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악인에서 기자, 한의사로…"동상 치료 패러다임 바꾸고 싶어"

서현우 2023. 12. 21. 07: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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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제] 한방으로 동상 치료한 박헌주 원장
미국 SCI 의학저널 관련 논문 등재
김홍빈 대장 등 중증 동상 복원 치료

두 장의 사진이 몇 년 전 SNS와 커뮤니티를 중심으로 크게 화제가 됐다. 처음은 동상에 걸려 회생이 불가능해 보일 정도로 시커멓게 변해버린 발가락에 수십 개의 침이 꽂힌 사진, 그 다음은 그 발가락이 멀쩡하게 되돌아와 발톱까지 자라난 사진이다. 지금도 추운 겨울이면 종종 다시 회자되는 자료로, 한의학에 대해 부정적으로 생각하는 사람들도 이것만큼은 기적적인 치료 사례라고 생각하곤 한다.

물론 부정적인 걸 넘어서서 한의학의 가치를 완전히 부정하는 측에선 조작 의혹을 제기하거나 구태여 한의학 처방을 하지 않았어도 자연 회복될 수 있었을 것이라고 얘기한다. 먼저 조작 의혹의 경우 직접 치료를 받았던 산악인들이 유튜브에 출연해 적극 해명해서 풀렸다. 다음 한의학 처방이 회복에 기여하지 않았고, 가만히 놔둬도 회복됐을 것이란 주장. 실제로 국내외를 막론하고 중증 동상에서 특별한 처방을 시도하지 않고도 회복된 사례들이 꽤 있다.

다만 지난 8월, 상기의 사례를 포함한 절단 위기 중증 동상 복원 치료 논문이 미국 SCI 의학저널 <EXPLORE>에 등재됐다는 점은 눈여겨 볼 만하다. SCI급 논문, 즉 세계적으로 어느 정도 권위를 인정받았다는 뜻이다.

스위스 마터호른을 방문한 박 원장.

산악인→기자→한의사

화제의 치료를 집도하고 논문을 쓴 이는 광주 중앙한의원 박헌주 원장이다. 박 원장의 인생사는 꽤 치열하다. 먼저 그는 산악인이었다. 1997년에는 히말라야 초오유를, 2000년에는 에베레스트를 등정했으며, 이외에도 세계 곳곳에서 고산 등반을 전개해 1993년에는 대통령 국민체육표창을 받기도 했다.

이후로는 언론인의 길을 걸었다. 1994년 광주매일신문에 입사해 7년간 직장 생활을 하며 한국기자상을 받기도 했다. 하지만 당시 좋지 못했던 지역 언론 환경에 휩쓸렸다. 신문사가 폐간했고, 이에 대항해 시위를 벌이다 송사에 휘말리기도 했다. 창간한 대안언론도 6개월 만에 재정이 열악해 문을 닫았다. 그때 산 선배들은 "신문기자가 된 이후로 사람이 변했다"는 말을 전하기도 했다. 그는 이렇게 살면 안 되겠다 싶어 진로를 틀었다. 마침 언론사 동기가 한의대에 진학했다. 편입시험은 한문과 영어, 한의학 3개 과목으로 진행되는데 동양철학이나 한시를 원래 좋아했기에 잘 맞을 것 같았다.

박 원장은 빙벽등반도 수준급이다

"서울 고시원으로 올라갔어요. 제가 5남매의 장남이자, 다섯 살배기 아이를 둔 가장이고 집사람은 직장이 없을 때라 심정이 무척 절박했어요. 그래도 산악정신으로 도전했죠. 그리고 1년 5개월 만에 동신대 한의대에 합격할 수 있었어요. 4명 뽑는 데 250명이 지원했었죠."

절실하게 공부했지만 그렇다고 그 과정이 마냥 고통스럽지만은 않았다. 공부가 재밌었다. 그동안 산을 다니면서 자연스럽게 체득했던 자연관이 한의학 교과서에 그대로 녹아 있었다. 하늘과 땅과 사람이 마치 하나와 같은 것. 박 원장은 "그래서 쉽게 합격했던 것 같다"고 돌아봤다.

김홍빈 대장이 첫 환자

동상치료에 관심을 갖게 된 건 역시 산 때문이었다. 한의대 본과 4학년 시절, 히말라야에서 후배 2명이 열 발가락에 심각한 동상에 걸린 채 귀국했다. 모두 서울 모 대학병원에서 치료받다 절단 결정이 내려졌다. 한 명은 이를 받아들였지만, 다른 한 명은 절단을 거부하고 실낱같은 희망을 갖고 무면허 시설로 갔다.

박 원장은 에베레스트를 등정한 산악인이다.

"당시 산악인들의 괴사성 중증 동상 처방은 치료-절단-피부이식 순으로 진행하는 게 일반적이었어요. 병원에 계속 남아 있던 대원은 예정대로 발가락 10개를 통째로 절단했죠. 반면 무면허 치료를 선택한 대원은 병원에서 진단한 것에 비해 발가락 손실도 적었고 피부 이식도 하지 않았습니다. 이 사례가 퍼지면서 많은 산악인들이 대학병원 대신 무면허 의료시술을 선택하는 웃지 못할 상황이 이어졌었죠."

이러한 결과가 무척 충격적이었지만 학생 신분이었기에 당장 한방치료에 응용할 순 없었다. 그렇게 시간이 흘렀다. 그러다 2010년, 장애인 세계 최초 히말라야 14좌 완등자인 故 김홍빈 대장이 마나슬루 정상을 등정했으나 코와 귀에 심각한 동상에 걸린 채 귀국하게 됐다.

"김 대장은 오랫동안 등반을 같이 해온 절친한 선배였어요. 병원에 갔더니 코와 귀를 절단해야 하고 안경도 못 쓸 수 있다는 진단을 받았답니다. 괴사 부위가 연골이라 재생이 안 되기 때문이죠. 이미 열 손가락을 동상으로 잃은 그가 고글까지 쓰지 못하게 된다면 앞으로 등반을 더 하긴 어려울 수 있었죠. 김 대장이 일주일 정도 피부과와 성형외과를 다니다가 지푸라기 잡는 심정으로 저에게 와서 '잃을 것 없으니 맘대로 치료해 보라'고 했어요."

박 원장은 일체의 양방 치료를 하지 않고 탕약과 침, 뜸, 그리고 한방연고로 일관되게 치료를 진행했다. 그리고 53일이 흘러 기적적으로 코와 귀 대부분이 회복됐다. 이때부터 히말라야에서 동상에 걸린 산악인들은 전부 박 원장의 한의원을 찾았다. 그렇게 10년 동안 50여 명의 중증 동상환자들을 치료했다.

치료 과정은 이렇다. 식염수 세척, 자락사혈, 자침, 직접구(뜸), 한방동상연고도포, 습윤드레싱, 한약처방이다. 2도 이하의 경증 동상은 통원치료로 보름에서 최대 한 달 내로 해결된다. 하지만 3도 이상의 중증은 1~2개월 이상도 걸린다. 또한 환자와 박 원장 본인도 무척이나 고통스럽다.

"하루에 한 번 치료할 때면 2~4시간 정도 시간이 걸립니다. 또한 동상부위가 괴사되면서 생기는 고름 등으로 악취가 상상 이상으로 나요. 시체 썩는 냄새까지 납니다. 또한 염증이 극렬해지면 환자가 겪어야 하는 고통도 높아지죠. 저는 그래서 대외적으로는 동상치료를 중단한 상태입니다. 치료 과정이 너무 힘들고, 스트레스도 극심하게 받거든요."

SCI 논문에는 그가 진료한 50여 명의 환자 중 3명의 케이스가 실렸다. 중증 동상이었지만 완전 복원됐다.

양방치료와 가장 유의미한 차이점은 염증을 다루는 방식이라고 한다. 박 원장은 "양방은 기본적으로 감염을 차단하는 위주로 치료한다. 그래서 통상 공격적으로 소독하고, 피부 겉면을 벗겨내고, 궁극적으로 절단하려고 한다"며 "반면 한방치료의 경우 오히려 염증반응을 더 활성화시킨다. 일부러 사혈을 하고 직접 피부에 뜸을 올려 인위적으로 화상을 입힌다. 이러면 혈류가 더 왕성하게 흘러 활성화 치료가 된다"고 설명했다.

절단하지 않고 최대한 살린다

박 원장은 "현재까지 치료한 50여 명의 환자들 모두 큰 부작용이나 후유증은 발견되지 않았다"고 했다. 절단 치료를 하게 되면 피부이식을 위해 엉덩이나 대퇴부의 피부를 이용하는데 이질감도 들고 겨울이 되면 피부를 가져온 부위에 약간의 후유증을 느낀다는 설명. 반면 한방 복원 치료는 손가락 발가락 그대로 아물기 때문에 후유증이 한결 덜하다는 것이다.

물론 그의 치료법이 완전무결한 것은 아니다. 먼저 치료기간이 두 배 가까이 길며, 그 기간이 매우 고통스럽다. 염증반응이 극렬해지면 환부가 빨갛게 퉁퉁 붓고 고름과 진물이 나온다. 마취나 진통제 처방을 할 수 없기 때문에 일반의약품 진통제만으로 모든 치료과정을 견뎌야 한다.

또한 모든 동상을 전부 자가 복원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박 원장은 "어디까지 복원될지는 사실 처음에 결정된다"고 했다.

"환자들은 보통 물집이 크게 잡힌 것을 보고 겁을 먹고, 변색된 건 딱히 신경을 안 써요. 그런데 사실 복원 치료에 있어선 반대입니다. 물집이 크면 보통 예후가 좋아요. 또 색깔도 포도색이나 검은색에 가까울수록 안 좋죠. 가장 최악은 물집도 없고 조직이 아예 말라붙은 상태입니다. 지금은 임상 결과가 많이 쌓여 베이스캠프에서 사진을 보내주면 어디까지 결손되고 복원될지 진단해 주죠."

결손된다는 건 결국 절단된다는 것. 하지만 양방치료처럼 공격적으로 절단하지 않고 자연탈락을 유도한다. 박 원장은 "몸이 알아서 최대한 살려보려고 노력하다가 뼈까지 자연탈락시킨다. 우리는 도와주기만 하면 된다"고 말했다.

SCI 논문에는 그가 진료한 50여 명의 환자 중 3명의 케이스가 실렸다. 중증 동상이었지만 완전 복원됐다.

자연탈락은 매우 까다로운 과정을 수반한다. 박 원장은 "처음 내원하면 초기 일주일이 가장 중요하다. 이때 예후의 대부분이 결정된다"며 "그 이후 한 달이 지나면 윤곽이 드러나고 자연탈락을 시켜야 될 경우 그에 '예쁘게' 탈락될 수 있도록 돕는다. 뼈만 돌출되거나 관절이 변형되지 않도록 피부가 뼈마디를 예쁘게 덮게끔 만들어주려고 노력한다. 이 과정이 잘 완료되면 미관상으로나 기능적으로 문제 없이 마무리된다"고 설명했다.

문제는 관절을 기준으로 마디 단위로 탈락되지 않고 마디 중간, 그러니깐 1.5마디쯤에서 탈락되는 경우다. 이 경우 뼈만 남기 때문에 피부를 키워서 뼈를 올라타 덮도록 유도해야 한다. 자연히 치료기간도 길어진다. 박 원장은 "정형외과에서 수술적 치료로 뼈를 제거해 주는 것이 가장 이상적이지만 현실적으론 양한방 협진이 잘 이뤄지지 않고 있어 어렵다"고 안타까워했다.

"한의원 홍보요? 저 동상치료 안 한다고 말씀드렸잖아요."

박 원장은 이번 논문 등재도, 인터뷰에 응한 것도, 전부 한의원 홍보와는 무관하다고 선을 그었다. 실제로 그는 상당수의 동상치료 요청을 거부하고 있다. 다만 매몰차게 모두 거부하진 못하고 있다. 최근에는 입소문을 듣고 찾아온 오스트리아인과 대한산악연맹 대원 한 명을 치료했다. 이조차도 원래 고사하려 했으나 부모님을 포함해 온가족이 내려와 한 번 봐달라고 통사정하는 통에 치료를 시작했다.

SCI 논문에는 그가 진료한 50여 명의 환자 중 3명의 케이스가 실렸다. 중증 동상이었지만 완전 복원됐다.

"제가 하루에 2~4시간씩 치료해야 한다고 했잖아요? 동상환자 한 명 오면 저희 한의원은 마비돼요. 오전 2시간, 오후 2시간 집중치료해야 되니 다른 환자가 와도 봐줄 여유가 없어요. 뜸도 손가락 10개에 동상이 걸렸다고 치면 한 번에 50장을 떠야 됩니다. 거기에 일일이 식염수 세척하고, 뜸 뜨고, 침 놓고, 또 연고 바르고, 거즈로 붕대 감고. 개인 한의원이 처리할 만한 업무량이 아니죠. 다만 산악인으로서 사명감은 있어서 조금씩 맡아 하고 있는 겁니다."

그는 "굳이 말하자면 동상치료가 돈이 되는 것도 아니다"라며 "양방에선 피부이식 수술까지 하면 1,000만 원 이상 소요될 테지만 여긴 한 번 치료할 때 본인부담금 2만 원 안쪽"이라고 덧붙이기도 했다.

동상치료 패러다임 재조명 목표

그럼에도 본인의 치료 과정을 밝힌 이유는 두 가지다. 하나는 동상치료의 패러다임을 전 세계, 한방은 물론 양방도 같이 돌아보자는 것.

"이번에 논문을 등재한 것도 그런 의미가 커요. 현재 양방이 하고 있는 치료가 맞는지, 또 제가 한 자가 복원 치료가 맞는지, 그 과정에서 피부를 걷어내고 소독하는 게 맞는지, 물집을 보존하는 게 맞는지 다 같이 생각해 보자는 거죠. 또 양한방협진을 통해 X-ray 촬영이나 혈액검사 등 양방에서 할 수 있는 검사를 같이 진행하면 치료의 수준도 한 단계 더 올라갈 거라고 봐요. 그저 자가 복원 치료가 잘됐다고 입증된 케이스들이 있으니 이걸 갖고 토론을 해보자는 취지입니다. 비단 한국뿐만이 아니에요. 미국의 한 의사도 저한테 자료를 달라고 요청한 적 있거든요. 그들도 절단 위주로 치료하고 있는데 아마 이걸 되돌아보는 계기가 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SCI 논문 초록.

다른 하나는 몇 년 전 혹한기 훈련 중 동상에 걸렸던 한 군인을 치료할 때의 기억 때문이다. 박 원장은 "처음 동상 걸렸을 때 사진을 보면 그렇게 심한 동상은 아니었다"며 "그런데 우리 한의원에 왔을 땐 이미 수포는 물론 물집까지 다 걷어내고 소독을 한 상태였다. 너무 광범위한 부위의 표피를 걷어낸 탓에 피부가 이미 말라 비틀어져 있어서 치료가 불가능해서 안타까웠다"고 말했다. 즉 골든타임의 문제다.

논문 등재가 완료된 지금, 그는 "동상치료의 매뉴얼을 만들고 있다"고 했다. 전국 어느 한의원에서도 그가 했던 자가 복원 치료를 받을 수 있게끔 자신의 치료법을 공유할 예정이라고 한다. 한창 그가 동상치료 명의로 산악계에서 관심을 받을 땐 서울, 경기, 대구, 부산에서 광주에 있는 그의 한의원으로 산악인들이 몰아닥쳤었다. "영업 비밀 같은 것인데 그렇게 나눠도 되냐?"라고 묻자 그는 "환자들을 위해서"라고 짧고, 굵고, 높게 답했다.

박헌주 원장

산악 관련

1991년 일본 북알프스 동계종주

1992년 칸텡그리(7,010m) 한국 초등, 포베다(7,439m) 등반

1993년 에베레스트 8,100m 진출, 대통령 국민체육표창 수상

1997년 초오유(8,201m) 등정

2000년 에베레스트 등정

현 광주전남등산학교 교수(등산의학/알피니즘) 및 광주산악연맹 이사

언론 관련

1994년 광주매일신문 입사

1997년 제86회 한국기자협회 이달의 기자상, 제30회 한국기자상, 제1회 국제앰네스티 언론상

한의학 관련

2004년 동신대학교 한의학과 편입학

2008년 광주 중앙한의원 개원

중국 연변중의대 해부 및 소침도교실 수료

3도 이상 중증 동상 침구복원 치료 다수

2023년 절단위기 중증 동상 복원 치료 미국 SCI 논문 등재

월간산 12월호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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