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읽기] 거짓말이 없는 나라
걸리버 여행기 제4부에는 말(馬)의 나라가 등장한다. ‘휴이넘’이라 불리는 말(馬)이 다스리는 나라이고 ‘야후’라 불리는 인간을 가축처럼 사육하는 나라이다. 휴이넘의 나라에는 거짓말이 없다. 걸리버는 휴이넘에게 거짓말의 의미를 설명하는 데에 어려움을 겪는다. 휴이넘에게 있어서 언어는 세상에 존재하는 것들을 이해하기 위해 사용하는 소통 수단이다. 존재하지 않는 것을 존재한다고 할 수 있는 언어는 아예 없다는 것이다. 거짓말이 없는 휴이넘의 언어가 이상적인 언어라 할 수 있을까?
인간의 언어는 단지 외부세계에 대한 지식을 담아내어 상호전달하는 기능만을 수행하는 것은 아니다. 인간관계에서 양념의 요소로서 기능하며 한 사회가 갈등 없이 유지·지속될 수 있는 윤활유 역할을 하는 것이 있다. 선한 거짓말(white lie)이 그것이다. 사람들이 거짓말을 안 하는 사회는 솔직한 사회는 될지 모르겠지만 엄청 불편한 사회가 될 것이다. 필자도 지인들에게 나름 그들을 위한다는 명분으로 직언을 했다가 그 후로 연락이 끊어진 경우가 허다하다.
보통 선한 거짓말은 본심과는 반대로 상대방에게 호응해줌으로써 불편한 상황이 되지 않게 하는 방식으로 많이 쓰인다. 상대방에게 적극적으로 하고 싶은 말이 있는데, 직설적으로 하면 대화가 끊어질까봐, 돌려서 말하는 방법이 농담과 풍자이다. 직설적으로 먼저 내뱉어놓고 분위기가 이상하니까 ‘농담이야’ 하는 건 농담이 아니다. 농담에 대해 일일이 해명을 해야 한다면 그 사회는 농담이 존재하지 않는 사회이다.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의 저자로 잘 알려진 밀란 쿤데라의 자서전적 소설 ‘농담’에서 이 소설의 배경인 당시의 체코가 스탈린의 노선을 따라서 사회주의 건설에 박차를 가하던 상황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주인공은 여자 친구의 관심을 끌기 위해서 스탈린의 정적이던 ‘트로츠키 만세’라는 표현을 엽서에 적었고, 이 때문에 사회로부터 격리돼 탄광 노동을 하게 된다. 농담을 농담으로 받아들이지 못하고, 풍자를 풍자로 받아들이지 못하는 사회는 선한 거짓말조차 허용되지 않는 사회인데, 이런 사회가 살기 편한 사회일까? 양두구육(羊頭狗肉)이란 사자성어로 비유를 들면, 누구를 개라고 비하하는 거냐고 분노하는 사회가 올바른 사회일까?
다행히 우리 사회는 거짓말에 대해서 그렇게 엄격한 사회가 아닌 것 같다. 대법원 판결에서도 거짓말에 대한 유연한 태도를 볼 수 있다. 2020년에 선고된, 이재명 당시 경기도지사의 허위사실공표에 의한 공직선거법 위반 사건에서 “일방적으로 허위의 사실을 드러내어 알리려는 의도에서 적극적으로 반대사실을 공표한 것”은 처벌 가능한 거짓말이지만 “토론 중에 소극적으로 회피하거나 방어하는 답변 또는 일부 부정확하거나 다의적으로 해석될 여지가 있는 표현까지 처벌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고 대법원은 판결했다. 즉, 불이익을 당할까봐 적당히 애매모호하게 둘러댄 것은 그 말을 들은 사람들이 속을 수 있다 할지라도 형사처벌을 할 수 있는 거짓말은 아니라는 것이다. 폭행이나 협박 등에 의해 거짓말을 한 것은 잘못이 아니라는 것이 상식이지만, 선거에서 패배할까봐 사실상 듣는 사람들을 속일 수 있는 말을 한 것이 거짓말이 아니라고 하는 것은 너무 관대한 것이 아닌가 싶다. 걸리버는 휴이넘에게 법조인은 다른 사람이 쉽게 알아들을 수 없는 언어를 사용하며, 그 언어를 가지고 진실과 허위, 옳은 것과 그른 것에 대한 판단을 혼란스럽게 만든다고 하소연 한다.
거짓말을 하지 않는 사회도 불편한데, 요즘 한국 사회는 거짓말이 없는 사회가 되어 가고 있다. 거짓말은 없고 말을 바꾼 경우만 있다. 대통령이 말을 자주 바꾼다. 대통령의 말 한마디는 국민 생활에 지대한 영향을 끼칠 수 있다. 어쩔 수 없다면 말을 바꿔야겠지만 최소한 그 이유는 설명해줘야 할 것 아닌가? 말을 바꿀 수밖에 없었던 이유를 설명 못한다면, 말을 바꾼 것이 아니라 거짓말을 한 것이다. 대통령만 이러면 임기가 끝나기를 기다려 보겠지만, 차기 대통령으로 유력한 제1야당 대표도 쉽게 말을 바꾼다. 거짓말을 거짓말로 인정하고 착한 거짓말과 못된 거짓말을 구별하던 예전으로 돌아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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