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시간, 모두에게 공평할까…식량 생산 시간 1.5시간 vs 5분
식량 생산시간에서 선-후진국 큰 격차
저소득국은 1.5시간, 고소득국은 단 5분
수면·단장·식사·교류 시간은 차이 없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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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별, 나이, 학력, 소득, 거주지 등에 따라 사람들이 처한 생활 환경은 제각각이지만 전 세계인에게 똑같이 적용되는 조건이 하나 있다. 바로 주어진 시간은 하루 24시간이라는 점이다.
우리의 일상 행동은 시간이라는 공통의 주춧돌 위에 저마다 쌓아가는 건축물이다. 세계 인구 80억명에게 주어진 시간을 모두 합하면 하루 1920억시간에 이른다. 그 엄청난 시간을 세계인들은 어떻게 배분해 쓰고 있을까?
캐나다 맥길대가 주축이 된 국제 연구진이 2000년부터 2019년까지 140개국 이상의 국가 통계 기관, 국제 기구 및 연구기관이 수집한 데이터들을 모아 전 세계 인구가 평균적으로 시간을 어떻게 활용하는지를 분석해 미국 국립과학원회보(PNAS)에 발표했다. 여기서 말하는 인간의 하루는 국가별 수치를 평균한 것이 아니라 80억 인구 개개인의 시간을 평균한 것이다.
15시간의 활동과 9시간의 수면
이에 따르면 세계인의 하루는 9시간의 수면과 15시간의 활동으로 이뤄져 있다.
가장 큰 단일 범주인 수면시간은 평균 9.1시간(하루의 38%)이었다. 이는 성인들의 웨어러블기기를 통해 측정한 평균 수면시간 7.5시간보다 훨씬 긴 것이다. 연구진은 이는 집계에 어린이를 포함했고, 침대에 누워 있지만 잠을 자지 않는 시간까지 포함됐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잠에서 깨어나 활동하는 시간은 자신의 몸과 마음에 직접 영향을 끼치는 개인 활동과 주변 환경을 포함한 외부 세계를 대상으로 한 외부 활동, 사회인으로 필요한 일을 처리하고 이동하는 데 사용하는 조직 활동 세가지로 구분된다.
개인 활동은 식사, 운동, 연구, 학습, 종교 활동은 물론 친구와 놀거나 TV를 보는 등 온전히 자신의 뜻에 따라 활동하는 시간이다. 조사 결과 세계인들은 하루 중 9.4시간을 개인 활동을 하는 데 보냈다.
개인 활동 시간의 거의 절반(4.6시간)은 독서 등 홀로 보내거나 지인과 교류하는 시간이었다. 이어 식사(1.6시간), 학습과 연구(1.1시간), 씻고 몸단장하기(1.1시간), 레크리에이션(0.4시간), 아이돌봄(0.3시간), 종교활동(0.2시간), 건강관리(0.2시간) 차례였다.
연구진은 저소득 국가와 고소득 국가를 모두 조사했지만 몇몇 활동 유형은 시간 배분에서 두 그룹 사이에 큰 차이는 없었다고 밝혔다. 특히 씻고 몸단장하는 시간과 식사 시간은 최저소득국이나 최고소득국이나 거의 같았다. 대인관계에 들이는 시간도 마찬가지였다.
식사 시간이 식량 생산 시간의 1.8배
인간 이외의 세상에 물리적인 변화를 가하는 외부 활동에 쓰는 시간은 3.4시간이었다. 예컨대 자연에서 재료와 에너지, 식품을 얻고 물건과 건축물을 만들고 관리하며, 거주 공간의 청결을 유지하는 것 등이다. 주로 경제 활동에 해당하는 영역으로 볼 수 있다.
연구진은 외부 활동은 저소득국과 고소득국 사이에 가장 차이가 많은 영역이었다고 밝혔다. 저소득국가에선 하루 평균 1.5시간 이상을 식량 재배와 수확에 썼다. 이 시간은 고스란히 육체적 노동을 하는 시간이다. 최상위권의 고소득국 사람들이 이 활동에 할애한 시간은 평균 5분 정도였다. 선진국 사람들이 저소득국 사람들에 비해 1시간 이상의 여유 시간을 더 갖고 있는 셈이다.
마지막으로 조직 활동에 투여하는 시간은 하루 2.1시간이었다. 여기엔 쇼핑과 이동 시간, 행정 및 금융 서비스 이용 시간 등이 포함된다.
연구진은 이동 시간은 저소득국과 고소득국 사이에 큰 차이가 날 것으로 예상했지만 결과는 비슷하게 나왔다. 하루에 약 1시간이었다. 연구진은 이동 시간이 세계적으로 거의 같다면 에너지 정책은 이동거리당 에너지 소비량을 줄이는 것보다 이동시간당 에너지 소비를 줄이는 데 초점을 맞춰야 할 것이라고 제안했다.
흥미로운 건 식생활과 관련한 시간의 구조다. 요리에서 설거지, 식탁 정리에 이르는 식사 준비에 소요되는 시간은 55분, 식품을 생산하는 농업과 어업 활동에 투여하는 시간은 52분으로 비슷했다. 식생활에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것은 실제로 식사하는 시간으로 96분이었다. 식량 생산이나 식사 준비 시간의 약 1.8배였다.
경제 활동엔 2.6시간…쓰레기 처리엔 단 1분
80억 인구의 총 시간 중에서 무임금 가사노동을 포함한 경제 활동에 투여하는 시간은 전체의 약 11%인 2.6시간(158분)이었다. 이는 깨어 있는 시간의 6분의 1에 해당한다. 연구진은 이는 언뜻 현실과 동떨어지는 것으로 보이지만, 80억 인구의 평균치라는 점을 고려해 합산하면 전 세계 노동자(15~64살 생산 가능 인구의 66%)가 주당 41시간 근무하는 것과 같은 수치라고 밝혔다. 경제 활동 시간의 대부분은 농업과 축산업이다.
경제 활동에 투여하는 시간을 영역별로 나눠 보면 약 3분의 1(44분)이 주로 농업과 관련한 것으로 가장 많았다. 이어 소매, 도매, 부동산, 보험, 금융, 법률 등의 배분과 관련한 것이 4분의 1(37분)이었다. 차량, 기계, 가전제품 등의 인공물 생산은 전체 경제 활동의 7분의 1(22분)이었다. 자원을 얻는 데는 4분, 연료를 추출하는 데는 2분을 썼다.
반면 쓰레기를 처리하는 데 쓰는 시간은 단 1분이었다. 이는 집을 청소하고 정리하는 쓰는 시간(40분)과 극명한 대조를 이룬다. 연구진은 쓰레기 처리에 쏟는 총 시간이 상대적으로 이렇게 작다는 것은 80억 인구에 주어진 총 시간 예산을 조금만 재분배해도 폐기물 문제를 완화하는 데 큰 효과가 있을 수 있음을 시사한다고 주장했다.
연구진은 “지구의 상태를 직접적으로 변화시키는 인간 활동은 전 세계인의 하루 중 상대적으로 적은 부분을 차지한다”며 이번 연구가 시간 배분이라는 관점에서 지속가능한 지구 목표 달성을 위한 전략을 짜는 데 시사점을 줄 수 있을 것으로 기대했다.
이번 연구는 맥길대가 추진하고 있는 인간 활동 데이터베이스 구축 프로그램 ‘인간 크로놈 프로젝트’(human chronome)의 첫 결과물이다. 이 프로젝트는 사람들이 평균적으로 어떤 일을 하면서 시간을 보내는지 파악함으로써 세상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물리적으로 이해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연구진은 “시간은 삶의 주화”라며 “세계가 연결된 사회에서는 그 주화가 전 세계적으로 어떻게 쓰이는지 이해하는 것이 필수적”이라고 밝혔다.
*논문 정보
https://doi.org/10.1073/pnas.2219564120
The global human day
곽노필 선임기자 nopi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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