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령탑마저 “끔찍한 경기” 혹평...김연경-옐레나에만 의존해온 흥국생명의 빈약한 경기력의 민낯

남정훈 2023. 12. 21. 07: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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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야말로 끔찍한 경기였다”(terrible match)

여자 프로배구 흥국생명의 사령탑 마르첼로 아본단자 감독이 20일 인천 삼산월드체육관에서 열린 2023~2024 V리그 3라운드 현대건설과의 맞대결에서 세트 스코어 1-3(25-23, 23-25, 16-25, 20-25)으로 패한 뒤 처음 남긴 말이다.
아본단자 감독 말 그대로, 이날 흥국생명의 경기력은 끔찍했다. 제대로 된 게 하나도 없었다. 심지어 현대건설은 주전 세터인 김다인이 독감 증세로 엔트리에서 제외됐다. 대신 나선 선수는 2022~2023 신인 드래프트 2라운드 1순위로 현대건설의 유니폼을 입은 김사랑이었다. 데뷔 첫 선발 출전을 한 세터로 경기를 풀어나간 팀에도 패한 것이다.

가장 큰 원인을 꼽자면 역시 리시브다. 팀 리시브 효율이 21.51%에 그쳤다. 현대건설의 리시브 효율은 37.5%. 이런 리시브 효율 차이를 이겨내긴 힘들다.

문제는 팀 리시브의 중심 역할을 해줘야 할 주전 리베로 도수빈이 34개의 리시브를 받아 세터 머리 위에 정확히 연결한 것은 6개에 그쳤다. 리시브 효율은 17.65%. 팀 리시브 효율을 끌어올려줘도 모자랄 판국에 리베로가 팀 리시브를 망쳤으니 이길래야 이길 수가 없었다.

아웃사이드 히터 김미연도 도수빈과 같은 34개의 서브를 받았다. 10개를 정확히 전달했으나 서브득점을 3개를 허용했으니 효율은 20.59%로 도수빈보다 조금 나은 수준에 불과했다. 팀 리시브의 73.1%를 책임진 두 선수의 리시브 효율이 19.12%에 그치면 아무리 세계 최고의 세터가 와도 이길 수 없다. 김연경은 12개의 서브를 받아 6개를 정확히 연결했다. 김연경이 아무리 리시브를 잘 받아도 자신에게 치지 않으면 받을 수 없는 노릇 아닌가.
리시브가 이렇게 나쁘다 보니 이원정, 박혜진, 김다솔까지 세 명의 세터들은 오픈 공격에 의존할 수밖에 없었다. 자연히 김수지, 이주아를 활용한 속공이나 이동 공격 활용은 제한됐다. 특히 김수지와 이주아는 외발 외동 공격이 특기인 선수들이지만, 이날 흥국생명의 이동 공격은 이주아가 시도한 단 1개뿐이었다.
그나마 희망적인 부분은 옐레나와 김연경의 백어택 옵션을 적극적으로 사용하려는 흔적이 보였다는 것이다. 1세트 초반엔 김연경이 라이트 백어택을 때리기도 했다. 아웃사이드 히터들은 보통 중앙 후위공격을 때리곤 하는데, 주전 세터로 나선 이원정은 1세트 초반 코트 오른쪽 후위에 위치해 있던 김연경에 백어택 토스를 올렸다.
리시브가 나쁘긴 했지만, 흥국생명의 이원정, 박혜진, 김다솔 세 명의 세터들도 패배의 책임을 피해가긴 힘들다. 기껏 수비로 걷어올려진 공을 토스한 게 상대 코트로 넘어가 다이렉트 킬을 허용하기도 했고, 공격 시도 후 넘어졌던 김연경에게 연달아 토스를 올리기도 했다. 김연경은 급하게 일어나서 점프도 하지 못하고 상대에게 공을 넘겨줘야 했다. 반대쪽의 레이나가 노블로킹 상황에 놓여있었는데도 전혀 활용하지 못했다. 접전 상황에서 토스의 높낮이를 조절하지 못해 옐레나와 김연경이 페인트로 넘겨야 했던 공이 너무나도 많았다. 아본단자 감독도 “세터는 2명으로 좁혀야 한다. 보통 김다솔은 원포인트 서버로 활용하곤 했는데, 오늘은 이원정과 박혜진이 너무 좋지 않아서 세터로도 활용해야 했다. 오늘 경기력을 보니 세터 역할을 해줘야 할 두 명을 누굴 꼽아야할지 모르겠다. 더 지켜봐야겠다”라고 말했다.
잦은 범실도 문제였다. 이날 흥국생명이 저지른 범실은 29개. 반면 현대건설은 13개였다. 상대에게 거저로 16점을 더 줬으니 어떻게 이길 수 있을까. 특히 서브 범실이 13개나 됐다. 상대 리시브를 흔들 강한 서브를 구사하는 선수도 딱히 없는 흥국생명인데, 플로터 서브도 코트에 걸리거나 엔드라인, 사이드 라인 밖으로 벗어났다.

아본단자 감독도 서브 범실에 대해 아쉬워했다. 그는 “서브는 오롯이 서버 개인의 결정이라 제가 설명하기도 어렵다. 훈련도 많이 하고 이야기도 많이 나눴는데, 마인드나 감정의 문제라고 본다”고 말했다.

흥국생명은 현대건설전 패배로 시즌 첫 연패(2연패)를 당했다. 승점 36(13승4패)으로 선두 현대건설(승점 40, 13승4패)과의 격차는 아직 4에 불과하다. 역전할 여지는 얼마든지 있다.
다만 이날 보여준 경기력으론 어렵다. 흥국생명은 올 시즌 치른 17경기 중 7번이나 풀세트 접전을 치렀다. 그나마 5세트까지 간 경기를 5승2패의 고승률을 거뒀지만, 5세트까지 갔다는 것 자체가 상대를 압도하는 경기력이 좀처럼 나오지 않는다는 얘기다.
흥국생명은 팀 블로킹도 1.986개로 5위에 그쳐있고, 팀 리시브 효율도 30.91%로 6위다. 세트당 20.942개로 전체 1위인 디그를 앞세워 수비로 걷어올려진 공을 김연경과 옐레나 ‘쌍포’의 위력으로 이겨내야 하는 팀이다. 그간은 두 선수의 개인기에 의존했지만, 이제는 팀 전체가 두 선수가 짊어진 어깨의 부담을 나눠가질 수 있는 움직임이 필요하다. 마침 이날 상대한 현대건설은 미들 블로커 활용이나 각 요소요소마다 선수들의 유기적인 끈끈함이 돋보였다. 이대로 가면 흥국생명과 현대건설의 격차는 더 커진다.

인천=남정훈 기자 che@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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