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생 단 하나의 칵테일만 마셔야 한다면 [김지호의 위스키디아]

김지호 기자 2023. 12. 21. 08:02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어느 순간 주위에 위스키를 좋아한다는 사람들이 많아졌습니다. 입맛은 제각각이고 위스키 종류는 수천 가지. 본인의 취향만 알아도 선택지는 반으로 줄어듭니다. 주정뱅이들과 떠들었던 위스키 이야기를 여러분과 나누려고 합니다. 당신의 취향은 무엇인가요?

위스키디아 뉴스레터 구독하기 ☞ https://page.stibee.com/subscriptions/275747

노량진 수산 시장 횟집에서 제조 중인 올드 패션드 칵테일 /김지호 기자

선배가 수줍게 가방에서 뭔가를 주섬주섬 꺼냅니다. 자세히 보니 버번위스키, 설탕, 오렌지를 비롯해 칵테일에 쓰이는 각종 집기류를 준비해 온 것입니다. 노량진 수산시장 횟집에서 후배들을 위해 야심 차게 이벤트를 준비한 것이지요. 그는 확신에 찬 눈빛으로 음료를 제조하기 시작했고 이내 참가자들에게 술잔을 돌렸습니다. 현장에 모인 사람들은 연신 잔에 코를 박고 음료를 음미하기 시작했습니다. 어딘지 모르게 조잡하고 엉성했던 제조과정과는 다르게 맛은 꽤 좋았습니다. 사람들은 저마다 놀랍다는 반응을 보였고, 해당 칵테일을 처음 접한 이들도 홀린 듯이 술잔을 비웠습니다. 이날 밤 준비됐던 칵테일의 이름은 ‘올드 패션드’.

올드 패션드의 가장 큰 매력은 타격감 있는 위스키 맛 이후에 오는 오렌지의 상큼한 시트러스와 단맛의 조화에 있습니다. 삐끗하면 너무 달거나 시큼해질 수 있어 원재료의 비율이 매우 중요합니다. 200년 넘는 역사를 가진 원초적인 클래식 칵테일이지만, 수많은 바텐더들이 여전히 심혈을 기울여서 만드는 음료이기도 합니다. 평생 단 하나의 칵테일만 마셔야 한다면 올드 패션드를 선택하는 사람들도 많을 것입니다.

◇올드 패션드의 시작

1806년 5월 13일 자 뉴욕, 허드슨에서 발행하는 신문(Balance, and Columbian Repository)에서 편집자는 칵테일을 ‘증류주, 설탕, 물, 비터스’로 구성된 음료라고 정의합니다. /cocktailcalendar

올드 패션드의 이야기는 1806년 5월 13일 자 뉴욕, 허드슨에서 발행하는 신문(Balance, and Columbian Repository)에서 시작됩니다. 당시 칵테일에 관해 묻는 한 독자의 질문에 편집자는 ‘증류주, 설탕, 물, 비터스’로 구성된 음료라고 정의합니다. 이는 오늘날 올드 패션드의 제조법과 일맥상통하는 내용입니다. 하지만 당시에는 올드 패션드가 아닌 ‘비터드 슬링’으로 불렸습니다. 여기서 비터스란 유럽에서 약재로 쓰이던 술을 의미하는데 주로 식물의 뿌리, 허브, 꽃 등을 배합해서 만든 농축액입니다. 음식으로 치자면 미원 같은 존재로 술에 복합성이나 풍미, 감칠맛 등을 더해줍니다.

1800년대 중반부터 칵테일에 대한 수요가 늘기 시작하면서 바텐더들의 고심도 깊어집니다. 이들은 비터스 외에도 다양한 술과 재료를 사용해 실험적인 칵테일을 만들기 시작합니다. 하지만 열정도 과하면 독이 되듯, 다소 과한 칵테일 맛이 불편했던 애주가들이 오로지 위스키, 설탕, 비터스만 넣어 만든 ‘옛날 방식’의 칵테일을 찾기 시작합니다. 마치 소금과 후추만으로 간을 맞춘, 담백하게 완성된 요리를 찾는 것처럼요. 수많은 칵테일이 범람하던 시절 기본에 충실하게 만들어진 칵테일은 ‘올드 패션드’라는 이름을 갖게 됩니다.

미국 켄터키주 루이빌에 위치한 펜데니스 클럽 모습. 1927년 /pendennisclub.org

올드 패션드의 공식적인 기록은 1880년대 미국 켄터키주 루이빌에 있는 ‘펜데니스 클럽’에서 만들어진 것으로 전해집니다. 켄터키 하면 많은 분이 후라이드 치킨을 떠올릴 것입니다. 술에 관심 좀 있으신 분들은 버번위스키를 외치겠지요. 하지만 미국 내 가장 권위 있는 경마 대회 중 하나인 ‘켄터키 더비’도 1875년 이곳에서 시작됐습니다. 당시 경마꾼들을 위해 만들어진 칵테일이 올드 패션드라고 합니다. 희비가 엇갈렸던 장소인 만큼 축배와 각별한 위로가 필요했던 사람들을 위한 술이었을 것입니다. 한편, 이 클럽의 회원이었던 제임스 E. 페퍼 대령이 ‘뉴욕의 왕궁’이라 불리는 월도프 아스토리아 호텔로 이 칵테일을 전파하면서 올드 패션드의 본격적인 인기가 시작됐다고 합니다.

◇금주법으로 자리잡은 미국의 칵테일 문화

미국의 칵테일 문화가 빠르게 자리 잡을 수 있던 이유로 ‘금주법(1920년~1933년)’을 빼놓을 수 없습니다. 본래 취지와는 다르게 다양한 칵테일이 개발되고 수요도 폭발적으로 늘어나던 시기입니다. 정책 초창기에 강제로 문을 닫았던 술집들은 주류 밀매 점인 스피크이지바로 부활해, 술에 목말라 있던 군중들의 욕구를 채워주기 시작합니다.

당시 바텐더들의 궁극적인 목표 중 하나는 얄궂은 술맛을 숨기는 데 있었습니다. 당시 암암리에 유통되던 대부분의 밀주는 증류 기술이 떨어졌고 위생 상태가 좋지 못해 맛이 거칠거나 잡내가 심했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술에 강한 맛의 시럽을 첨가했고 과일 등을 사용하여 저급한 술맛을 창의적으로 가렸습니다. 즉, 불법으로 유통되는 밀주의 맛을 보완하기 위한 칵테일들이 탄생하게 된 것입니다.

1933년 금주법이 폐지되고 주류 판매가 다시 허용되면서 칵테일 문화도 본격적으로 번창하기 시작합니다. 칵테일은 더욱 정교하고 세련되게 진화됐고 고품질의 증류주와 신선한 과일, 주스 같은 재료의 사용이 중요해졌습니다. 바텐더는 단순히 술을 제공하는 사람이 아닌 숙련된 전문가로 인정받게 되었습니다. 이쯤 됐으면 이제 맛이 궁금하실 겁니다. 그래서 바로 알려드리려고 합니다. 전 세계인이 가장 사랑하는 칵테일 중 하나인 올드 패션드의 레시피.

◇올드 패션드 제조법

준비물

-버번이나 라이 위스키(알코올 도수는 50프로 언저리)

-데메라라 큐브 설탕(비정제 황갈색 설탕) 혹은 시럽

-앙고스트라 비터스

-마라스키노 체리, 오렌지

제조법

1. 먼저 바닥이 두툼하고 무거운 온더락 잔에 데메라라 큐브 설탕 한 조각을 넣고 앙고스트라 비터스 3-4대시 뿌려줍니다. 여기서 대시란 무심하게 손목 스냅을 이용하여 툭툭 뿌리는 정도로 이해하시면 됩니다. 비터스에 적셔진 설탕은 머들러로 꾹꾹 눌러서 으깨줍니다.

2. 오렌지 껍질을 세척 후 얇게 벗겨 잔 내부에 적당히 묻히고 으깨진 설탕과 함께 머들러로 적당히 눌러줍니다. 이 과정에서 오렌지 껍질의 기름이 설탕과 버무려지면서 풍미가 깊어집니다.

3. 소다수를 바닥에 자작하게 붓고 설탕과 오렌지 기름이 섞일 수 있도록 숟가락으로 골고루 저어줍니다.

4. 잔에 최대한 딱 맞는 큰 얼음을 넣고 버번이나 라이 위스키를 2온스(약 57mL) 부어 잘 저어 줍니다. 얼음이 커야 덜 녹아서 술맛이 오래 유지될 수 있습니다.

5. 취향에 따라 완성된 음료에 마라스키노 체리를 넣어 마무리하면 끝.

불렛 라이(Bulleit Rye)로 제조된 올드 패션드 모습 /김지호 기자 장소 : 마포, 팩토리정

사람마다 취향이 달라서 정답이라고 할 수 있는 레시피는 없습니다. 기본 틀에서 입맛에 맞게 비율을 조절해 자신만의 레시피를 찾아가면 됩니다. 위스키나 데메라라 설탕, 시럽 등은 취향에 따라 바꿀 수 있지만 비터스와 오렌지는 대체 품목을 찾기 어렵습니다. 이왕이면 원칙을 지켜주는 게 좋습니다. 그 어떤 몰트 바를 가도 맛이 같은 올드 패션드는 없을 것입니다. 바텐더마다 취향이 다르고 손님도 기분이나 날씨에 따라 입맛이 바뀌기 때문입니다. 다가오는 연말 모임에서 특별한 사람들을 위해 올드패션드의 매력을 보여주시는 것은 어떨까요? 저는 버번 대신 라이 위스키를 넣는 것을 추천합니다. 참고로 칵테일은 얼음이 녹기 전 10~15분 이내에 마시는 것이 좋습니다. 얼음이 녹기 시작하면 맛도 변합니다.

위스키디아 뉴스레터 구독하기 ☞ https://page.stibee.com/subscriptions/275747

Copyright © 조선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