻는다 하더라도, 기존 통신 3사(에스케이텔레콤(SKT)·케이티(KT)·엘지유플러스(LGU+))를 상대로 치열한 경쟁에 나서 독과점 구도를 무너트리고, 이동통신 품질 고도화와 가계통신비 부담 완화 효과를 내는 ‘메기’ 구실을 할 수 있을지는 아직은 점치기 어렵다. 적격 심사 과정에서 엄격히 검증돼야 할 포인트 중 하나다. 자칫 소비자 후생 증진 효과 없이, 정부가 ‘정책적으로 부양해야 할’, 또는 ‘황금알 낳는 거위’로 영위되는 통신시장에 숟가락을 들이미는 사업자가 느는 것에 그치는 상황은 막아야 한다.

우리나라 통신시장에선 30여년의 기간을 거쳐 ‘3사 독과점’ 구도가 형성됐고 또 굳어졌다. ‘콘크리트’ 내지 ‘철근 골조를 가진 콘크리트’란 수식어가 달리기도 할 정도다. 정부가 정책적으로 오랜 기간 공을 들여 3사 독과점 구도를 짜고 다져온데다, 4대 재벌 기업 가운데 두 곳이 ‘황금알 낳는 사업’으로 통신서비스 사업을 하고 있다.

‘통신3사’ 밑그림, 통신시장 개방 대응책으로 만들어져

이른바 ‘통신3사’ 독과점 체제 역사는 1990년대 초반 한-미 통신협상 때로 거슬러간다. 당시 미국 요구로 국내 통신시장을 개방할 수밖에 없게 되자, 과기정통부(당시는 체신부·정보통신부)는 대응책으로 ‘외국 통신사들이 몰려오기 전에 국내 기업들이 시장을 모두 개척해 나눠가질 수 있게 하자’는 취지의 방안을 마련했다.

정보통신부에서 통신시장 개방 정책을 총괄하던 당시 정홍식 정보통신정책실장은 기자와 만나 “국내 통신시장 대부분이 미개척지로 남아있어 외국 통신사들이 몰려올 가능성이 크다. 내부적으로 국내 기업들이 선점하게 만들어, 외국 사업자들이 한국 통신시장에 들어가봐야 먹을 게 없다고 여기에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실제로 이후 국내 통신시장은 세분화됐고, 각 역무(서비스)별로 3개 사업자가 경쟁하는 체제가 만들어졌다. ‘왜 3개 사업자 체제냐?’는 물음에 정 실장은 “시장 개척 단계에선 3개 사업자 체제가 담합도 하지 않고 치열하게 경쟁하고, 시장 성숙 단계에선 안정적인 업계 구도가 만들어진다”고 설명했다.

‘3개 종합 통신사 체제’란 최종 목표도 제시됐다. 1위 60%, 2위 30%, 3위 10% 식의 3개 종합통신사별 시장점유율 관리 목표 수치도 마련됐다. “이렇게 돼야 순위를 넘볼 수 없어, 시장이 안정적으로 관리될 수 있다.” 정 실장의 말이다.

“서비스 세분화·3개 사업자 경쟁…최종은 3개 종합통신사 구도”

유선 쪽은 시내·시외·국제전화 시장으로 나뉘고, 각 역무별로 3개(시내전화는 하나로통신을 출범시켜 2개) 사업자가 경쟁하는 구도가 짜여졌다. 한국통신·데이콤·온세통신이 경쟁했다. 제2 이동전화 사업자와 개인휴대전화(PCS) 사업자 허가를 통해 이동전화(지금은 이동통신) 시장도 경쟁체제가 도입됐다. 무선호출(삐삐), 발신전용휴대전화 등 과도·틈새 시장도 개척해 사업자를 선정했다.

피시에스 사업자는 애초 1개 기업만 허가될 예정이었다. 제1 이동전화(한국이동통신), 제2 이동전화(신세기통신), 피시에스(한국이동통신 민영화로 무선이 없는 한국통신에 허가) 등 3개 사업자 체제로 짜여질 것으로 전망됐다. 하지만 김영삼 정부가 들어선 뒤, 피시에스를 ‘이동통신과 다른 새로운 서비스’로 분류해 3개 업체에 허가하는 쪽으로 정책이 바뀌었다. 피시에스 사업자 허가 ‘흥행’을 위해 통신 장비 제조업체는 서비스 시장에 진입할 수 없도록 했던 칸막이까지 풀었다. 이동통신 시장은 ‘황금알 낳는 거위’란 전망이 난무하며, 삼성·현대·엘지 등 주요 재벌 기업들까지 사업권 경쟁에 뛰어들었다.

주요 재벌 회장까지 총출동하게 만들었던 피시에스 사업 허가는 결국 국민의 정부 들어 ‘피시에스 비리’ 청문회와 수사로 이어졌다. 정책 변경에 참여했거나 변경하도록 압력을 행사한 것으로 드러난 김영삼 정부 실세와 정보통신부 고위 공무원들이 줄줄이 사법 처리됐다.

이후 피시에스는 ‘주파수만 다른 이동전화’로 재분류됐다. 덩달아 이동전화 사업자가 5개로 늘어나며, 전례없이 치열한 가입자 유치 경쟁이 벌어졌다. 요금 인상은 꿈도 못꿨고, 단말기는 공짜로 뿌려지기 예사였다.

‘피시에스 비리’로 이동전화 사업자 5개…인수합병 통해 3개로

1위 사업자 에스케이텔레콤(당시는 한국이동통신) 주도로 ‘이런 상태로 두면 사업자들이 다 죽는다. 마케팅 경쟁 대신 통신품질 및 요금 경쟁으로 이어지게 해야 한다’는 여론이 일었고, 사업자간 인수합병이 이어졌다. 한국이동통신(011)이 신세기통신(017)을, 케이티에프(016)가 한솔텔레콤(018)을 각각 인수합병해 3사 체제로 전환됐다. 당시 제1 이동전화 사업자 한국이동통신이 제2 이동전화 사업자 신세기통신을 인수합병해 700㎒ 대역 주파수를 독식하고 시장점유율이 60%에 육박하는 등 시장이 왜곡되는 것에 대한 우려가 많았으나 인가됐다. 이 건은 지금도 공정거래위원회의 ‘오점’으로 남아있다.

또한 엘지텔레콤이 데이콤과 파워콤을, 에스케이텔레콤이 제2 시내전화 사업자 하나로통신을 인수해, 애초 정보통신부가 그렸던 3개 종합(유선+무선)통신사 구도가 비로소 만들어졌다.

때맞춰 정보통신부가 이른바 ‘관리 경쟁’에 나서며, 통신 3사 체제가 굳어지기 시작했다. 인가·신고 과정에서 보이지 않는 손을 통한 경쟁 관리가 이뤄졌다. 후발 사업자가 내놓은 파격적인 요금인하 방안을 정부가 막아서기도 했다. 공정위가 요금 담합 행위로 꼽아 해당 사업자들을 제재하기도 했다.

동시에 새 주파수 등 이동통신 서비스에 필요한 자원은 통신 3사에 집중됐고, 정부가 정치권과 소비자 쪽의 통신요금 인하 요구를 막아주기도 했다. 참여정부 시절 진대제 정보통신부 장관은 기자간담회 등의 자리에서 “요금을 내려봤자 가입자당 월 자장면 한그릇값밖에 안되지만 모으면 연간 수천억원 내지 수조원이 모여 전후방 산업 하나를 키워낼 수 있다”고 공공연히 말했다.

하지만 통신사들이 정부 덕에 요금을 안내려 추가로 얻은 이익을 설비투자(케펙스) 등에 쓰고 있는지는 점검되지 않았다. ‘정보통신부는 통신사 마케팅본부’ 내지 ‘정보통신부는 통신사 2중대’ 등의 비판이 제기됐지만, 아랑곳하지 않았다.

통신경쟁 정책 전문가들 “‘관리경쟁’ 정책부터 끝내라”

이 과정에서 이동통신 시장의 경쟁활성화 수단으로 기대를 모았던 알뜰폰 서비스가 통신 3사의 ‘입술’로 전락해, 통신사들의 이가 시리지(통신요금 인하 요구에 물타기) 않도록 하는 도구로 전락했다. 이동통신 3사도 알뜰폰 사업자를 자회사로 둘 수 있게 하고, 요금인하 요구를 받을 때마다 ‘알뜰폰을 통한 경쟁 활성화’를 앞세웠다. 정보통신정책연구원(KISDI)이 해마다 발표하는 ‘통신시장 경쟁상황 평가 보고서’에는 ‘독과점 체제로 경쟁 탄력성이 떨어진다’, ‘에스케이텔레콤의 시장지배력 여전’ 등의 평가가 빠지지 않았다.

2002년 한국통신 민영화 이후, 케이티가 주주 눈치를 핑계로 정부 ‘관리’를 벗어나기 시작하자, 에스케이텔레콤과 엘지유플러스는 케이티를 핑계로 ‘보이지 않는 손’ 카르텔에서 빠져나가려 했다. 그리고 얼마 안가 통신 3사 모두 “탈통신”을 외쳤고, 이동통신 3사의 28㎓ 대역 주파수 반납 사례에서도 보듯 정부가 통신 3사로부터 뒷통수를 맞는 상황으로 이어졌다. 통신 가입자들을 ‘호구’ 취급하는 게 아니냐는 반발이 뒤따랐다.

정보통신부가 외국 눈치를 보며 보이지 않게 ‘관리경쟁’ 정책을 펴던 시절, 정보통신정책연구원 출신의 한 대학교수(당시는 이름은 물론 키스디 출신이라는 사실까지도 숨겨달라고 요청)는 기자에게 “소비자 권익 증진에 초점을 맞춰야 할 정부의 통신경쟁정책이 ‘관리 경쟁’이란 함정에 빠져 사업자 이익을 먼저 챙겨주는 구도로 전락했다”며 “소비자 후생 차원에서 엄청난 부작용을 가져올 것”이라고 짚었다.

실제로 이후 단말기 유통법을 통한 단말기 지원금 관리, 통신 결합상품 출시, 과당 경쟁 방지 등 정부 정책과 통신사들의 마케팅이 맞물리며 통신3사 독과점 체제가 콘크리트처럼 굳어졌고, 소비자 후생은 갈수록 외면됐다. 언제부터인가는 정부조차 손을 쓰기 힘든 상황이 됐다. 정부 요청이 묵살되기 일쑤였다. 급기야 5세대 이동통신용으로 할당 받은 주파수 가운데 노른자위만 빼먹고 투자가 많이 드는 대역은 반납해버려, 정부가 통신사한테 뒷통수를 맞았다는 말까지 나오는 사태까지 빚어졌다.

정부가 뒤늦게 ‘메기’(제4 이동통신 사업자)를 투입시켜 독과점 구도를 깨겠다며 ‘블도저’ 자세로 나서고 있지만, 이미 여러 차례 무위로 끝났고, 이번에도 ‘찐 제4 이동통신 사업자’ 등장 가능성에 대해 반신반의 전망이 우세한 상황이다.

제4 이동통신 사업자 선정에 앞서 관리경쟁 정책부터 끝내라는 지적이 나오는 까닭이다. 찐 경쟁을 유도해, 통신 3사 중에 경쟁에서 밀려 주인이 바뀌는 상황이 발생해야 독과점 구도 폐해가 비로소 줄어들 수 있다는 것이다. 통신 3사 콘크리트 독과점 구도는 정부가 만들었다. 정부가 책임지고 해결해야 한다.

김재섭 선임기자 jskim@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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