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돼지 농장 소년’이 비만 치료제로 세계 시장 흔들다
“그는 자신만의 요란하지 않은 방식으로 의료계를 넘어 사회와 국가 재정, 사람들이 음식과 맺는 관계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는 상업적 혁신을 이뤄가고 있다.”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가 19일(현지 시각) 올해의 인물로 덴마크 제약사 노보노디스크의 라르스 프루에르가르드 예르겐센 최고경영자(CEO)를 선정했다. 노보노디스크는 올해 전 세계에서 열풍을 일으킨 글루카곤 유사 펩타이드-1(GLP-1) 유사체 기반 비만 치료제 ‘위고비’와 같은 성분의 당뇨병 치료제 ‘오젬픽’을 개발했다. 지난해 말 3045억달러(약 395조4800억원)였던 이 회사 시가총액은 19일 기준 4458억달러로 45% 이상 급증했다. 루이비통모에헤네시(LVMH)를 제치고 유럽 증시 전체 1위에 오른 것은 물론, 덴마크 국내총생산(GDP)인 4060억달러도 뛰어넘었다.
FT는 노보노디스크 급성장의 배경에 예르겐센 CEO의 과감한 투자와 인내, 끈질긴 혁신이 있다고 분석했다. FT는 “위고비와 오젬픽이 태동하던 32년 전 노보노디스크에 입사한 예르겐센은 GLP-1 기반 치료제라는 새로운 과학에 초장기 베팅을 하며 오랜 시간을 보냈다”며 “CEO 취임 이후 예르겐센이 내린 첫 번째 큰 결정 중 하나가 1만7000여 명 규모의 비만 치료제 대규모 임상시험이었다”고 했다.
예르겐센 CEO는 25세였던 1991년 의료, 경제 및 기획 부문 이코노미스트로 노보노디스크에 입사했다. 당시 개발 초기였던 GLP-1 기반 당뇨병 치료제가 첫 승인을 받은 것은 18년 후인 2009년이었다. 약의 주성분인 세마글루타이드는 포만감을 지속하고 식욕을 억제하는 장점이 있었지만, 지속 시간이 너무 짧아 이를 안정화하는 데 긴 시간이 필요했다. 2015년 같은 물질을 기반으로 한 비만 치료제가 승인을 받았지만 비만 환자 체중의 5%를 감량하는 미미한 효과로 별다른 반응을 얻지 못했다. 블록버스터가 된 위고비가 미국에서 판매되는 데까지는 6년이 더 걸렸다.
예르겐센은 미국과 일본, 네덜란드 등 지사 근무와 주요 보직을 거치며 당뇨병과 비만 치료제 집중 투자를 고집했다. 이런 인내심에는 덴마크 유틀란트 돼지 농장에서 자란 어린 시절의 경험이 영향을 미친 것으로 알려졌다. 예르겐센의 오랜 친구 벤트 달라거는 FT에 “(농장에서의) 성장이란 씨를 심고, 나중에 그것이 무엇인가 되는 것을 기다리는 과정”이라며 “제약 업계에서 일하는 사람이 가지기에 꽤 좋은 마음가짐”이라고 했다.
예르겐센은 회사 개발위원회에 합류한 직후와 CEO가 된 직후 두 번에 걸쳐 GLP-1 기반 치료제 임상시험의 지속을 주도했다. 회사 존폐가 걸린 문제였지만 성공한다는 보장은 없었다. 당시 다른 제약사들은 비만 치료제의 부작용을 극복하지 못하고 개발을 중단하고 있었다. 그는 “목표를 갖는 것이 회사의 핵심 역량이고, 시장에 충족되지 않은 요구가 있다면 큰 위험을 감수하는 데 어려움을 느끼지 않는다”고 했다.
노보노디스크가 비만 치료제 개발에 성공한 데는 독특한 회사 지배 구조도 영향을 미쳤다. 노보노디스크 의결권 77%는 재단인 노보홀딩스가 소유하고 있는데, 1923년 창립 초기 노보노디스크에 인슐린 개발권을 양도한 ‘인슐린의 아버지’ 프레더릭 밴팅 박사가 ‘인류 공공의 선을 위해 사용해달라’는 조건을 달면서 설립된 재단이다. 이 재단은 판매 수익금을 연구·개발에 투자하고 사회에 환원하는 것이 목표다. 코펜하겐 비즈니스 스쿨의 마틴 예스 이베르센 교수는 “이 구조 때문에 회사가 수익성보다 더 큰 목적에 전념할 수 있었다”며 “일론 머스크도 노보노디스크의 경영권을 인수할 수 없다”고 했다.
회사는 승승장구하고 있지만 예르겐센은 전기차를 타고 출퇴근하고, 집 근처 호수에서 카약을 타며 사색하는 조용한 삶을 살고 있다. FT는 “그는 실리콘밸리 CEO들처럼 자사 제품이 사회 병폐를 해결할 만병통치약이라고 주장할 만큼 대담하지 않다”며 “다만 비만 치료제를 통해 세상에 영향을 미칠 엄청난 기회를 가질 수 있었다고 밝힐 뿐”이라고 했다.
☞노보노디스크
1923년 설립된 덴마크 제약 회사로 당뇨병 치료제를 집중 개발·판매해 왔다. 현재 전 세계 인슐린 치료제의 90%를 공급하는 3대 제약사 중 하나다. 특히 올해는 글루카곤 유사 펩타이드-1(GLP-1) 유사체 기반의 비만 치료제 위고비가 전 세계에서 선풍적 인기를 끌면서 시가총액이 덴마크 국내총생산을 뛰어넘을 정도로 성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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