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주 중 악보가 날아간다면?…틈새 밀고 들어오는 ‘전자악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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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심포니 관계자는 "젊은 단원들을 중심으로 전자악보를 쓰는 단원들이 차츰 늘고 있다"고 전했다.
독주회나 실내악 연주에서는 종이 악보가 전자악보에 밀리는 추세가 확연하다.
중국 피아니스트 유자왕도 실내악이나 앙코르에서 전자악보를 애용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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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주 도중 갑자기 악보가 날아간다면? 지난 12일 서울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실제 있었던 일이다. 이탈리아 고음악 앙상블 ‘일 자르디노 아르모니코’ 공연이었다. 무대 오른쪽 바이올린 연주자 앞에 놓여있던 악보가 흩날리면서 아찔한 장면이 연출됐다. 솔로 연주를 앞두고 있던 바이올리니스트는 당황한 표정이 역력했다. 옆에 있던 다른 연주자가 날쌔게 악보를 집어 올린 덕분에 아슬아슬한 차이로 연주엔 차질이 빚어지지 않았다. 반면, 태블릿 피시에 저장된 전자악보를 쓰던 젊은 바이올리니스트 2명의 표정에선 여유가 흘렀다.
오케스트라 공연에서 종이악보의 입지가 좁아지고 있다. 쉽게 넘길 수 있고, 바람에 풀풀 날릴 염려도 없는 전자악보 사용이 늘고 있기 때문이다. 태블릿 피시는 수천 권의 악보를 저장할 수 있어서 휴대성이 뛰어나고, 종이악보에 견줘 값도 싼 편이다. 무선 블루투스를 이용해 페달과 연결하면 굳이 손을 쓸 필요가 없다는 장점도 있다.
국립심포니 관계자는 “젊은 단원들을 중심으로 전자악보를 쓰는 단원들이 차츰 늘고 있다”고 전했다. 물론, 전자악보에도 단점도 있다. 무엇보다 메모하는 게 쉽지 않다. 종이악보라면 리허설에서 지휘자의 깨알 같은 지시와 요구 사항을 적어넣을 수 있는데, 전자악보는 이게 어렵다. 전자장치라 에러가 나면 ‘대형사고’로 이어질 수도 있다. 이런 이유로 전자악보를 금지하는 지휘자도 있다.
독주회나 실내악 연주에서는 종이 악보가 전자악보에 밀리는 추세가 확연하다. 지난달 금호아트홀 트리오 공연은 ‘3인 3색’이었다. 첼리스트 문태국은 종이악보, 바이올리니스트 양인모는 태블릿 피시에 페달을 연결한 전자악보를 썼는데, 피아니스트 박종해 곁에선 페이지터너가 악보를 넘겼다.
국내 공연장에서 선보인 ‘1호 전자악보’는 2012년 피아니스트 손열음 들고나온 태블릿 피시였다. 중국 피아니스트 유자왕도 실내악이나 앙코르에서 전자악보를 애용한다. 무려 12곡의 앙코르를 연주한 지난해 첫 국내리사이틀에서도 태블릿 피시를 이리저리 넘기며 곡을 고르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몇 년 전 타이밍을 잘못 맞춘 페이지터너를 흘겨보는 유자왕의 동영상이 화제에 올랐는데, 그가 전자악보를 쓰게 된 계기였다.
종이악보의 쇠퇴는 연주자 옆에 그림자처럼 붙어 악보를 넘겨주는 ‘페이지터너’의 존재도 위협한다. 독주회에선 연주자가 곡을 외워 악보를 보지 않고 치는 경우가 많지만, 실내악 공연에선 페이지터너가 꽤 중요한 역할을 담당한다. 피아니스트의 왼편 뒤쪽에 앉아 왼손으로 악보의 오른쪽 위 모서리를 잡고 넘겨야 한다는 게 페이지터너의 불문율이다. 페이지터너의 오른손과 연주자의 왼손이 부딪히는 ‘충돌사고’를 막기 위해서다. 전자악보는 이런 사고를 차단해준다. 공연장을 자주 찾는 이들이라면, 피아니스트와 페이지터너의 사인이 맞지 않아 위태로운 장면도 가끔 목도하게 된다. 전자악보를 쓰면 궁합이 맞지 않는 페이지터너와 신경전을 벌일 필요도 없다.
페이지터너는 대체로 피아노 전공 학생들이 아르바이트 정도로 하는 경우가 많아 직업이라고 하긴 어렵다. 이들에겐 눈에 띄는 옷도, 주목받는 행동도 허용되지 않는다. 무대 위에 오르지만 연주자는 아니고, 연주자의 가장 가까운 거리에서 연주를 듣지만 관객도 아닌 사람, 페이지터너. 전자악보 보급의 영향으로 ‘무대 위의 투명인간’이 되도록 요구받는 특이한 존재인 페이지터너를 볼 수 있는 날도 얼마 남지 않은 것 같다.
임석규 기자 sky@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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