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수윤의 하이쿠로 읽는 일본] [1] 동짓날 팥죽과 유자 목욕
동짓날 햇살
다정하게 다가와
무릎에 앉네
冬至の日しみじみ親し膝に来る
동지에 해가 짧아져 추워진 줄만 알았는데, 태양이 가장 낮게 뜨니 햇살이 창문 너머 가장 깊숙한 곳까지 다가와 무릎에 앉는다. 데면데면하게 창가에서 놀던 햇살은 어느새 곁에서 속살대는 벗이 되었다. 연중 밤이 가장 긴 동지는 햇살과 가장 다정해지는 날이기도 하다. 북반구 사람이라면 누구나 미소를 지을 법한 이 하이쿠는 온화한 작풍으로 이름난 도미야스 후세이(富安風生·1885~1979)가 썼다.
동짓날 햇살에 다정한 마음이 있다면, 동지팥죽 속에는 쫀득한 마음이 있다. 어린 날에는 할머니와 동생과 소반에 둘러앉아 새알심(心)을 빚었다. 찹쌀 반죽을 동전만큼 떼 손바닥에 올려놓고 두 손을 맞대 궁굴리며 새알을 만든다. 할머니는 두 번이나 세 번만 굴리면 금세 멋진 알을 만들었지만, 동생과 나는 열 번 스무 번을 굴려도 꼭 한쪽이 찌그러져 있었다. 작은 새알은 손바닥을 간질이며 굴러다니다 곧 부화할 것처럼 따뜻해졌다.
우리 마음이 담긴 새알심은 팥죽 속에서 더욱 빛을 발했다. 한 알 떠서 호호 불어 먹으면 짭조름하고 뜨거운 것이 온 우주처럼 들어와 입천장 아래 들러붙었다. 그걸 때어내느라 쩝쩝대고 있으면 할머니는 나이만큼 새알심을 먹어야 한 살 더 먹는다고 했다. 나는 빨리 나이를 먹고 싶어서 배불러도 새알의 마음을 먹고 또 먹었다.
일본에는 동지에 유자를 띄운 목욕탕에서 몸을 씻는 풍습이 있다. 대자연을 품은 과실 향에 기대 한 해 시름을 털어낸다. 내가 처음 도쿄 대중목욕탕에서 샛노란 유자가 스무 개쯤 동동 뜬 열탕으로 들어갈 때는, 김이 모락모락 나는 거대한 유자차로 들어가는 기분이었다. 유자를 입이 아닌 살로 마실 수 있구나. 이웃 나라의 낯선 풍습이 신비롭다.
그들은 하루의 시름도 밤마다 목욕탕에서 씻어내고 깨끗한 몸과 마음으로 잠이 든다. 그래서 가정집 욕조에 받은 물을 데우는 기능이 있고 식지 않게 뚜껑을 덮어둔다. 거기에 알이 큼직한 유자를 띄우니 집 안에 은은한 향이 감돌겠지.
동지가 코앞이다. 올해 나는 무엇을 하고 무엇을 하지 못했나. 바쁘게 살아왔지만, 나와 한 다짐을 지켰나. 너와 한 약속을 지켰나. 너와 나의 세상을 위해 작은 무엇이라도 했나. 우선은 샤워기 물살로 묵은해의 아쉬움을 씻고, 갓 태어난 마음으로 새해를 맞이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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