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달 새 가자지구 인구 1% 사라져…“전례 없는 수준”
이스라엘·하마스 전쟁이 74일차에 접어든 20일(현지시간) 팔레스타인 가자지구 내 누적 사망자가 2만명을 넘어섰다.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의 휴전 결의안이 제자리걸음을 하는 가운데, 가자지구 민간인의 고통이 한계치를 넘어서고 있다.
하루 평균 300명 가까이 숨져
“모든 측면에서 전례 없는 수준”
가자지구 보건부는 이날 성명에서 “지난 10월7일 전쟁 발발 이후 가자지구에서 2만명 이상이 숨졌다”고 밝혔다. 이 중 아동이 8000여명, 여성이 6299명으로 전체 사망자의 약 70%를 차지한다. 의료진 310명과 언론인 97명도 사망자에 포함됐다. 가자지구 인구 200만명의 약 1% 가량이 불과 70여일 만에 사라진 것이다.
가자지구 보건부는 또한 부상자는 5만2600여명, 실종자는 6700명으로 추산했다. 보건부는 “실종자 상당수는 잔해 속에 있을 것으로 보이며 현재 생사를 알 수 없다”고 밝혔다.
1주일간의 임시 휴전 기간을 제외하면 두어 달 사이에 하루 평균 300명 가까운 사람이 숨진 셈이다. 전문가들은 이같은 가자지구 전쟁 사망자는 과거 다른 지역 분쟁보다 빠른 속도로 늘어난 것이라고 평가했다.
인권단체 국제앰네스티에 따르면 2017년 시리아 도시 라카에서 미국 주도 연합군이 극단주의 무장조직 이슬람국가(IS)를 몰아내기 위해 4개월간 공습과 포격을 했을 때 하루 평균 20명 미만의 민간인이 사망했다. 2년 가까이 이어지고 있는 우크라이나 전쟁 사망자도 1만여명이다.
콜롬비아 내전, 콩고민주공화국 내전 등 전 세계 분쟁의 사망자 수를 조사하고 있는 영국 런던대 로열홀로웨이칼리지의 마이클 스파갓 경제학 교수는 “2008년까지 과거 일련의 가자지구 전쟁을 거슬러 올라가 보면 이번 전쟁은 사망자 수나 무차별적인 살해 등 모든 측면에서 전례가 없는 수준”이라고 말했다.
앞서 이스라엘군은 가자지구 사망자 중 하마스 대원과 민간인의 비율이 1대 2라고 밝혔지만, 스파갓 교수는 “가자지구 사망자의 약 80%가 민간인이라고 해도 놀랄 일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미 CNN 방송에 따르면 미 정보당국은 이스라엘이 전쟁 이후 12월 중순까지 가자지구에 2만9000개 이상의 폭탄을 투하했으며 이 중 40~45%는 유도 기능이 없는 폭탄인 것으로 파악했다. 가자지구는 길이 41㎞, 폭 10㎞로, 220만명이 거주하기에는 비좁은 곳이다. 이스라엘의 공격으로 인한 인명피해가 클 수밖에 없다.
가자지구 아동, 하루 필요 물 사용량의 10% 밖에 못 써
추운 겨울 시작돼 인도적 재앙 우려
가자지구 지상전이 남북부 전역에서 진행되며 민간인의 고통은 날로 커지고 있다. 이날 유엔 인도주의업무조정국(OCHA)에 따르면, 이집트와의 접경 도시인 라파는 피란민이 밀려들면서 전쟁 전보다 인구밀도가 약 4배 증가해 ㎢당 1만2000명을 초과했다. 현재 가자지구 전체 주민의 약 85%에 해당하는 190만여명이 집을 떠난 것으로 추정된다.
이날 이스라엘군은 남부 거점도시 칸유니스의 약 20%에 해당하는 지역에 새 소개령을 발령해 더 이남으로 떠나라고 촉구했다. 현재까지 소개령이 내려진 지역은 가자지구 중부와 남부의 약 30%에 해당한다.
남부 지역의 유엔 구호시설과 보호소에 수용 가능 인원의 4배 이상이 몰려들면서 식량과 식수난도 가중되고 있다. 국제구호단체의 식량과 구호물자가 최근 새로 열린 케렘 샬롬 검문소를 통해 반입되고 있으나 역부족이다.
유엔아동기금(유니세프)은 이날 가자지구 아동에게 허용된 물의 양이 평소 사용량 대비 고작 10%에 불과하다고 지적했다. 식수, 취사, 목욕 등에 필요한 하루 물 사용량은 15~20ℓ인데 가자지구 아동은 1.5ℓ 만 사용할 수 있다는 것이다. 유엔 세계식량계획(WFP)이 가자지구 남부 주민을 상대로 한 설문조사에서는 44%가 굶주림이 심각하다고 답했고, 50%는 저녁을 먹지 못한 채 잠자리에 든다고 답했다.
가자지구에 추운 겨울이 시작되면서 텐트 생활을 하는 피란민의 건강 문제가 더 악화하리란 우려가 나온다. 5세 미만 아동에게서 설사는 전쟁 이전보다 약 25배 늘었다. 머릿니와 위장 질환, 호흡기 질환도 번지고 있다.
미국 반대로 유엔 결의안 표결 또 미뤄져
이런 상황에서도 가자지구로 인도적 지원을 확대하자는 취지의 결의안은 이날 미국의 요청으로 또 다시 연기됐다. 지난 12일 유엔총회는 이스라엘과 하마스 간 즉각적인 휴전을 촉구하는 결의안을 통과시켰으나, 안보리에서는 미국의 반대로 합의에 이르지 못하고 있다. 안보리는 이번주 표결 일정을 연이어 잡았으나 미국이 줄곧 일부 문구를 문제 삼고 있다.
다만 이스라엘과 하마스가 조만간 휴전·인질 석방 협상에 합의할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하마스 정치 지도자인 이스마엘 하니예는 이날 협상을 위해 이집트 카이로에 도착했다. 이스라엘 역시 중재국에게 협상에 나설 의지를 내비쳤다.
안토니우 구테흐스 유엔 사무총장은 “격렬한 전투, 연료 부족, 통신 중단으로 인해 가자지구 주민의 생명을 구할 자원을 제공하려는 유엔의 노력이 심각하게 제한되고 있다”며 “대규모 인도주의적 활동이 가능한 여건이 즉시 되살아나야 한다”고 촉구했다.
김서영 기자 westzero@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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