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멜레온 같은 초보감독' 유병훈이 쓰는 '안양 승격노트 첫장'[스한 인터뷰]
[안양=스포츠한국 김성수 기자] 프로 감독 선임 한 달도 되지 않은 사령탑이 감독실로 찾아온 기자에게 건넨 첫 인사에는 작은 떨림이 서려있었다. 수석코치 시절 팀 전술 구상에 있어 중추적인 역할을 하고, 감독대행도 맡는 등 산전수전을 다 겪었지만 기자와의 일대일 대면 인터뷰는 처음이었기 때문.
하지만 이후 '보여주고자 하는 축구'와 '팀의 방향성'에 대해 말하는 그의 목소리는 결연한 의지로 가득했다. K리그에서 잔뼈가 굵은 감독들과 함께하고 매순간 메모하며 그들의 색깔을 모두 흡수한 덕에 '카멜레온'과 같은 느낌 역시 풍겼다.
스포츠한국은 프로축구 K리그2 FC안양의 새로운 사령탑 유병훈 감독을 경기도 안양종합운동장에서 만나 그의 지도 철학, 영향을 받은 인물, 승격을 향한 의지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유 코치'에서 '유 감독'으로, "축구로 팬들 우려 씻겠다"
안양은 지난 7일 "제7대 감독으로 유병훈 신임 감독을 선임했다"고 밝혔다. 2013년 안양의 창단멤버로 합류했던 '코치' 유병훈이 10년 만에 팀의 선장이 되는 순간이었다.
"프로팀 감독을 하고 싶다는 꿈은 항상 꾸고 있었는데 막상 이뤄지니 먹먹하더라. 코치로서 다음 시즌을 준비하던 중에 갑자기 감독직을 제안 받아 당황스럽기도 했다. 하지만 이우형 감독님(현 안양 테크니컬 디렉터)이 그동안 많은 믿음과 조언을 주셨기에 자신 있게 감독직을 수행해 나갈 것이다."
유병훈 감독과 깊은 인연을 자랑하는 인물은 K리그에 이우형 테크니컬 디렉터뿐만이 아니다. 유 감독의 안양 수석코치 시절 사령탑(2015~2016)이었던 부천FC 이영민 감독, 아산 무궁화(현 충남 아산FC) 수석코치 시절 사령탑(2018)이었던 경남FC 박동혁 감독과는 당장 다가오는 시즌부터 '승격 전쟁'을 치러야 한다.
"이영민 감독님은 '유 코치, 아니 유 감독 축하해'라며 연락을 해주셨고, 박동혁 감독님은 "일단 해 보면 알 거야 형, 이제 고생 시작이야"라고 웃으며 축하해주더라(웃음). 박 감독이 지난 5일 경남 사령탑으로 부임했을 때 축하를 전했는데, 이틀 만에 반대로 축하를 받는 입장이 됐다."
2022시즌 정규리그 2위로 K리그2 플레이오프, 2023시즌 정규리그 3위로 K리그 승강 플레이오프까지 진출했던 안양은 2023시즌을 6위로 마치며 예년보다 다소 아쉬운 성적표를 받아들었다. 이 시점에서 팀의 수석코치를 지냈던 초보 감독이 출사표를 던지자 안양 팬들은 응원과 우려가 섞인 반응을 표하기도 했다.
유병훈 감독은 팬들의 걱정을 하루빨리 덜어주고 싶다는 생각으로 가득했다. 그는 "초보 감독에 대한 팬들의 우려는 당연히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안양 팬들의 걱정을 덜기 위해서는 축구로 보여주는 수밖에 없다. '유병훈 감독이 이런 축구를 하는구나'라고 명확하게 느낄 수 있도록 잘 준비하겠다"고 말했다.
▶'카멜레온'이 된 '노력파 감독'
유병훈 감독이 프로축구 사령탑을 꿈꾸며 준비했던 모습은 '노력파' 그 자체였다.
"수석코치로서 경기 현장에 나설 때 상황별로 유용한 장면이 나올 때마다 메모했고, 이를 바탕으로 P급 지도자 교육 당시 논문을 쓰며 '어떤 축구를 할 것인가'를 정립했다. 내가 지도자로서 타고난 인재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노력으로 극복할 수 있다고 믿고 항상 메모하며 '나만의 노트'를 만들었다. 때로는 위르겐 클롭 리버풀 감독에 대한 책을 읽으며 안양의 공수 간격과 압박에 대한 보완점을 찾기도 하고, 잉글리시 프리미어리그를 비롯한 해외축구 경기도 자주 본다. 올해는 요코하마 마리노스(2022시즌 일본 J1리그 우승팀)의 빠른 패스전개를 통한 경기 운영이나 비셀 고베(2023시즌 일본 J1리그 우승팀)의 경기를 많이 참고했다. 다양한 곳에서 얻은 영감을 안양의 색깔에 맞게 적용할 생각이다."
유 감독은 이어 "그동안 함께했던 감독님들을 떠올려보면, 이우형 감독님은 오랜 경력을 바탕으로 상황을 빠르게 포착하고 지시를 내리는 부분이 놀라웠다. 이영민 감독님은 최선의 돌파구를 찾으려는 집요함이 강점이었다. 나 역시 두 분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경기장 안에서 반복되는 문제점을 해결하기 위해 해당 장면들을 빠른 시간 안에 모아 선수들에게 전달한다. 시각적으로 바로 느낄 수 있는 자료와 함께 선수들과 소통하며 고쳐나가는 방법이 효과적이기 때문"이라고 차근차근 설명했다.
유병훈 감독은 다가오는 2024시즌, 사령탑과 수석코치로 연을 맺었던 이영민, 박동혁 감독은 물론 부산 대우(현 부산 아이파크) 선수로 뛰던 당시 한솥밥을 먹었던 이장관 전남 드래곤즈 감독과도 승격 전쟁을 치러야 한다.
"2023시즌(팀당 36경기)을 기준으로 생각했을 때 이영민, 박동혁, 이장관 감독님과 각각 3번 맞붙는다고 하면 내가 2승은 거둬야 수석코치 또는 아우로서의 도리를 다 하는 게 아닌가 싶다. 물론 경험 면에서 상대적으로 부족하기에 배우는 자세로 임할 것이다. 하지만 내가 잘해야 '능력 있는 수석코치를 뒀었구나'라고 생각하지 않을까(웃음). 함께한 세월만큼 어떤 상황에서 어떤 생각을 갖고 경기를 이끌어 나가는지 알기 때문에 심리적인 부분에서 유리한 면도 있다고 본다."
▶"안양은 나를 길러준 팀, 이제 보답할 때"
광주FC의 창단 첫 아시아 챔피언스리그 진출을 이끈 이정효 감독, 대전 하나시티즌의 K리그1 승격을 이룬 이민성 감독 역시 유병훈, 이장관 감독과 함께 1990년대 후반~2000년대 초반 부산의 수비라인을 지탱하던 선수들이었다. 같은 시기에 한 팀에서 뛰던 선수 4명이 약 20년 후 모두 K리그 감독으로 우뚝 서게 된 것.
'당시 부산 선수들의 면면이 워낙 화려했고, 그 중에 몇몇은 언젠가 프로팀 감독을 할 거라고 생각했다. 이민성 감독님은 감정에 충실한 스타일이라고 생각했기에 감독이 됐을 때 어떤 모습일까 궁금했는데, 대전이 후반전에 공격을 몰아치고 역전하는 경기들을 종종 보면서 본인의 스타일을 팀에 잘 녹여냈다고 느꼈다. 이정효 감독님은 선수 때부터 '해보는 거야' 마인드와 패기로 가득했다. 그래서 지금의 독보적인 캐릭터와 공수 짜임새가 뛰어난 팀을 만들었다고 생각한다. 이장관 감독님은 '성실의 아이콘'이었기에 선수 은퇴 후 어떤 일을 하든 잘할 거라고 봤다. 맞대결 시 공격 옵션의 변화를 잘 가져간다. 나 역시 훌륭한 선배 감독들로부터 영감을 얻어 고유한 특징을 만들어나갈 것이다."
잠시 과거를 회상한 유병훈 감독은 마지막으로 안양과 함께 맞이할 2024시즌에 대해 언급했다. 결의에 찬 목소리에는 당연하게도 '승격'이라는 두 글자가 있었다.
"수비가 안정돼야 공격도 할 수 있는 것이기에 후방 자원 구성에 우선적으로 힘을 쏟으면서 전체적인 보강을 하고 있다. K리그2 중위권으로 평가 받던 안양이 이우형 감독님 체제의 최근 3년 동안 상위권에 있지 않으면 안 되는 팀으로 바뀌었다. 이제 2022년 승강 플레이오프 진출까지 이뤘던 것을 뛰어넘어 K리그1 승격을 하고 싶다. 일단 승격을 해야 그 다음도 생각할 수 있고, 현재 승격 외에는 이루고 싶은 게 없다. '나은 정'과 '기른 정'이라는 말이 있지 않나. 나를 지도자로 길러준 안양에 깊은 정을 느끼고 있다. 이제 보답할 일만 남았다."
스포츠한국 김성수 기자 holywater@sportshankoo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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