웹툰 〈나쁜 마법사의 꿈〉, 정의롭다는 착각 속에 ‘악’은 존재한다 [K콘텐츠의 순간들]
“증오와 분노, 이런 것들은 마치 전염병과 같아. 매번 방향과 목적을 바꿔가며 여기저기 생채기를 내지.” 웹툰 〈나쁜 마법사의 꿈〉에 등장하는 대사다(77화 중). 이 만화는 마법사나 마법청, 마법학교와 악마가 존재하는 세계관을 갖고 있다. 마법으로 뒤덮여 있는 세계이지만, 정작 주인공은 마력 하나 없는 일반인 ‘대아’다. 처음엔 전산 오류로 마법학교에 입학하게 되었으나 이후 대악마와 계약하며 마법사들에게 필적할 힘을 갖게 된다.
대아의 목표는 단 하나, 이 학교에서 사라진 친누나 ‘지금’을 찾아내는 것이다. ‘지금’은 사상 최악의 마법인 ‘상실의 마법’에 공격당해 세계에서 사라졌다. 상실의 마법은 ‘죽음의 마법’과 다르다. 죽음의 마법을 맞으면 곧바로 죽어버리는 데에 비해, 상실의 마법에 당하면 ‘마법사의 행성’에 빨려 들어간다. 마법사들이 가진 힘의 원천이 이 행성이지만, 정작 이 행성에 들어오면 모두 숨이 막혀 죽어버리기 일쑤다. 상실의 마법에 당한 사람들은 이 행성에서 목숨을 잃고 동시에 주변 사람의 기억에서마저 잊힌다. 마치 처음부터 없던 사람인 것처럼. 그러나 어떤 이유에서인지 ‘지금’은 ‘마법사의 행성’에서 죽지 않고 살아남았다. 단, 본래의 세계로 건너오진 못한 채다. 동생인 ‘대아'와 친구인 ‘예나’는 ‘지금’을 기억하며, 그를 되살리기 위해 안간힘을 쓴다.
작중 세계관에서 마법사와 악마, 인간은 매우 복잡한 관계를 맺고 있다. 오랜 역사 속에 얽히고설킨 관계이지만 이들을 통과하는 핵심 요소는 바로 ‘상실의 마법’이다. 인류 최악의 마법인 ‘상실의 마법’을 탄생시키고야 만 존재, 그 마법이 생겨난 이유, 그 마법을 쓰지 못하게 하려는 무리와 악용하려는 사람들 등 작중 인물들은 ‘상실의 마법’을 통해 이리저리 뒤엉켜 있다. 이를테면 마법청에 대항하는 마법사 단체 ‘하트스케일'은 대악마 중 하나인 ‘분노의 악마’를 불러내기 위해 아무 죄 없는 사람들에게, 도시째로 ‘상실의 마법’을 시전한다. 1000명이 넘는 사람에게 상실의 마법을 시전하면 하늘이 찢어지면서 분노의 악마가 내려오기 때문이다. 하트스케일은 ‘분노의 악마’가 가진 힘을 손에 넣기 위해 한 번도 아니고 여러 번 몇 개의 도시를 ‘상실’시킨다.
하트스케일이 그렇게까지 힘을 탐하는 건, 아이러니하게도 그들 역시 소중한 사람을 ‘상실의 마법’으로 인해 잃었기 때문이다. 그때 상실의 마법을 쓴 건 현재의 마법청장 ‘황금성’이었다. 하트스케일은 황금성에게 복수하기 위해 대악마를 모으고 있지만, 힘을 갖기 위해 다른 사람들을 가차 없이 죽인다는 점에서 그와 크게 다르지 않다. 심지어 타도해야 할 대상으로 여겨지는 마법청장조차 과거에 상실의 마법을 시전해야 하는, 그 나름의 이유가 있었다. 상실의 마법이 인류에게 너무나 위험한 마법이니, 그 마법을 연구하고자 하는 집단을 아예 지도에서 없애야겠다고 판단했던 것이다.
“증오와 분노를 거절하라”
마법학교를 통째로 없애버리려 했던 황금성도, 마법청장과 싸우기 위해 사람을 1000명이나 죽이는 하트스케일도, 자신이 가르치던 학생 ‘지금’을 상실의 마법으로 없애버린 교장에게도, 제각기 목표와 이유가 있다. 게다가 이들을 추동하는 것은 다름 아닌 정의(正義)다. 각자가 품은 정의를 실현하기 위해 이들은 눈앞의 사람들을 가차 없이 공격하고, 끌어내어 위험에 빠뜨리고, 아무런 가책 없이 죽이기까지 한다. 자신이 이루고자 하는 목적을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이들이지만, 정작 그렇게 했기 때문에 도리어 무엇을 위한 복수였는지 그 목표를 잃어버리고 만다.
‘상실의 마법’은 왜 생겨난 걸까. 이를 알기 위해서는 악마가 탄생한 시점으로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본래 이 세계에서 악마는 처음부터 ‘있는’ 존재가 아니었다. 오히려 역사 안에서 오랫동안 악마라고 불린 건, 마법을 악독한 방식으로 자행해온 일부 마법사였다. 마법사들은 자신이 가진 힘을 인간들에게 과시하며 기꺼이 악마도, 신도 자처해왔다. 그게 무너진 건 세계대전 이후다. 마력 하나 없는 인간들이 발명해낸 핵폭탄의 위력을 보고 마법사 무리는 자신들의 지위를 잃을까 몹시 두려워했다. 강력한 마법을 새롭게 연구하기 위해, 이들이 합심하여 만들어낸 것이 바로 최초의 악마 릴리스다.
마법사들은 악마가 강력한 마법을 알아내주길 바라며 릴리스를 창조했다. 그러나 릴리스는 정작 태어나자마자 홀연히 사라져버렸다. 그는 마법사가 닿지 않는 곳에서 인간과 사랑에 빠져 인간의 모습으로 가정을 꾸렸다. 아이를 낳고 평범하게 살아가는 릴리스를 기어이 ‘악마’로 만든 건 마법사들이다. 마법사의 건재를 위해 마법사들은 릴리스의 악마성을 깨우려 했다. 이 과정에서 릴리스는 남편과 아이를 잃었다. 이때 경험한 깊은 상실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마법이 바로 ‘상실의 마법’이다. 이 마법은 연구를 통해 만들어진 게 아니다. 마법사들이 자행한 끔찍한 폭력을 바탕으로 릴리스가 경험한 것이 곧 마법의 형태를 띤 것이었으니까. 릴리스의 후예인 악마들은 오히려 이 마법을 다시 인류에게서 거두려 노력하고, 마법사들은 이 마법을 통해 자신의 ‘정의’를 달성하려 한다.
마법사들에겐 저마다 정의를 실현해야 하는 그 자신만의 동기가 분명히 있었다. 그러나 어느 순간 정의감에 도취하여 목표를 잃어버리고 만다. 하트스케일이 그랬던 것처럼, 내가 정의를 실현하고 있다는 착각에 빠져들면 그 방향은 잊어버린 채 오로지 타오르는 데에만 집중하기 쉽다. 하트스케일을 만든 ‘최종성’은 분노의 악마와 싸우기 위해 1000명보다도 훨씬 많은 사람에게 상실의 마법을 시전하는데, 이때 희생자 중에는 종성의 동생도 포함되어 있었다. 당연하지만, 종성은 자신이 무엇을 잃었는지조차 깨닫지 못한다. 그는 이후 무엇을, 왜, 어떻게 잃었는지 알 수 없지만 무언가 중요한 것을 잃은 듯한 깊은 고통에 빠져들고 만다.
“어떤 대단한 이유가 있든지 그런 건 중요하지 않아. 너희들은 이 증오와 분노를 단호히 거절해라(77화 중).” ‘대아’와 함께 싸우는 친구 ‘조재’의 아버지가 하트스케일, 마법청장과 맞서 싸우려는 대아에게 건네는 말이다. 이 문장을 한국 사회에 그대로 옮겨 오고 싶다. 어떤 대단한 이유가 있든, 어떤 거대한 정의가 있든 증오와 분노만으로는 아무것도 해결할 수 없다고 말이다. 〈나쁜 마법사의 꿈〉에 등장하는 악마는 악하지 않았다. 도리어 정의를 위한다는 마법사들이 더 순전한 악에 가까웠다. 악은 우리와 다른 괴물이 아니라 바로 우리 안에 있으며, 악행을 저지르는 이들은 자신이 정의를 일궈내는 것으로 착각한다는 진실이 이 작품 안에 담겨 있다. 그런즉 우리는 눈앞의 타인을 비난할 게 아니라 그 누구보다도 나 자신을 응시해야 한다. 내가 정의롭다고 여겨지는 순간이라면 더더욱.
조경숙 (만화평론가) editor@sisain.co.kr
▶좋은 뉴스는 독자가 만듭니다 [시사IN 후원]
©시사IN,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Copyright © 시사IN.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