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삶 살아갈 힘 얻었어요” 마음으로 써내려간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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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은 말없이 내 손을 꼭 잡고 있다가 잠든 모습으로 세상을 떠났다. 나를 많이 사랑했다고 말하던 그날에 내가 하지 못했던 대답을 지금이라도 남편에게 하고 싶다. 나도 당신을 많이 사랑합니다."
박 씨는 "나의 흉을 흉으로 여기지 않는 아내를 만난 것이 내 인생의 가장 큰 행복이었음을 글을 쓰며 깨달았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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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각장애인 14명 이야기 모아
무안 전남도립도서관 책 펴내
인생 스토리 나누며 아픔도 치유
시각장애인 김길자 씨(81)가 생애 처음 쓴 산문 ‘당신 생각’의 일부다. 이 글은 올해 10월 전남 무안군 전남도립도서관이 발행한 책 ‘인생 이야기 쓰기’에 실렸다. 김 씨 등 전남 지역 시각장애인 14명이 공동 저자다. 모두 올해 6∼10월 전남도립도서관이 전남시각장애인점자도서관(전남 목포시)과 함께 11회 진행한 ‘인생 이야기 쓰기’ 수업에 참여한 이들이다. 책은 시각장애인으로 살며 겪은 아픔과 어려움, 꿈과 사랑 이야기로 채워졌다.
전남시각장애인점자도서관에서 15일 만난 김 씨 등 저자 10명은 자신의 글이 담긴 책을 손에 꼭 쥐고 있었다. 이들 가운데 8명은 “이 수업을 통해 생애 처음으로 글을 써봤다”고 고백했다. 그래서일까. 이들은 “첫 수업 날 막막함이 밀려왔다”고 입을 모았다. 어떤 이야기부터 시작해야 할지 막막했던 이들에게 글쓰기 선생님으로 나선 윤소희 작가가 이렇게 말했다. “여러분 안에 있는 모든 이야기가 바로 글감입니다.”
김 씨는 “그 말을 듣고 내가 살아온 인생을 돌아보니 남편의 얼굴이 떠올랐다”고 말했다. “남편과 53년간 함께 산 추억을 생각하니 글이 줄줄 나오데요. 글을 쓰면서 마음이 아프기도 하고 기쁘기도 하고. 내 눈이 이렇게 돼버렸는데도 나도 글을 쓸 수 있구나…. 조그마한 자신감도 생기데요.”
한쪽 눈이 보이지 않는 박길봉 씨(78)는 생애 처음으로 쓴 산문 ‘내가 지금까지 걸어온 길’에서 자신의 아픈 눈까지 사랑해준 아내에 대한 고마움을 전했다. 글에는 처음 아내와 선을 봤을 때의 일화가 담겼다. “나는 보시다시피 한 군데 흉이 있는 사람”이란 박 씨의 말에 아내는 “술 먹소?”라고 되물었다. 술을 입에 대지 않는 박 씨는 단번에 아내의 마음을 얻었다. 박 씨는 “나의 흉을 흉으로 여기지 않는 아내를 만난 것이 내 인생의 가장 큰 행복이었음을 글을 쓰며 깨달았다”고 했다.
7년 전 망막색소변성증으로 전맹 시각장애인이 된 문준서 씨(48)는 “글을 쓰며 새로운 삶을 살아갈 힘을 얻었다”고 했다. 문 씨는 ‘생각 하나 바꾼 삶’이란 글에 이렇게 적었다. “바뀌어버린 내 인생이 너무나 힘들어 방황하기도 했다. 하지만 모든 걸 접고 다시 시작하는 마음으로 ‘안마사’라는 새로운 직업에 도전하며 인생을 개척하기 시작했다. 생각 하나를 바꾸고 보니 내 삶 자체가 달라져 행복하다.”
무엇보다 인생 이야기를 나누며 아픔이 치유됐다고 한다. 매주 과제로 써온 이야기를 낭독하는 시간이면 모든 이들이 함께 울고 웃었다. 수업에 참여한 어르신들이 들려주는 이야기를 기록한 후천적 시각장애인 이동재 씨(55)는 “나와 같은 아픔을 겪은 어르신들의 인생을 알게 된 뒤 ‘나 혼자가 아니다’라는 생각을 하게 됐다”고 했다. “글을 쓰는 것도 좋았지만 어르신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더 큰 위로를 받았어요. 나도 저 어르신들처럼 사랑하며 살아갈 수 있겠다는 확신이 생겼거든요.”(이 씨)
목포=이소연 기자 always99@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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