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주완·노태문·황현식·최창원 ‘총수의 믿을맨’…강희석·김교현은 ‘방출 시련’
[비즈니스 포커스]
삼성·SK·LG 등 주요 그룹의 2024년도 정기 인사가 마무리됐다. 글로벌 경기침체 속 경영 불확실성에 대비해 변화보다 안정을 추구했다. 이 가운데 인적쇄신을 위한 세대교체도 이뤄졌다.
견조한 실적으로 칼바람을 피한 ‘믿을맨’ 최고경영자(CEO)와 임무를 마치고 일선에서 물러나 ‘방출맨’ CEO를 살펴봤다.
1. 조주완 ‘뉴LG’ 이끄는 젊은 리더
조주완 LG전자 사장은 연말 LG그룹 정기 임원인사에서 유임돼 2024년에도 계속 지휘봉을 잡게 됐다. LG그룹이 이번 인사에서 실적이 좋지 않은 계열사 CEO를 교체하며 성과주의에 기반한 신상필벌로 인적쇄신을 꾀한 가운데 조 사장이 이끄는 LG전자는 업황 글로벌 경기침체 속에서도 최대실적을 견인했다.
LG전자는 올해 2개 분기 연속 영업이익에서 삼성전자를 추월했다. 3분기 연결 영업이익이 9967억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33.5% 증가했다. 직전 분기인 2분기(7419억원)보다 34.3% 늘었다. 3분기 영업이익은 2020년 1조738억원에 이어 두 번째로 많다.
특히 미래 먹거리인 전장(자동차 전기·전자 장비) 사업이 3분기 매출 2조5035억원, 영업이익 1349억원을 기록해 호실적을 견인했다. 전장 사업은 2022년 첫 연간 흑자를 기록했고 올해 처음으로 연간 매출액 10조원을 돌파할 것으로 예상되는 가운데 빠른 속도로 성장 중이다. 연말 수주 잔고가 100조원에 육박할 것으로 예상된다.
조 사장은 이번 인사에서 부회장 승진 가능성이 제기됐으나 LG그룹이 부회장단을 축소하고 젊은 경영진 중심으로 세대교체를 단행하면서 LG전자 대표이사 자리를 유지했다. 하지만 그룹 안팎에선 차기 부회장 후보 1순위로 꼽힌다.
조 사장은 구광모 회장 취임 이후 부활시킨 최고전략책임자(CSO) 출신으로, 스마트폰 사업 철수 등 과감한 사업 구조조정을 통해 프리미엄 가전과 전장 등 구 회장이 점찍은 미래 성장동력을 집중 육성하는 역할을 맡아왔다. LG전자가 2020년 세계 3위 자동차부품 업체인 마그나인터내셔널과의 합작법인 설립을 추진할 때도 조 사장이 협상 역량을 발휘한 것으로 전해진다.
2. 노태문, JY 재신임 받은 ‘미스터 폴더블’
삼성전자의 모바일 수장인 노태문 MX사업부장(사장)도 이번 삼성전자 사장단 인사에서 유임돼 2024년에도 갤럭시를 이끌게 됐다. 노 사장이 이끄는 MX 사업부는 올해 반도체 업황 부진에도 전사 실적 방어에 구원투수 역할을 했다.
올해 3분기 반도체(DS) 부문은 3조원대 중반 영업손실을 기록했지만, MX 사업부는 3조3000억원의 영업이익을 달성했다. 3분기까지 누적 영업이익은 10조2800억원에 달한다. 특히 지난 7월 출시된 플래그십 신모델 Z플립5와 Z폴드5가 3분기 실적을 견인했다.
그동안 ‘폴더블폰 대중화’에 힘을 실어온 노 사장의 전략도 순항하고 있다. 시장조사업체 IDC에 따르면 올해 폴더블폰 시장 규모는 2140만 대 수준으로 전년 대비 50% 이상 성장할 전망이다.
폴더블폰이 스마트폰 시장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아직 1% 남짓이지만, 2027년 3.5%까지 늘어날 것으로 예상돼 폴더블폰 시장이 커질수록 삼성전자의 수혜 기대감도 커지고 있다.
노 사장의 다음 승부처는 ‘인공지능(AI)’이다. 노 사장은 2024년 1월 AI 기술로 ‘실시간 통화 통역’ 기능을 포함한 다양한 AI 신기능이 탑재된 세계 최초의 AI폰 ‘갤럭시S24’를 공개할 예정이다.
3. 황현식, 위기 속 빛난 리스크관리 능력
올해 LG그룹 인사의 또 다른 관전 포인트는 황현식 LG유플러스 사장의 유임 여부였다. 황 사장에게 2023년은 개인정보 유출과 인터넷 장애 사태 등으로 녹록지 않은 한 해였기 때문이다.
황 사장은 직접 나서 대국민 사과를 하고 “이번 사고는 중대한 사안으로, 모든 사업의 출발점은 고객이라는 점을 되새겨 고객 관점에서 기본부터 재점검하고 보안 품질이 가장 강한 회사로 탈바꿈하겠다”고 약속했다. 보안과 품질 등 기본을 강화하는 ‘사이버 안전혁신안’에 기존 대비 3배 수준으로 늘린 1000억원을 투자한다고 발표했다.
개인정보 유출과 인터넷 장애 사태를 빠르게 수습하며 리스크관리 능력을 발휘한 결과 이번 인사에서 유임되며 구광모 회장의 변치 않은 신임이 확인됐다는 평가다.
경영 성과도 탁월했다. 황 사장은 탈통신을 위한 신사업 발굴에 힘쓰며 유무선 사업의 실적을 고르게 성장시켰다. 통신업계 만년 3위에서 이동통신 가입자 수에서 KT를 제치고 2위에 등극했다. 2022년 창사 이래 첫 영업이익 1조원 시대도 열었다.
이번 유임으로 황 사장의 ‘유플러스 3.0’ 전략 추진에도 탄력이 붙을 전망이다. 라이프스타일, 놀이, 성장케어, 웹 3.0 등을 주축으로 한 4대 플랫폼 중심의 중장기 성장전략이다. 황 사장은 신사업을 확장해 현재 6조원 안팎인 기업가치를 2027년 12조원으로 높인다는 목표다.
4. 최창원 ‘서든데스’ 위기 속 SK 2인자로 등판
최태원 SK그룹 회장은 ‘서든데스(돌연사)’ 위기에서 사촌동생인 최창원 SK디스커버리 부회장을 구원투수로 등판시켰다.
최 부회장은 SK그룹 컨트롤타워인 수펙스추구협의회 의장에 선임됐다. 최 의장은 고(故) 최종건 SK그룹 창업회장의 셋째 아들이다.
최 의장은 2007년 SK케미칼 대표이사 취임에 이어 2017년 중간 지주회사인 SK디스커버리 대표이사를 맡아 SK의 케미칼, 바이오 사업을 이끌어 왔다. SK그룹은 이번 선임에 대해 “최 의장이 앞으로 각 사의 이사회 중심 경영과 그룹 고유의 ‘따로 또 같이’ 경영 문화를 발전시킬 적임자라는 데 관계사 CEO들의 의견이 모아져 신임 의장에 선임됐다”고 밝혔다.
최 회장은 장녀 최윤정 SK바이오팜 전략투자팀장, 차녀 최민정 SK하이닉스 전 팀장, 장남 최인근 SK E&S 북미법인 패스키 매니저 등 세 자녀를 두고 있다. 이번 인사에서 장녀 최윤정 팀장은 사업개발본부장으로 승진해 그룹 내 최연소 임원이 됐다.
최 회장의 자녀가 20대 후반~30대 중반으로 승계를 논하기에는 아직 이르다. 업계에선 최 회장이 친동생인 최재원 SK그룹 수석부회장뿐만 아니라 사촌동생인 최 의장을 승계 후보로 염두에 두고 있다는 해석이 나오고 있다.
5. 구광모號 세대교체, ‘44년 LG맨’ 퇴장
LG에너지솔루션을 이끌어온 권영수 부회장은 LG그룹의 2024년 정기 임원인사에서 용퇴했다. 권 부회장은 1979년 LG전자에 입사한 뒤 44년 동안 몸담은 ‘44년 LG맨’이다.
권 부회장은 LG에너지솔루션을 명실상부 글로벌 최고의 배터리 기업으로 키워냈을 뿐 아니라 한국 배터리산업의 위상도 한 단계 드높였다는 평가를 받는다. 2021년 11월 LG에너지솔루션 사령탑으로 부임한 뒤 기업공개(IPO)를 성공적으로 이끌며 LG에너지솔루션을 국내 시총 2위 기업으로 만들어냈다.
이후 제너럴모터스(GM), 혼다, 도요타, 현대차, 스텔란티스 등 전 세계 최고의 완성차 업체들과 합작법인(JV) 및 공급 계약을 연이어 발표하며 취임 당시 200조원 안팎이던 수주 규모를 500조원까지 늘렸다. 차기 포스코 수장으로 거론될 만큼 큰 족적을 남긴 전문경영인으로 향후 행보에도 관심이 쏠리고 있다.
6. 이명희 칼바람 인사에 물러난 ‘정용진의 남자’
올해 신세계그룹 인사에서는 정용진 부회장의 최측근으로 ‘정용진의 남자’로 불리던 강희석 이마트 대표가 경질됐다.
신세계그룹은 통상 10월에 진행하던 정기 임원인사를 9월로 한 달 앞당겨 창사 이래 최대 규모의 물갈이 임원인사를 단행했다. 이명희 회장이 직접 진두지휘한 이번 인사에서 핵심 계열사인 (주)신세계·이마트·이마트에브리데이(슈퍼마켓)·이마트24(편의점)·조선호텔·스타벅스 6곳 중 스타벅스를 제외한 5곳의 대표가 모두 교체됐다.
이 과정에서 임기를 약 2년 반 남겨두고 있던 강 전 대표가 물러나면서 사실상 경질이라는 분석에 힘이 실렸다. 이마트는 실적 부진 속 올해 상반기 쿠팡보다 매출액에서 뒤지면서 ‘유통 업계 1위’ 타이틀을 내줬다. 이마트의 실적악화, 잇단 조 단위 M&A에 따른 재무 부담, 지마켓 투자 실패 등 위기감이 반영된 인사라는 해석이 나왔다.
7. ‘39년 롯데맨’ 김교현, 7년 만에 물러나
올해 롯데그룹이 젊은 리더를 전진배치하는 세대교체 인사를 단행한 가운데 그룹의 핵심인 화학사업을 이끌어온 김교현 부회장이 용퇴하고 후임으로 롯데지주 ESG경영혁신실장 이훈기 사장이 새로운 화학군 총괄 대표에 올랐다.
김 부회장은 롯데케미칼 말레이시아 석유화학 자회사인 LC타이탄의 인수와 성장을 주도하는 등 성과를 냈지만, 업황 악화로 실적 부진을 겪으면서 롯데 입사 39년 만에 물러나게 됐다.
안옥희 기자 ahnoh05@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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