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이 한계기업 구조조정 적기다[시평]

2023. 12. 21. 11: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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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진 KDI 국제정책대학원 교수
목욕탕 수리론 vs 외과수술론
30년 전 YS정부 때부터 논쟁
경기 침체의 끝자락이 최적기
내년엔 완만한 성장세로 전환
기촉법 일몰 시한도 3년 연장
인수합병 인수개발 장려해야

올해 한국 잠재성장률과 관련, 한국은행과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는 2.0%로 추정한다. G7 국가 중 미국과 함께 가장 높은 편이나, 문제는 잠재성장률이 빠르게 하락한다는 점이다. 미국, 프랑스, 이탈리아는 최근 10년간 잠재성장률이 약간 상승하기까지 했는데 우리는 10년 전의 3.5%에서 1.5%포인트 떨어졌다. 잠재성장률 하락의 가장 큰 요인은 총요소생산성(TFP) 하락이다. TFP는 노동과 자본의 투입으로 설명되지 않는 경제의 전반적인 효율성을 보여주는 지표이다. 앞으로 노동과 자본 투입의 성장 기여는 점차 사라지게 되므로 미래에는 TFP가 경제성장의 유일한 원천이 된다. 이 추세대로라면 2040년 이후 우리의 경제성장률은 제로가 될 것이다.

TFP의 핵심은 건강한 생태계이다. 즉, 생산성 높은 기업의 진입과 그렇지 못한 기업의 퇴출이다. 기업 진입을 막는 규제에 대해서는 논의가 많으나 원활한 퇴출 장치에 대한 논의는 부족하다. 우리나라에는 부실기업이 많다. 작년 모든 기업 중 42.3%가 영업이익으로 이자를 못 갚았다. 이자를 갚기 위해 또 돈을 꾸어야 하는 처지인 셈이다. 이런 상태가 3년 이상 지속되면 한계기업 혹은 좀비기업이라고 하는데, 상장사로 좁혀 보아도 그 비중이 2022년 기준 17.5%에 달한다(전경련, 2023). 제조업 부문 좀비기업의 평균 노동생산성은 정상기업의 48%에 불과하며 이들을 제대로 정리하면 전체 제조업 노동생산성이 1% 넘게 상승한다고 한다(한국은행, 2020).

그러나 기업 구조조정은 실업을 야기하므로 고통스럽다. 그러다 보니 정부는 이들을 연명시킬 다양한 지원을 풀고 있다. 그러나 한국개발연구원(KDI, 2017) 연구는 중소기업이 정부의 금융지원을 받으면 생존율은 높아지지만, 생산성은 오히려 떨어진다는 점을 밝혔다. 게다가 좀비기업은 정부 돈으로 연명하며 저가 입찰 등으로 건강한 기업의 성장까지 막는 부작용도 낳는다. 이들에 대한 구조조정이 시급하다.

기업 구조조정은 언제 해야 하는가? 이 논쟁은 30년 전에도 있었다. 김영삼 정부 첫해인 1993년은 1980년대 말의 호황기가 꺾이면서 경기침체에 들어선 시기였다. 당시 목욕탕 수리론과 외과수술론이 대립했었다. 전자는, 손님 없는 여름철에 목욕탕을 수리하듯 침체기에 구조조정을 해야 부실기업도 쉽게 포착되고 구조조정에 대한 공감을 얻는다는 입장이다. 후자는, 환자가 건강해야 수술을 하듯 구조조정은 호황기로 미뤄야 한다는 입장이었다. 실제로 호황기에 구조조정을 하면 경기 사이클 진폭을 완화하는 의미가 있다. 그러나 문제는, 환자가 아픈 곳이 없으면 수술을 받으려 하지 않는 것처럼 호황기엔 구조조정에 대한 공감을 형성하기가 어렵다는 사실이다.

그러므로 기업 구조조정의 가장 좋은 타이밍은 경기 침체기의 끝자락이다. 침체를 겪으면서 한계기업이 모두 드러나 구조조정에 대한 공감대를 쉽게 이루면서도 실업 등 경제 전반의 고통을 곧 다가올 경기회복으로 완화할 수 있기 때문이다. 지금이 바로 그 타이밍이다. KDI는 지난달 낸 보고서에서 “내년 우리 경제는 내수 증가세 둔화에도 불구하고 수출을 중심으로 완만한 회복세를 보이며 2.2% 성장할 전망”이라고 했다. 내년에 호황을 맞는 것은 아니지만, 올해가 바닥이라는 점은 명확히 했다. 급변하는 국제경제 질서 속에서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생산성을 강화하는 일이다. 국가적 자원이 좀비기업에 낭비되지 않고 생태계가 원활하게 작동하도록 기업 구조조정을 강력하게 추진해야 할 때이다.

그런데 최근 워크아웃 제도의 근거가 되는 기업구조조정촉진법(기촉법)의 일몰 기한이 2026년까지 3년 연장됐다. 2001년 한시법으로 도입된 뒤 여섯 번째의 일몰을 넘겼으니 참으로 끈질긴 생명력이다. 국책은행 주도로 구조조정을 추진하다 보니 늘 관치 논란에 시달리는 법이다. 회생 가능한 기업을 살리는 것은 필요한 일이나 그렇다고 경영권까지 보호해야 하는지는 의문이다. 인수합병, 인수개발 등 다양한 방안이 더 활성화됐으면 한다. 국회 권고에 따라 금융위는 2025년 말까지 법원의 역할 확대를 포함한 제도개선방안을 마련해야 한다. 이번 기촉법 연장이 마지막이기를 바란다.

박진 KDI 국제정책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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