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일논단] 각자도생의 서글픈 한해 보내기

김정구 가톨릭대 대전성모병원 외과 교수 2023. 12. 21.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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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 대학교수들이 뽑은 올해의 사자성어가 '견리망의(見利忘義)'라는 기사를 보았다.

그러고 보니 올 한 해 우리는 싸움판 같은 각자도생의 시간을 보낸 듯하다.

하지만 치열한 경쟁 속에 타인과 공동체는 간혹 나의 각자도생에 방해가 될 수도 있다.

그리고 한 해를 정리하는 지금, 각자도생에 노력하는 우리 모두에게 위로를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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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구 가톨릭대 대전성모병원 외과 교수

며칠 전 대학교수들이 뽑은 올해의 사자성어가 '견리망의(見利忘義)'라는 기사를 보았다. '이로움을 보니 의로움을 잊는다'라는 뜻이라고 한다. 대략의 의미는 이해가 가나 왜 이 글귀가 교수들로부터 가장 많은 표를 얻었을까? 라는 생각은 이를 추천한 김병기 전북대 명예교수의 설명으로 잘 알 수 있다. 김 교수는 "지금 우리 사회는 견리망의가 난무해 나라 전체가 마치 '각자도생'의 싸움판이 된 것 같다"라는 추천의 이유를 밝혔다. 견리망의보다는 각자도생이라는 말이 더 와닿는 말인 것 같다. 그러고 보니 올 한 해 우리는 싸움판 같은 각자도생의 시간을 보낸 듯하다.

'제 살길을 스스로 찾는다'라는 의미의 각자도생(各自圖生)이라는 말은 요즘 같은 난세를 살아가기 위한 가장 적합한 생존방식이라고 많은 사람이 이야기한다. 이런 현실은 예측이 어렵거나 불가능한 미래에서 기인하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일까? 각자도생이라는 말에서 긍정적인 분위기가 많이 느껴지지 않는다. 이 말의 긍정성을 변론하는 입장에서 말해 보면 우선 각자도생이라는 말은 개개인의 견해와 판단이 중요하다는 뜻이기도 하다. 정답이 없는 인생에 다른 사람의 눈치를 볼 필요가 없다는 의미다. 이것은 단지 개인에게만 해당되는 이야기는 아니다. 국가 간에도 해당된다. 양적성장이 중요하던 시절 우리에게 모범이 될 만한 여러 나라들이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어떤가. 계층 간의 이해가 충돌하고, 갈등이 난무하는 이 시대에 미국이나 유럽의 선진국을 포함해 그 어느 나라도 모범이 될 만한 나라가 없다. 우리의 문제는 우리가 해결해야 하는 각자도생의 세계에 살고 있는 셈이다.

하지만 각자도생이라는 말은 씁쓸한 현실과 함께 더 자주 듣는다. 이 말은 더 이상 집단이나 사회가 개인의 문제를 해결해 줄 수 없다는 말로도 쓰인다. 피해의 규모를 달리하며 발생하는 사건과 사고 속에서 내 몸은 내가 먼저 스스로 챙겨야 한다는 뜻이다. 국가나 사회가 언제, 얼마나 나서야 하는가에 논의는 대부분 결론을 내기 힘들다. 그래서 아쉬우면 개인이 나서야 한다는 것이다.

각자도생이라는 말은 한편으로는 냉정하다. 나도 어려운데 남을 돌아볼 여유는 당연히 없기 때문이다. 세상과 떨어져 사는 자연인이 아닌 이상 우리는 최소한 그 어느 누구와 함께 산다. 하지만 치열한 경쟁 속에 타인과 공동체는 간혹 나의 각자도생에 방해가 될 수도 있다. 이런 생각들이 깊어지면 공동체나 국가의 존재와 의미에 대한 허무주의로 흐르기 쉽다. 타인에 대한 배려나 공동의 이익과 규칙도 설 자리가 줄어든다. 사회의 분위기는 삭막해진다. 뒷좌석의 승객보다 내 좌석을 최대한 눕혀 편하게 가는 사람의 논리도 각자도생 시대의 민망한 모습이다.

각자도생은 삶을 대하는 우리의 기대치를 떨어뜨린다. 인생을 바라보는 우리의 자세는 발전이라는 개념보다는 생존전략에 더 많이 무게를 둔다. 이런 상황에서 예술이나 여유 그리고 만족이나 행복감을 이야기하는 것은 사치스러울 뿐이다. 떨어져서 멀리 보기보다는 인생을 향한 시야는 짧고 좁아지며,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요령이 중요해진다.

각자도생이라는 말은 사회나 국가의 통치 부담을 덜어주는 효과가 있다. '결국 모든 상황은 각자의 문제이고 해결도 각각의 일이다'라는 논리가 지배적인 사회에서 사회적 책임을 이야기하기는 힘들다. 어쩔 수 없다는 불가항력의 상황이 많아지고 운이나 운명도 성패를 결정하는 하는 무시 못할 요소가 된다. 각자도생의 삶의 방식이야 어쩔 수 없다고 하지만, 각자도생의 시대는 빨리 끝났으면 한다. 그리고 한 해를 정리하는 지금, 각자도생에 노력하는 우리 모두에게 위로를 보낸다. 최소한 생존하고 있다는 것은 그나마 성공했다는 의미다. 김정구 가톨릭대 대전성모병원 외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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