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30 플라자] 자유주의 위기의 해, 1923년과 2023년
지금부터 100년 전인 1923년은 국제적 위기의 해였다. 겉으로 보면 세계 열강 간 파멸적 총력전이었던 제1차 세계대전이 끝난 평화의 시대였다. 하지만 그 전해 러시아에서는 공산주의 혁명을 일으킨 볼셰비키가 내전을 수습하고 소련을 건국했다. 패전국의 대표이자, 승전국에 가장 가혹하게 응징당한 독일 뮌헨에서는 지역 극우 인사가 폭동을 일으켜 전국적 유명 인물로 부상했다. 그의 이름은 아돌프 히틀러였다. 일본에서는 관동대지진이 일어나며 호황이 끝나고 불황에 진입하게 되었다. 일본의 경제적 혼란은 영국과 미국에 반발하는 극우파가 성장할 토양이 되었다. 세계대전에서 세계 최강국임을 입증한 미국은 국제연맹 가입을 거부하면서 유럽과 아시아에서 일어나는 사건에 눈을 감았다.
1923년의 사건들은 서로가 서로에 영향을 끼치며 국제적 위기를 통제 불능 수준으로 심화시켰다. 이후 15년은 세계대전 전후의 국제 질서인 베르사유 체제가 파탄에 이르는 여정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소련에서는 스탈린 체제가 등장하면서 새로운 사회를 실험한다고 주장했고, 그 과정에서 수많은 인명이 희생되었다. 독일에서는 10년 만에 실패한 폭동의 주동자가 카리스마적 총통 자리에 올랐고 군사적 팽창 의지를 숨기지 않았다. 일본에서는 8년 뒤에 만주를 침략하여 제국을 확장했고, 영미와 협조하자는 세력 대신에 대동아공영권을 건설하자는 급진적 군부가 정국을 주도했다. 이 위기는 마침내 앞선 전쟁보다 훨씬 참혹한 제2차 세계대전으로 이어졌다.
1923년 당시부터 100년이 지난 2023년이 저물어간다. 2023년은 역사에 어떤 해로 기록될 것인가? 현재로서는 1923년과 마찬가지로 자유주의 국제 질서의 위기가 심화된 해로 기억될 가능성이 매우 높아 보인다. 푸틴이 시작한 우크라이나 전쟁은 2년을 향하고 있고, 초기의 위기를 넘긴 러시아는 놀라운 회복력을 보이며 우크라이나와 서구의 의지를 계속해서 시험하고 있다. 이스라엘과 하마스의 전쟁은 인도적 위기를 심화시킴은 물론이고, 아랍 및 이슬람 세계와 서구 사이에 ‘문명 충돌’의 그림자를 드리웠다. 올해 있었던 주요 선거에서도 서구 자유주의의 반대자들이 승리를 거두곤 했다. 태국에서는 군부 정권에 대한 반발로 정권 교체 바람이 크게 일었으나, 현 여당이 주도하는 선거 제도의 한계로 민주주의 요구 세력인 전진당의 집권은 좌절되었다. 튀르키예의 대통령 선거에서는 ‘신오스만주의’를 내세우며 튀르키예의 영광스러운 과거를 복원하겠다는 에르도안이 대통령으로 재선됐다. 주요 자유주의 강대국인 독일에서는 극우로 평가받는 ‘독일을 위한 대안당’이 지방 선거에서 약진했다.
한 해를 돌아보면 미국이 주도하는 자유주의 국제 질서에 대한 도전이 세계 각지에서, 심지어 서구 세계 내부에서도 거세지고 있음이 더욱 명백해진다. 2023년이 1923년의 데자뷔처럼 보이는 이유다. 그렇다면 2023년은 위기가 파국으로 이어진 1923년이 될까? 어쩌면 석유 파동과 월남전 패배라는 위기를 극복하고 미국이 IT 혁신과 사회 통합을 새로 이루어낸 1973년을 재현할 수도 있다. 위기가 더욱 심화될지, 아니면 재정비의 발판을 마련해줄지, 현재로서 알기란 불가능한 일이다. 다만 내년은 그 단서들이 더욱 명확히 보이는 해다. 다가오는 1월에는 대만에서, 11월에는 미국에서 대통령 선거가 있다. 이 두 선거 결과가 지금의 국제 질서와 한국의 미래를 결정지을 것이 분명하다. 공교롭게도 내년에는 한국에도 중요한 선거가 있다. 하지만 한국은 세계의 향방이 결정될 2024년의 사태에 대비하고 있을까? 한국의 선택 또한 2024년에 윤곽이 드러날 국제 질서의 향방에 중요한 영향을 끼칠 것을 고려하면, 작금의 천하 대세에 대해서 여야가 자신들의 입장을 밝힐 이유는 충분하다. 다가올 위기의 해와 위기의 10년, 대만, 미국, 그리고 한국의 선택은 무엇이 될 것인가. 2024년이 긴장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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