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놀이’ 눈총받는 은행… 2024년엔 먹고 살 걱정에 자구노력 ‘고삐’ [심층기획]

이병훈 2023. 12. 21. 06: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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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융권, 수익성 악화 우려 ‘비상’
하나금융硏, 2024년 은행순익 1.4%↑ 전망
금감원 “NIM 등 하락… 수익 둔화” 예상
美 금리 인하 땐 국내 금리 하락 불가피
‘대손충당금’ 적립 확대도 부메랑 가능성
업계, 수수료 등 ‘비이자이익’ 묘책 골몰
금융위, ‘비금융업 新사업’ 활성화 독려
국내 은행산업 세계 경쟁력 확보 박차
“자금조달력 높여 해외금융 의존 탈피”

은행업계가 “이자 장사, 돈놀이”라며 정부와 금융 당국의 질타를 받고 있지만, 은행권은 도리어 수익성 하락을 우려하고 있다. 고금리가 지속되던 환경이 내년 하반기부터 금리 인하 국면에 들어설 것으로 전망돼 이자수익이 감소할 것으로 예상된다. 부실에 대비해 대규모로 충당금을 늘린 점도 영향을 미쳤다. 이에 은행권 내부에서도 이자수익에 의존하는 기존의 체계에서 벗어나 비이자수익 확충, 글로벌 시장 비중 확대 등의 자구책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20일 금융권에 따르면 하나은행 하나금융연구소가 최근 펴낸 ‘2024년 금융산업 전망’ 보고서는 내년 국내은행의 순이익 규모를 21조3000억원으로 전망했다. 올해 순이익(21조원) 대비 1.4% 성장에 그치는 수준이다. 코로나19 대유행으로 고금리 기조가 본격화한 2021년(16조9000억원)부터 올해까지는 은행 순이익이 연평균 7.5% 성장했지만, 내년에는 소폭 성장에 그칠 것이라는 전망이다.
국내은행의 내년 자기자본이익률(ROE)은 7.7%로 전년 대비 0.2%포인트 하락할 것으로 예상됐다. ROE는 기업의 대표적 수익성 지표로, 주주가 갖고 있는 지분에 대한 이익의 창출 정도를 나타낸다. 은행 ROE는 2020년 5.5%를 기록한 이후 4년 연속 오르다 내년 상승세가 꺾일 것으로 예상됐다. 은행의 수익성 하락이 예상되는 것이다.

은행 내부에서 이야기하는 ‘배부른 위기론’이 아니어서 이목을 끈다. 금융 당국도 향후 은행권의 수익성이 둔화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금융감독원은 최근 “올해 들어 순이자마진(NIM)과 ROE 등 지표가 하락하며 수익성이 점차 둔화하고 있다”고 평가했다. 주요 지표는 이미 둔화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금감원에 따르면 국내은행(시중·지방·인터넷·특수은행)은 올해 3분기에 총 5조4000억원의 당기순이익을 거뒀다. 전 분기(7조원) 대비 23.9% 감소한 수치다. NIM은 지난해 4분기 고점을 찍은 뒤 하락하고 있다. NIM은 은행의 핵심 수익성 지표로, 이자수익에서 이자비용을 뺀 뒤 관련 자산 총액으로 나눠서 산출한다.

이처럼 은행권에서 내년 본격적인 수익성 악화가 전망되는 가장 큰 이유는 고금리 상황이 종료 국면을 보이기 때문이다. 최근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는 내년 금리 인하를 시사했다. 한국도 장기간 기준금리 동결이 이뤄지면서 내년부터 금리 하락기가 올 것이라는 전망이 지배적이다. 금리 인하로 은행 시중금리가 하락하면서 이자이익이 감소하면 은행권의 수익성은 큰 폭으로 악화할 것으로 예상된다.

하나금융연구소의 보고서에 따르면 내년 국내은행의 NIM은 1.67%로 올해 정점을 기록한 뒤 내리막을 탈 것으로 예상됐다. 국내은행 NIM은 2020년 1.41%로 저점을 기록한 이후 4년 연속 증가해 올해는 1.6%대 후반 달성이 예상되나, 내년에는 금리 인하 영향으로 NIM 상승세가 꺾일 것이라는 예상이다.
대출 연체율이 급증하면서 건전성 관리를 위해 은행권이 대손충당금을 늘리고 있는 점도 수익성 악화 요인이다. 대손충당금이란 금융사가 고객들에게 대출을 실행할 때 돌려받지 못할 경우에 대비, 손해액을 미리 수익의 일부로 충당해 두는 돈을 말한다. 대손충당금은 회계상 비용으로 분류돼, 이를 늘리면 수익성은 악화한다. 올해 1∼3분기 5대(KB국민·신한·하나·우리·NH농협) 금융지주가 적립한 대손충당금 규모는 6조8892억원으로 전년 동기(3조3766억원)보다 2배 이상 급증했다. 당국은 올해 부실에 대비해 은행 등 금융권에 대손충당금을 늘릴 것을 주문해 왔다.

보고서는 “자산규모 대비 이익창출력을 의미하는 구조적이익률은 2022년을 정점으로 하락 추세로 접어들었고, 대손비용률이 상승하며 내년 ROE는 하락할 것”이라며 “2024년 하반기 기준금리 인하로 NIM 하락세 전환이 예상된다”고 짚었다.

은행의 수익성 확보가 어려워지면 자금경색 등 유동성 악화로 인한 기업 경영의 불안정성 증대는 물론이고, 금융위기나 지정학적 갈등 등으로 인한 외부의 충격에 대한 대응력이 약해질 위험이 있다. 고위험 투자 등의 유혹으로 금융시스템의 안정성도 훼손하게 되는 요인이 될 수 있다. 실리콘밸리은행(SVB)은 벤처기업 대상 대출 등 고위험 상품을 전문으로 영업하다 유동성 위기를 맞아 결국 파산했다.

이에 금감원도 “은행이 리스크 관리를 강화하고, 대손충당금 적립 확대 등을 통해 충분한 손실흡수능력을 갖출 수 있도록 지속 유도할 계획”이라며 건전성 확보를 강조하기도 했다.

은행권 내부에서도 수익성 개선의 필요성을 제기하고 있다. 수수료 등 비이자이익 확대는 당국에서도 언급되는 주요 논의 사항이다. 올해 1∼3분기 5대 시중은행의 비이자이익 비중은 채 10%도 되지 않는다. 은행권이 정부로부터 “이자 장사”라고 질타를 당한 이유다.
올해 7월 금융위원회는 은행의 수익 구조 개선을 위해 비이자이익 부문 활성화 방안을 내놨다. 은행의 자산관리서비스를 활성화하고, 기존 부동산 관련 자문만 가능했던 투자자문업을 금융상품 자문도 가능토록 했다.

새로운 서비스 등장을 유도하기 위해 은행의 비금융업 수행도 합리적 범위 내에서 허용한다. 신한은행의 배달 애플리케이션(앱) ‘땡겨요’, KB국민은행의 알뜰폰 사업 ‘리브엠’과 같은 비은행사업이 늘어나는 효과를 가져올 전망이다.

은행의 글로벌 경쟁력 확보도 수익성 개선을 위한 주요 과제다. 지난해 말 기준으로 NH농협은행을 제외한 4대 금융지주의 수익 중 글로벌 비중은 14% 수준에 그친다. 동남아시아 진출, 인수합병(M&A)을 적극적으로 거치며 지난해 기준 30% 후반대를 기록한 일본의 은행보다 현저히 낮은 규모다. 은행연합회도 “우리나라는 글로벌 경제 선진국임에도 국내 은행산업의 경쟁력은 이에 미치지 못하는 상황”이라고 성토했을 정도다. 이에 금융지주 수장들은 글로벌 비중을 최대 40%까지 높이겠다고 선언하며 시장 확대에 나섰다.

은행연합회 측은 “우리나라 실물경제가 해외 진출 시 외국계 금융회사에만 의존하지 않기 위해서는 국내은행의 경쟁력 강화가 필요하다”며 “국내은행이 경쟁력을 강화하기 위해서는 자본시장에서의 자금 조달 능력을 높이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이병훈 기자 bhoon@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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