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미숙의 집수다] 여의도 달구는 전세사기 피해자 '선구제 후회수' 방안
정부 "선례 없고 형평 어긋나" 신중…총선 앞두고 '뜨거운 감자'
전문가 "최우선변제금 등 재정 지원시 회수 쉽지않아…사회적 합의 필요"
(서울=연합뉴스) 서미숙 기자 = 전세사기 피해자 지원을 위한 특별법 개정이 추진 중인 가운데 '선(先)구제·후(後)회수' 지원 여부를 놓고 정부와 야당이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다.
야당이 요구하는 선구제 후회수(선구제 후구상권 청구) 방안은 피해자에 대한 실질적인 지원 효과를 제고하기 위해 전세보증금 피해액을 정부가 먼저 보상해주고, 추후 경매 등을 통해 정부가 회수하라는 것이다.
이에 대해 정부는 사인 간 계약에서 발생한 손실을 정부가 구제하는 것은 전례 없는 일이며, 다른 사기 피해자들과의 형평성 문제 등을 들어 신중을 기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내년 총선을 앞두고 선구제 후회수 지원이 '뜨거운 감자'로 떠올랐다.
야당 "선구제 후회수 도입 필요…직권 처리도 검토"
지난 18일 국회 소통관에서는 전세사기 피해자들과 야4당(더불어민주당·정의당·진보당·기본소득당)이 기자회견을 열고 정부의 선구제 후회수 지원 도입을 촉구했다.
전세사기 피해가 발생한 것은 현재의 부동산 제도 때문으로, 결국 책임이 있는 정부가 우선 피해를 보상해줘야 한다는 것이다.
전세사기피해자전국대책위원회는 21일에도 국회에서 전세사기 피해 대책 마련을 촉구하는 시위를 했다.
야당과 전세사기 피해자들이 지난 6월 전세사기 특별법 제정 당시 도입하지 않기로 했던 선구제 후회수 방식을 다시 강하게 요구하는 것은 정부의 현행 지원책이 효과가 떨어진다고 보기 때문이다.
정부의 지원책은 피해 주택 경공매 시 임차인에게 우선매수권을 부여하고, 우선매수권을 LH에 양도하면 공공임대 주택을 제공하는 등 임차인 주거안정을 위한 간접 지원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최우선변제금을 받지 못하는 임차인에 대해서는 무이자 대출을 지원하고 저리의 주택 구입자금 대출, 전세대출 최장 20년 분할 상환, 경공매 대행과 비용 등도 지원한다.
그러나 이러한 다양한 지원책에도 임차인이 경매 권리관계에서 후순위인 경우 보증금 손실을 막을 수가 없다.
이 때문에 야당은 정부가 피해 보증금을 먼저 보전(선구제)해주고, 추후 정부 또는 공공기관이 경매와 임대인에 대한 구상권 청구 등의 방식으로 피해액을 회수(후회수) 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6개월 주기인 전세사기 특별법 개정 시점과 내년 총선이 맞물리면서 현재 국회에서는 이 문제를 둘러싼 논란이 점점 거세지는 양상이다.
일단 이날 국토교통위원회 법안심사소위원회에서는 특별법 개정안을 둘러싼 정부와 야당의 격론이 예상된다.
야당은 정부와의 이견이 좁혀지지 않으면 국토위 전체회의에 해당 법안을 직권 상정해 처리하는 방안도 검토 중이다.
민주당 이재명 대표는 지난 13일 부산 전세사기 피해자들을 만난 자리에서 "특별법 개정의 핵심은 '선구제 후회수'가 돼야 한다"고 강조하며 당 차원의 대응을 시사했다.
선구제 재정 '수천억∼4조' 전망…경매전문가 "채권회수 쉽지 않을듯"
그렇다면 '선구제' 예산은 얼마나 필요할까.
현재 야당이 요구하는 선구제 후회수 방식은 피해자들의 전세보증금 반환 채권을 정부 기관이 전액 또는 절반가량 인수해달라는 것부터 최우선변제금 만큼 보전해달라는 요구까지 다양하다.
한국도시연구원의 실태조사에 따르면 피해자들의 보증금 평균액은 1억3천만원이며, 현재 피해자로 인정된 임차인은 약 1만명에 달한다.
앞으로 피해자들이 최대 3만명까지 늘어난다고 가정할 경우 보증금 전액을 정부가 보전하면 약 4조원, 이 가운데 절반을 지원하면 2조원의 막대한 재원이 필요하다.
야당이 절충안 형태로 내놓은 것은 '최우선변제금 상당액 지원'이다.
인천 미추홀구 '건축왕' 피해 사례처럼 경매에서 최우선변제금조차 받지 못하는 피해자들에 대해 정부 예산으로 '현실화된' 최우선변제금을 지원해주자는 것이다.
최우선변제금은 세입자의 집이 경매나 공매로 넘어갈 경우 법에서 정한 기준 보증금액 이하의 소액 임차인에 한해 은행 등 선순위 채권자보다 세입자에게 먼저 배당하는 돈이다.
정부는 현재 최우선변제금을 못받는 피해자에 대해 최장 10년간 무이자 대출을 해주고 있지만, 피해자들은 '빚에 빚을 더하는 격'이라며 근본적인 대책이 못된다고 주장한다.
야당은 최우선변제금 상당액을 최초 근저당 설정 시점의 금액이 아닌 올해 2월 상향된 액수를 요구하고 있다.
전세사기 피해가 컸던 인천의 경우 2018년 9월 이전에 1순위 근저당권이 설정됐다면 임차인은 2천700만원(보증금 8천만원 이하)의 최우선변제금을 받는 게 원칙이나, 올해 2월 개정된 기준을 적용해 4천800만원(보증금 1억4천500만원 이하)을 지원하자는 것이다.
올해 바뀐 서울의 최우선변제금은 5천500만원, 인천을 포함한 수도권 과밀억제권역은 4천800만원, 광역시는 2천800만원, 기타 지역은 2천500만원이다.
현재 인천 미추홀구의 경우 전세사기 피해자 중 최우선변제금을 받지 못하는 임차인은 약 30%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만약 전체 피해 예상인원 3만명 중 30%인 9천명이 최우선변제금을 못받는 임차인이고, 지원할 최우선변제금 상당액이 평균 4천500만원이라고 가정하면 최소 4천억원가량의 재정이 필요하다.
선구제 대상을 경매에서 최우선변제금을 받을 수 있는 임차인으로 확대해 상향된 금액과의 차액을 보전해줄 경우 재정 투입액은 이보다 훨씬 늘어난다.
경매 전문가들은 그러나 이렇게 투입된 재정은 사실상 회수가 쉽지 않을 것으로 보고 있다.
현재 인천지역 전세사기 주택의 경매 낙찰가율은 감정가의 50∼60% 선이다.
임차인 피해가 큰 전세사기 주택의 상당수는 선순위 근저당권자의 채권액이 감정가의 절반 이상으로, 경매 낙찰금액이 채권 설정액보다 낮은 경우가 많다는 게 경매 업계의 설명이다. 이 경우 후순위 임차인에게 돌아갈 몫은 없다.
인천의 한 전세사기 아파트는 지난달 3회차 입찰에서 감정가(2억3천200만원)의 51.7%인 1억1천999만9천999원에 낙찰됐는데, 채권액 1억2천만원을 신고한 대부업체가 낙찰대금 전액을 가져가고, 보증금 8천500만원에 전세를 든 임차인은 소액임차인 보호 범위를 벗어나 한 푼도 배당받지 못했다.
지지옥션 이주현 선임연구원은 "경매 낙찰가율이 최소 80∼90% 이상은 올라야 후순위 임차인의 보증금 일부 회수가 가능할 것으로 보이는데, 전세사기 대상 빌라나 나홀로 아파트 등은 평균 낙찰가율이 낮아서 경매 배당을 통한 선구제 후회수는 기대하기 어려워 보인다"고 말했다.
주택도시보증공사(HUG)의 임대보증금반환보증도 HUG가 먼저 피해자에게 대위변제를 해주고, 주택을 경매에 넘겨 2∼3년에 걸쳐 비용을 환수하는 선구제 후회수 방식이다.
이 경우는 임차인이 선순위여서 시간이 걸려도 보증금 회수가 가능하다. 현재 문제가 되는 임차인이 후순위인 피해 사례들과 상황이 다르다.
한국토지주택공사(LH)처럼 우선매수권을 양도받아 임차인의 주택을 모두 낙찰받기 위해서는 선구제 비용(최우선변제금 지원) 외에 경매 낙찰을 위한 낙찰대금이 추가로 투입돼야 한다.
전문가 "정부 지원사례 없어…악용 우려" vs "실질 지원 검토해야"
선구제 후회수 방식을 놓고 전문가들의 의견은 엇갈린다.
일단 사인 간 계약에 정부가 피해를 보상해준 적이 없고, 과거 역전세난 피해자나 전세사기 외 다른 피해자들에 대한 형평성 문제가 있어 바람직하지 않다는 견해가 많다.
과거 2011년 두 차례에 걸쳐 단행된 정부의 저축은행 구조조정으로 당시 16개 저축은행이 영업정지되면서 정부 보호 대상이 아닌 5천만원 초과 예금자 보호 문제가 사회 문제로 떠올랐으나, 당시에도 자기투자 책임원칙, 도덕적 해이 등을 이유로 정부의 직접 지원은 이뤄지지 않았다.
또 다단계나 주가조작 등에 따른 피해자는 물론이고, 분양 및 조합주택 사기 등 부동산 관련 피해자들에게도 정부가 직접 피해액을 지원해준 전례는 없다.
이 때문에 정부의 직접 지원을 위해서는 사회적 합의가 필요하다는 게 전문가들의 목소리다.
건국대 유선종 부동산학과 교수는 "현재 전세사기 피해자로 인정된 임차인의 80∼90%는 권리관계를 제대로 분석하지 않았거나 막대한 선순위 근저당권이 있는데도 계약 부주의로 피해를 본 경우"라며 "전세시장 상황에 따라 해결될 문제를 정부가 직접 개입해 재정을 투입하는 것은 위험부담이 있다"고 말했다.
실제 전세사기 피해자들 가운데 일부는 해당 아파트에 수십억원대의 선순위 근저당권이 설정돼 있고, 전세 계약서 특약에 '선순위 권리관계로 인해 보증금을 못받을 수 있다'는 문구가 있음에도 전세계약을 체결한 경우도 있었다.
선구제 방식이 도입되면 이를 이용한 또 다른 사기가 발생하는 등 도덕적 해이가 나타날 수 있다는 점도 전문가들은 우려한다.
전직 국토교통부 고위 관계자는 "다른 사기 피해자들도 조직적으로 국가에 직접 지원을 요구할 수 있고, 보증금 일부를 정부가 보장해주는 것으로 여겨 국가 지원을 악용한 또 다른 사기가 발생할 수도 있다"며 "정부가 사인 간 거래에 직접 개입하기보다 피해자에 대한 공공임대 등 긴급주거지원 대책을 강화하는 것이 현실적인 방안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역전세난 문제는 이번뿐만 아니라 집값과 전셋값 변화에 따라 주기적으로 발생할 수 있는데, 이럴 때마다 정부가 개입해 재정을 투입할 것인지도 문제로 남는다.
반면 피해 임차인에 대한 보다 실질적인 지원 방안을 적극적으로 검토할 필요가 있다는 의견도 적지 않다.
한양대 이창무 도시공학과 교수는 "LH가 우선매수권을 행사해 경매에서 피해 주택을 낙찰받는 경우 감정가보다 싸게 공공임대를 확보하게 되지만 임차인에게는 실질적으로 돌아가는 몫(보증금)은 없다"며 "리츠 등 제3섹터에서 해당 주택을 매입해 임차인의 피해 보증금을 지원하고 상품을 정상화한 뒤 민간 임대 수준의 높은 가격으로 임대를 놓거나 추후 매각을 통해 비용을 회수하는 방식을 고려해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경기대 김진유 도시교통공학과 교수도 "근본적으로 선구제 후회수 방식이 바람직하지 않지만, 피해자에 대한 실질적인 지원 측면에서 추후 채권 회수가 가능한 경우에 한해서는 정부가 선지원하는 것도 검토해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동안 선구제 방식에 반대해왔던 정부는 신중한 입장이다.
박상우 국토부 장관 후보자는 앞서 국회 인사청문회 서면 자료에서 전세사기 피해 예방책에 대해 "적정 시세, 선순위 권리관계, 임대인 체납 여부 등의 정보를 임차인에게 충분히 제공하고, 임대인과 공인중개사의 책임도 강화할 필요가 있다"는 입장을 밝혔다.
sms@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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